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읽었다. 알코올 중독과 거식증, 내성적인 성격, 비혼, 반려견에 대한 지나친 애착, 쌍둥이, 정신분석학자인 아버지, 화가인 어머니등 나와는 접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과연 나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이해되고 공감되었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공감력이 많이 증가한 걸까? 아니면 작가가 인간 근원적인 문제들-고독, 고립, 사랑, 우정, 부모와의 관계, 자매애 에 대해 솔직하고도 섬세하게 이야기 한 덕분인 걸까?

 

얼마 전에 읽은 여름과 루비의 작가 박연준도 마찬가지이지만 이토록 섬세하고 통찰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들이 너무나 부럽다. 태어나길 무감하고 투박한 나는 가끔은 섬세한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진다.

 

자신이 세상과 어딘지 맞지 않음을 지속적으로 느끼면서 어떻게든 생을 영위해나가고 세상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에 세상살이에 대한 나 자신의 고단함도 조용히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걸까? 나 자신에 대해선 얼마나 많이, 제대로 알고 있나? 단순함과 둔감을 무기 아닌 무기 삼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p. 48 내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위축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바로도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지극히 간단한 사회적 행동마저도 누구를 만나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외식을 한다거나- 엄청나고 무섭고 피곤한 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p. 64 남자들은(적어도 내가 아는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전화를 붙잡고 자의식을 놓아버린 채 재잘거리는 능력은 여자들의 우정만이 갖고 있는 멋진 특징이다. 그것은 관계가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했다는 증거, 그냥 아는 사이에서는 생길 수 없는 편안함과 신뢰와 관계에의 상호 투자가 쌓였다는 증거다.

 

p. 179 한계를 정해두는 법, 책임을 위임하는 법, 자기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럽게 대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나는 이것이 회복이라도 생각했다. 어떤 영역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제자리걸음인 것.

 

p. 198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 중인 사람들은 종종 사람이 중독 수준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곤 한다. 술은 사람의 성장을 지체시킨다. 사람을 성숙함 및 자신감의 척도에서 한 단계 나아가게 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하는 삶의 두려운 경험들을 겪지 않도록 만든다.

 

p. 202 그건 말하자면 우리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10도쯤 어긋나서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기분, 그런데 술이 그걸 바로잡아줘서 우리가 내면의 균형을 되찾게 되는 듯한 기분이죠.

 

p. 219 중독은 누가 뭐래도 자기 보호 효과가 뛰어난 방법이다. 중독은 대체 기제이고, 강렬한 감정들에 대한 해독제다. 그러니 우리가 중독을 내려놓은 뒤에는 그동안 중독으로 마비시키고 변화시키려고 애썼던 감정들이 모조리 표면으로 부상하기 마련이다. 가끔은 급류처럼 덮쳐서 버거울 지경으로, 이것은 자명하고 불가피한 이치다.

 

p. 267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혼돈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려고 든다. 무엇이든 좋으니 무언가를. 이를테면 자신이 섭취하는 칼로리를, 자신의 몸무게를, 자신의 환경을, 공황에 빠진 사람은 이상한 짓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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