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풍요의 바다 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윤상인 외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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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은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작가 생활 극후반부에 쓴 <풍요의 바다> 4부작 중 첫번째 장편소설이다. 4부작의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시대 말기인 1910년부터 작가가 할복자살한 시점부터 5년 뒤의 미래인 1975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4권의 각각 소설마다 시대와 배경이 달라진다.

전체적 줄거리: 주인공 마쓰가에 기요아키는 14만 평이나 되는 대저택을 가진 마쓰가에 후작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병약하고 아름다운 외형의 몸과 곱상한 외모를 지닌 인간이다. 그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데에는 별 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며, 항상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자신이 꾸었던 꿈에 대해 소상히 기록하는 것을 즐기는 탐미적 몽상가이다. 그의 소꿉이성친구 아야쿠라 사토코는 필히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녔다고 말할 정도이며, 어렸을 때부터 마쓰가에 기요아키와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20살이 된 사토코는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는 혼인 약속을 필히 거절하고, 계속해서 기요아키와의 혼담을 말 없이 기다리고 있다. 기요아키의 친구 시게쿠니 혼다는 기요아키와 친해진지는 얼마 안 됐으나, 중요한 순간에 그의 강력한 우군이 되어주기도 한다. 때로 기요아키와의 '돈독한 우정'을 위해, 그리고 기요아키를 위해 그와 어느 정도 일정 거리감을 두는 것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사토코가 기요아키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토코를 상처 주기 위해 묵묵히 가만히 있다가, 사토코가 도인노미야 가와의 혼담이 정해지자, 기요아키는 조급해지며, 허겁지겁 사토코와 관계의 진전을 이끌 준비를 꾀하기 시작하는데...

작중 눈여겨봐야 할 점

1. 이 소설은 본인이 볼 때, 귀족소설에 해당한다고 본다.

많은 귀족들이 작품에 출현하며, 그들이 향유하는 물건, 작품, 취미, 그리고 어릴 때 주로 했던 것들이 상세히 적혀 있다. 일본에 짧게나마 존재했던 귀족에 대한 동경이라던가, 그 시절에 대한 궁금함이 조금이라도 있으신 분들은, 읽어 보심을 추천드린다.

2. 4부작 중에 1부작이라는 순서가 지니고 있는 굉장함과 치밀성.

초독을 하는 입장에선, 이것 저것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재독을 하고 보니, 굉장한 것으로 다가와 보였다. 동남아 왕자 두 명 이라던가, 동남아 공주 잉 찬. 그들이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로써 오롯이 존재해야 할 이유. 그리고 그것의 가치. 앞으로 작품에 미치게 될 영향. 그것들을 느끼게 된 것 같다.

3. 주인공 시게쿠니 혼다가 입시공부에 매진하면서도 읽었던 작품들.

일단, <봄눈> 내에 소개된 여러 비문학 작품들을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전부 읽어 봤고, 그리고 이해하고, 그것들을 작품에 오롯이 녹여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작가에 대한 경외심이 들어 나도 따라서 읽고 싶어졌다. 그 중에서 혼다가 읽는 작품들 중에선 혼다의 가치관에 꽤나 영향을 준 것들이 보인다. 두 왕자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읽게 되는 책들도 꽤나 관심이 생긴다. 괜히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내가 삶과 세계에 대해 느끼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을 여기에 담았다."라고 4부작 <풍요의 바다>에 대고 말했던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마쓰가에 기요아키가 썼던 꿈 일기.

기요아키가 썼던 꿈 일기에 적힌 꿈들이 이 <풍요의 바다> 4부작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미리 감상해두는 것도 좋은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5. 주인공 시게쿠니 혼다와 두 왕자의 '윤회에 관한 사상 토론'

이것이 이 4부작 <풍요의 바다>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에 따라 다른 사고방식, 그리고 철학.

방학 기간 동안, 마쓰가에 가의 별장에서 두 왕자는 자타카-석가모니가 성불해 부처가 되기 전의 수행과 공덕을 담은 경전을 이르는 말-를 화제로 올리는데, 그에 따라 윤회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다. 혼다는 전생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이 그렇지 않을 경우, 한 번 끊어진 정신, 사상은 다음 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다음엔 또 아무 상관 없는 새로운 사상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간 위에 나란히 놓인 각 개체들은 같은 시대, 다른 공간에 흩어진 다른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고, 이러면 전생이란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우리들이' 환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만 봐도, 환생이란 것은 확증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는 헛된 노력 같다''고 말한다. 그것을 증명하려면 전생과 현생을 똑같이 놓고 비교, 대조할 사상적 통찰력이 필요한데, 인간의 사상이란 대다수 과거, 현재, 미래 셋 중 하나에 치우쳐 있어, 역사의 한복판에 있는 '자신의 사상'이라는 집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환생이란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객체가 자신의 전생과 현생을 구별할 수 있는 제 3자의 견지가 필요한데, 그 제3의 견지란 깨달음(석가모니의 그것처럼)의 경지일테니, 환생이란 생각은 환생을 초탈한 인간만이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환생이란 개념을 포착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환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고 반문한다. "환생이란 것은 우리가 생의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과는 반대로, 죽음의 측면에서 생을 바라보는 것을 표현하는 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다."라고 혼다는 냉소를 던진다.

그에 따라 두 왕자는 "그렇다면 누군가가 죽은 후에도 그의 사상이 대를 이어 전해지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이죠?", "하나의 사상이 다른 개체 속으로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는 것은 그대도 인정하겠지요. 그렇다면 같은 개체가 각기 다른 사상속으로 시간을 뛰어넘어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하는데, 이 질문이 이 4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Key Point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작가생활 동안 이 질문과 이것에 대한 답을 갈구했고, 그에 따라 몸이 이끌려 자신의 모든 것을 꾹꾹 눌러 담아 이 작품을 쓴 것이다.

마치며...

아름다운 문장과 끝없이 이어지는 미문의 행렬이 담겨있는 이 <봄눈>은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문학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상과 철학,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행동, 그리고 기요아키와 사토코, 혼다와의 관계...

4부작이 언제쯤 완결 번역될지는 모르겠지만, 민음사 출판사와 번역가 윤상인, 손혜경 선생님들의 여러 크고 작은 노고가 존재함을 절대로 의심치 않으며, 그저 이 작품을 소개하고, 번역해 주시는 데에 대한 큰 감사함을 느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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