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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란 듯 사는 삶 - 빠다킹 신부의 소확행 인생사용법
조명연 지음 / 파람북 / 2019년 5월
평점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냥 살아가는 것이 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그냥 마지못해 산다고 말합니다. 어떤 목적의식도 없이 그저 불평불만으로 가득차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불평을 생각을 조금만 다르게 전환한다면 분명 불만이 긍정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태어나서 죽을때가지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좀 더 좋은 가짐으로 살아가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말씀하신대로 목적의식을 두고 사는게 좋다고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싸우는 존재는 나 자신이다. 그리고 싸울 때 가장 힘든 대상 역시 바로 '나' 입니다.
그 싸움에서 지는 것도 역시 나인 것 같습니다. 나는 항상 자신과의 싸움에서 많이 지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자기 자신을 다독이고 사랑하는게 부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문득 20대에는 어떤 일을 도전하고 받아들이는게 쉬웠다면 30대에는 새롭고 낯선게 많이 힘들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 자신과의 싸움이 어려울때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좀 더 성숙한 저를 발견해서일까요? 조금 더 인내해서 참고 견디는게 단단해진 느낌도 듭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데서 행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다른 이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가꾸게 되지요. 진짜 내 모습은 그렇지 않은데, 가짜 모습을 통해서라도 행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인스타그램을 하는 나로써도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 예쁜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경향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울한 감정이나 힘든 상황의 모습은 보여주고 있지 않는 모습에서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서서히 안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는 일로 바꾸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처음에는 나의 글 솜씨가 좋지 않아 부끄럽기도 했었지만 20대의 내 생각이 다르듯 30대의 내 생각도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독서의 폭을 넓힘으로써 누군가가 고뇌하고 힘들게 쓴 글은 나에게 좋은 귀감이 됩니다. 저에게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더더욱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만들고 지혜를 선물해주기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점점 생각이 많아지는게 때로는 머리가 아파올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이 에세이는 저는 천주교 신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미사를 볼때 신부님 강론 말씀을 듣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신부님이 말씀해주는 것처럼 들려옵니다. 항상 생각해왔지만 신부님들 강론을 들을때면 어쩜 저렇게 말씀을 잘할까 그런생각을 할때가 있는데 우리 본당 신부님이 말씀해주는 것처럼 한 우화를 얘기해주고 그 우화에 걸맞는 생각을 우리에게 가져보라는 그런 의미의 책이였습니다.그리고 희생,봉사,사랑,배려,긍정의 삶들에 대해 고스란히 기재되어 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행복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 구절이 나에게도 와닿았다. 지금 시작한지 얼마 안된 회사에서의 적응!! 본의 아니게 나에게는 새로운 지역에서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많이 힘들고 어려웠다.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처럼 나또한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에 대해서 많이 아팠다. 하지만 사람의 천성적인 성격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것처럼 우리 부모님은 남에게 잘 대해주는 성향인데 그것 또한 내가 너무 닮았다. 그래서 나보다 남을 더 챙기는 그 미련함이 나를 힘들게 할때도 많았다. 문득 그 성향이 바라는 목적이 있을때 힘들어진다는 건데 오히려 내가 아니라 받는 상대가 나를 계산적으로 생각할때 그게 가장 마음이 아팠다.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는게 그래서 종교를 통해 봉사하는 삶이 나에게는 더 잘 어울리는 걸 깨닫는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진정한 내 성향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부님의 말씀처럼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로라는 것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 위로를 해줄 수 있다고 느껴진다. 내 자신도 여유가 없다면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기가 힘든건 현실이다. 그래서 종교의 힘을 빌리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에게서 받을 수 없는 위로를 종교로 받으려고 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분들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신부님의 말씀을 종교와 상관없이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