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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미도르 - 전3권
김혜린 지음 / 길찾기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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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나라에서 <만화>라는 장르는 푸대접+무관심+무시가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글로 이루어진 책보다 절대 나을 것 없고 애들이나 보는 그런 것이었고, 예전보단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지금도 그런 인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의 '만화'의 의미로, <테르미도르>는 '만화'가 아니다. 거세게 굴러가는 혁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 하나의 소망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 핏빛의 태양 아래에서 외치는 자유 평등 박애..소수는 타협했고 다른 소수는 외면했으며 또 다른 소수는 포기했다. 그러나 다수가 함께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 이 모든 것과 덧붙여 도저히 글 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책. 이것은 만화가 아니다... <테르미도르>는 '역사'다.

 

김혜린. 이 석 자의 이름이 한국 만화계에 존재하여서 다행이다. 그녀가 다른 직업이 아닌 만화가를 선택해 주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한다. '애들이 보는' 만화라고 그저 사랑 타령만 할 수야 있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제로 역사를 이끌어 온 주역인 최하층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만화, 그 자체로도 역사를 말하는 만화가 적어도 하나쯤은 있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한국의 만화계는 목말라 하지 않을 것이다. 김혜린의 <테르미도르>가 존재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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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세트 - 전12권 (반양장)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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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하에서 36년을 보낸 우리 민족의 이야기..랄까요. 이 땅의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던 시대. 반만년 역사 동안 전례가 없었던 참혹한 시대. 하지만 그 강렬한 빛에 맞서 더 없이 진한 그림자로 저항했던 이들이 존재하던 시대. 그러나, 잊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그런 시대의 한 민족의 삶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없는 기이한 책이죠. 이 책에서 주인공을 찾아내려고 한다면 당황할 겁니다. 어느 시간 많은 이가 세어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약 삼 백여명이(이름이 전부 다릅니다) 등장한다고 하니까요..말 그대로 한 민족의 이야기, 그 민족 전체가 주인공인 글입니다.

이 글을 처음 접했던 때는 중학교 2학년.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이 없으면서도 있던 책은 처음이었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그의 인생에서 주인공이다...라는 말을 이렇게 잘 표현한 글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요. 절대...잊어서는 안 되는 시대가 12권의 분량에 간추려져 있습니다.

최악의 조건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았던, 더러는 잊었던...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 의당 소설에서라면 대부분 느껴졌던 작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내음을 내는 이야기. 실제 인물들이 아닐까, 하는 감탄의 의문을 들게 하는 이야기.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에 눈물 흘리게 하는 이야기.

한국인이라면, 그 흘러갔지만 멈춰선 시대를 겪어낸 사람들의 피가 흐르는 이라면, 반드시...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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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유골 캐드펠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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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추리소설이 있다. 걸작에서부터 보고 있으면 입이 험해지기까지 한 삼류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추리들이 골라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명작들은 대부분 수십 년 이상의 시간차가 있는 '옛날' 작품들 뿐이라 추리소설을 즐기는 이들은 목이 마를대로 말랐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었고- 그런 나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것은 12세기의 영국 시루즈베리 수도원의 캐드펠 수사였다.
 
왕이 죽었다. 그에겐 벌써 멀리 시집보낸 외동딸이 있었고, 그의 조카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그 딸이 가만 있을 리 만무하여 사촌 간에 왕위를 놓은 사투가 벌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잠시 그 한가운데에 놓였던 마을 시루즈베리. 그 곳에는 성 베드로- 성 바울 수도원이 그 지역 정신적 지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곳에 소속된 많은 수사들 중 허브밭을 담당하는 본초학자 캐드펠 수사가 장장 20권에 달하는 '캐드펠 시리즈'를 이어가는 주인공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성직자를 꿈꾼 것이 아니라 십자군 전쟁에 나가 몇 십년 간 세상의 단맛과 쓴맛을 상당히 두루두루 겪은 후에 수도원에 영혼을 맡긴 '특이한' 경우다. 그 때문인지 그는 약초에 대해 아주 해박하고 뛰어난 관찰력과 순발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를 바탕으로 그의 손 닿는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곤 한다. 또한 그런 중에서 드러나는 캐드펠식 세상보기-라고 표현해도 될런지- 는 따뜻하고 평온하며, 희망이 함께한다고 느끼게 된다. 소설임에도 작위적인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은 단지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라거나 주인공 캐드펠이 실제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주연이되 주연이 아닌, 조연이되 조연이 아닌- 각자의 삶을 지닌 사람들이 웃고, 울고, 화내고, 행복해한다. 이런 탁월함은 아무에게나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엘리스 피터스. 작가의 이름이 역사 추리소설을 대표함은 이런 이유이리라.

20권이라는 분량이 부담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이 스무 권의 책은 그 하나하나가 각각 독립된 추리소설이다. 제목도 다 다르고, 내용도 한 권에서 말끔하게 끝나곤 한다. 그러나 기왕이면 처음부터, 이 <성녀의 유골>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출판되는 순서대로 책 속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스무 번의 사건의 공통적 해결사인 캐드펠의 인생도 조금씩 변화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이 살짝 드러나며 그것이 현재로 이어져서 그의 눈에 드러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세세한 역사 배경 및 지방 및 인물 묘사,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는 결말, 소박하며 현실적인 인물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시리즈를 보노라면 '고급' 추리소설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우선 첫 권을 손에 들기를. 다 읽고 기대에 못 미쳤다거나 추리소설 치고는 너무 물렁하다거나 하며 덮어두어도, 어느 날 문득 캐드펠 수사의 그림자가 어느 새 마음 한 켠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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