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다. 프랑스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고 왠지 어려울 것 같은 선입견 때문에 그의 책 중 가장 쉬워 보이는 이 책을 골랐다. 책은 얇고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기는 한데 역시 내가 생각하고 있던 프랑스 소설의 이미지 – 모호한 서술 방식과 세밀한 심리 묘사, 사변적이고 현학적인 느낌 – 때문에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18살 여름 캠프에 6주간 지도 교사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그 후 아니 D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글쓰기라는 것으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솔직하게 담담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처음에는 록산 게이의 ‘헝거’ 같은 성적 트라우마 이야기인가 했는데 그런 내용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시골의 잡화점 겸 카페를 운영하는 부모님을 둔 아나는 18년간 보수적이고 온실 속에 자라왔다. 난생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나 6주간 여름 캠프에 지내면서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리 유쾌하지 않은 성 경험을 하게 되고 내 기준에는 많이 방종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과 환경에 대한 의미를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자신의 진로와 여름 캠프에서 겪었던 일들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갖는 지에 대해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하면서 결국은 50년이 훌쩍 지나고 그 일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
내가 작가가 아니라서 혹은 멍청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1958년의 경험과 글쓰기의 관계가 명확히 들어오지 않는다. 록산 게이의 경우 어렸을 때, 자기가 좋아했던 소년이 포함된 동급생들에게 윤간을 당한 트라우마의 치료 과정의 하나로써 글쓰기가 작용함을 알 수 있었는데 아나의 경우는 어떤 것일까?
p. 34 그녀는 일정한 ‘나’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저 한 권의 책에서 다른 책으로 흘러가는 여럿의 ‘나’를 가질 뿐이다.
p. 131 우리는 다른 이들의 존재 속에, 그들의 기억 속에,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 심지어 행동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가? 이 남자와 보낸 두 밤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쳤는데도 나는 그의 인생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는, 이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불균형. 나는 그가 부럽지 않다. 글을 쓰고 있는 건 나니까.
p. 137 사실 이 세상엔 두 가지 종류의 문학밖에 없다. 무언가를 재현하는 문학과 찾아가는 문학.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p. 188 ‘모든 것이 평탄하고, 모든 나쁜 것을 멀리하게 되는 인생의 일요일’
p. 200 나는 나 자신을 문학적인 존재, 언젠가는 글로 써야만 하는 것인 듯 모든 일을 경험하는 누군가로 만들기 시작했다.
p. 202 캠프에서의 밤 이래 일어난 모든 일들이, 추락에서 추락으로 이어져, 이 최초의 글쓰기라는 안식처에 다다르기까지의 위태로운 횡단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라는 깨달음을 증명하는 이야기. 이런 것은 모두 우리를 안심시켜주는 믿음의 영역에 속한 일이다. 나이를 먹을수로 점점 더 깊이 우리 안에 뿌리내리게 되어 있으나 그 진실을 밝혀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믿음.
p. 206‘진실로 인해 죽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는 예술이 있다.’
p. 211 글쓰기의 가능성이 많아지는 건 우리가 경험하는 그 순간, 경험하는 것의 의미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p. 211 어떤 일이 벌어지는 그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지닌 무시무시한 현실성과 몇 년이 흐른 후 그 벌어진 일이 띠게 될 기묘한 비현실성 사이의 심연을 탐색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