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면 죽는다 - 비밀이 많은 콘텐츠를 만들 것
조나 레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윌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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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작법서로 시작해서 철학서로 끝나는 책.


뜻밖에 깊은 삶의 통찰을 주는 책


좋은 책은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이자 콘텐츠는 인생이라는 당연하면서도 역설적인 사실을 가르쳐준다.



정말 지루하면 죽을까?



<지루하면 죽는다>의 원제는 Mystery다. 미스터리가 가지는 힘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출판사 측에서 제목을 참 자극적으로 뽑은 것 같다. 미스터리가 죽고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제목을 '지루하면 죽는다'고 지은 걸까?




정말 지루하면 죽을까? 인간은 지루한 걸 지독히도 싫어한다. '지루해 죽겠다'라는 말은 너무나 쉽게 입에서 튀어나온다.


예전에 어떤 실험이 있었다. 사람을 3일 동안 방에 가둬두는 실험이었다. 그에게는 어떤 자극도 주어지지 않았다. 내다볼 창문도 없고 책도 없고 TV도 없었다. 3일만 견디면 상당한 금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 사람은 굉장히 힘들어했다고 한다.


교도소에서 가장 큰 형벌은 독방에 갇히는 것이다. 어둡고 좁고 더럽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 지루한 건 사람을 반쯤 죽여놓는다. 하지만 정말 죽이는 것은 아니다.



지루하면 죽는 건 사람이 아니다. 


그건 바로 콘텐츠다.


지루한 콘텐츠는 죽는다.


지루하지 않는 콘텐츠만 살아남는다.


그리고 지루하지 않은 콘텐츠의 비밀은 


미스터리다.



인간의 뇌는 미스터리를 좋아한다


인간의 뇌는 알 수 없는 것에 끌린다. 왜 모바일 게임 랜덤 가챠가 그리도 인기를 끌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왜 카지노의 슬롯 머신이나 빠칭코에 사람들이 그리도 환장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왜 매주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몇 백만명이나 되는가?


인간의 뇌는 알 수 없는 결과에 환장한다.


도파민계에는 묘한 특징이 있다. 인간의 뇌는 항상 문제 해결과 향후 예측을 시도하며 패턴을 만드는 기계지만,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예측 오류, 즉 예상하지 못했던 보상과 뜻밖의 사실이다.


<지루하면 죽는다> 27p


그런데 우스운 것은 '하나도' 예측할 수 없으면 싫어한다. 인간의 뇌는 단서가 있는 예측을 좋아한다. 예측할 단서가 있고 그 의미를 해석하길 즐긴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이 틀렸을 때 미친듯이 기뻐한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을 때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범인이 아니면 뒤통수를 맞고 짜릿함을 느끼듯이.


여기서 중요한 건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건 독자에게 중요하다. 창작자에게 중요한 건 독자가 '추리를 했다'는 사실이다. 독자는 충분히 추리를 즐긴 다음에 뒤통수를 맞길 바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오리무중, 난해하고 알쏭달쏭한 내용 전개만 보다가 갑자기 범인을 보고 놀라길 바라는 추리 소설 독자는 없을 것이다. 독자는 '과정'을 함께 하며 정보를 제공받고 예측을 한다. 그것이 진짜 재미다. 반전은 그 다음 일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탐정소설의 묘미는 체포 그 자체가 아니라 추격전이라 했다. 애드거 앨런 포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살인 자체가 아니라 그 살인범을 잡기 위한 수사 과정, 즉 미스터리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뭔가를 '모른다'는 점에 끌리고 그것을 즐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단서는 주어져야 한다. 독자는 기꺼이 이야기라는 숲에서 길을 찾고 싶어하지만 대책없이 헤매고 싶은 것은 아니다. 빵부스러기는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이다.




난해해서 끌리는 것들



(카니예 웨스트의 'Runaway'- 도입부 1분만이라도 들어보세요)


카니예 웨스트의 'Runaway'는 모두의 예측을 깨트리는 곡이었다. 힙합 곡임에도 피아노 소리, 그것도 건반 한 개를 치는 소리가 이어진다. 그러다가 기대하던 박자보다 이른 순간에 갑자기 드럼이 치고 들어온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기대하는 전개가 있다. 이쯤에서 이 박자에서 정확하게 듣기 좋은 음이 들어오길 기대한다. 이게 Pop이다. 그런데 그것을 깨트리는 음악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음악들이 전설로 남는다. 

곡의 흐름 뿐 아니라 가사도 마찬가지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이야, 싶은데 끌리는 노래. 비틀즈의 후기 곡들이 그렇다. 

(콘플레이크 위에 앉아 밴이 오길 기다린다고?)


당시 마약을 먹고 지은 곡들이라 가사가 정말 말도 안되는 내용들이 많은데 어째서인지 그 가사가 끌린다. 오히려 신선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충분히 신나고 멜로디를 따라갈 수 있는 곡이다. 


파격적이고 난해하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는 정도의 곡. 


뇌의 반응이 가장 활발해 지는 것은 '난해한' 지점이라고 한다. 


바흐의 푸가를 들을 때,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시를 읽을 때,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음악을 볼 때, 뭘 그린 건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그림을 볼 때. 어떻게 한 건지 알 수 없는 마술을 볼 때. 패턴을 알 수 없는 암호를 볼 때. <블레어 위치>처럼 기존의 장르 문법을 깬 파격적인 영화를 볼 때. 자동차 광고 임에도 카피 문구에 '고물(Lemons)'이라고 써놓은 폭스바겐 광고처럼.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햄릿처럼. 묘한 표정의 모나리자를 볼 때처럼. 


이것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의 역설이다. 그들은 이해하기 쉽거나 매끄럽지 않다. 우리를 깊이 건드리는 것은 쉬운 콘텐츠가 아니다. 구두점이 없는 시, 전례가 없는 음악, 원칙을 깨는 동화, 기존의 장르적 클리셰를 거부하거나, 영리하게 비꼬아 활용하는 영화에 주목한다.


<지루하면 죽는다>, 146p



이해 할 수 없어서 다시 보게 되는 것들



컨텐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번 보고 마는 것, 자꾸만 보게 되는 것.


자꾸만 보게 되는 것들은 쉬운데 중독성이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상어가족 노래처럼) 이해할 수 없어서 자꾸 보게 되는 것들도 있다.


쉽게 예를 들어보겠다.



<인셉션>. 엔딩의 의미를 확실히 몰라서 자꾸 보게 된다. 마지막에 팽이가 돌고 있는가, 돌다가 멈췄는가?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보게 되고 또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매트릭스>. 의미심장한 대사들, 설정들, 상징들, 심지어 영웅의 서사까지.(네오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우리는 레저렉션이 나오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감명을 받는다. 단지 영상적인 밈으로써뿐 아니라 정신적인 여정까지 계속해서 소비된다. 


<반지의 제왕>. 세계의 창조부터 시작하는 그 위대한 서사는 때로 따라가기 벅차고 다 기억할 수도 없다. 흔히 아는 영화 3부작만 해도 볼 때마다 감명을 받고 또 그 안의 설정이나 세계관을 음미하고 탐구하게 된다. 그러니 자꾸 보게 된다. 영화도 드라마도 게임도 계속 나오고 팬 아트로 창작되고 소비된다.


<듄>. 복잡한 세계관과 설정, 주인공의 난해한 인생역정까지. 


폴이 예언을 실행했기 때문에 예언이 실현되었다. 하지만 실행하지 않았다면 예언은 예언으로 남았을 뿐이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게 옳은 일이었을까? (마녀의 예언을 듣고 실행한 <맥베스>와 비슷하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 또한 예언과 관련되어 있다.)


드라마가 되고 영화가 되고 여러가지로 변주되는 대작들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세월이 지나도 계속해서 소비되고 재창작되는 이유는 한 번에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저자는 '한계 없는 게임'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고전, 예술작품, 시들은 한계 없는 게임이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자꾸만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변주한다.


선명한 것이 분명 더 쉽다. 하지만 우리가 <화이트 앨범>과 J.D. 샐린저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계속 다시 듣고 읽는 이유는 신탁처럼 해석해야 하는 메시지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서 오는 쾌감 때문이다. 작품 속의 진리는 살아있고 계속 바뀌고 있다. 우리처럼.


예술은 거울이다.


<지루하면 죽는다> 214p



한계 없는 게임



학생들에게 고전을 가르치는 이유는 

미지의 무언가를 맞닥뜨리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예요.


<지루하면 죽는다> 241p



한계가 있는 게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게임이다. 마치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없는 게임은 승자도 패자도 없고 오로지 플레이어만 존재하는 게임이다. 마치 어린 시절에 골목에서 하던 게임처럼.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게임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계가 있는 게임은 정답을 찾아야만 하는 수능의 언어영역이고 한계가 없는 게임은 그저 좋아서 작품을 읽고 해석하려고 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한계 없는 게임은 우리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경외감'이다. 우리를 압도한다. 


'이걸 어떻게 하지?' 싶은 것들이다.

(전율과 눈물을 불러오는 장인의 정성들)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모르겠는 시, 설명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마술 트릭, 어떻게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그림, 어떻게 지었는지 알 수 없는 교회 건축물, 세 번째로 다시 보는데 눈물이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영화. 이보다 더 명백한 미스터리가 있을까.


<지루하면 죽는다> 243p


이보다 더 명백한 미스터리가 있다. 

그건 바로 삶이다. 

삶이야말로 모호함, 난해함, 미스터리, 한계 없는 게임의 결정체다. 

예술이란? 사람이란? 삶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그것들. 정답이 없는 그것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매일 매달리는 미스터리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인생은 한계 있는 게임으로 보인다. 실패 아니면 성공, 부자 아니면 가난, 가진 자 아니면 못 가진자. 이런 식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을 쪼그라트리고 나와 타인을, 인간의 삶 자체를 극단적으로 평가한다. 미스터리가 자리잡을 곳이 없다. 우리는 인생에는 성공 아니면 실패만 존재할 것처럼 달려간다.


그러나 인생은 그런 이분법적 사고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모호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인생은 한계가 없는 게임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우리는 스스로를 불행에 밀어넣는다. 



저자는 미스터리와 더불어 살아가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미스터리가 있음을, 삶에 미스터리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마음을 가지게 해준다고.



예술은 우리에게 미스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긴장감 넘치는 반전과 다층적인 세상, 불투명한 등장인물과 모호한 대사를 통해 예측 오류를 즐거이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훈련한다. 확실한 증거를 찾는 일보다 의구심을 갖는 게 더 쓸모 있으며, 알아차림의 상태에 머무는 마음챙김이 더 즐겁다고 일깨운다. 우리는 기쁨의 근원이 과정에 있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려는 시도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필요한 이유는 삶에서 미스터리를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미지의 영역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완벽한 진실을 원하지만 사실 그런 건 없다. 가장 그럴 듯한 이론은 부정당하고 사실은 변조되며, 결국 우리는 거의 모든 것에서 오류를 범한다. 이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루하면 죽는다> 294p


우리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은 무섭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은 '불확실'이다.


현실이 항상 유동적이며 우리가 아는 것은 이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겁에 질리게 한다. 이것이 '마음놓침'이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미스터리를 거부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식으로 겁에 질려 마음을 놓치는 바람에 우리는 수많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음을 놓치면 사람은 절대적인 것에 매달리게 된다. 삶을 한계 있는 게임으로 만든다.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본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훨씬 미스터리하죠.


<지루하면 죽는다> 286p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겁에 질리지 않고 우리 삶의 미스터리에 대처해 나갈 수 있을까?


저자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 열쇠라 말한다. 마음챙김을 실현하는 방법은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라고.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아직 미스터리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뭔가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 그 느낌을 잊지 말고 항상 이런 느낌이라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환기해야 해요. 우리에게 살아있는 기분과 재미를 느끼게 하고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은 모르는 것들이거든요.


<지루하면 죽는다> 287p, 엘런 랭어(마음챙김 연구자)


모르는 것이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고 또한 동시에 힘이 나게 하고 살아가게 한다는 것은 행복한 아이러니다. 


단서가 주어지지 않는 추리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기에 힌트가 필요하다. 우리네 인생이란 미스터리에는 힌트가 있는가? 차분히 생각해 보면 있을 것이다. 재미, 취향, 가치관, 새로움, 흥미, 목표, 꿈, 의미 등등...그렇기에 즐겁게 예측해 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인생을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확정지어버린다면 인생은 지루해진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 모호하고 난해한 그 결들을 즐기고 탐구할 줄 안다면 우리의 인생은 훨씬 재미난 것, 흥미로운 것이 될 것이다. 한계가 없는 게임이 될 것이다. 더 살 맛이 나고 살아갈 용기가 날 것이다.


그렇다면 지루하면 죽는다는 것이 맞는 말인 셈이다. 


인생을 지루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 그것이야 말로 우리를 죽이는 일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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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면 죽는다 - 비밀이 많은 콘텐츠를 만들 것
조나 레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윌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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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서로 시작해서 철학서로 끝나는 책.
뜻밖에 깊은 삶의 통찰을 주는 책.
좋은 책은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이자 콘텐츠는 인생이라는 당연하면서도 역설적인 사실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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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흐른다 (특별판 트레싱지 에디션) - 삶의 지표가 필요한 당신에게 바다가 건네는 말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FIKA(피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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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극강의 아름다움
이런식으로 깊이없어 보이는 번역이 군데군데 눈에 띄는게 아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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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팅 : 더 나은 인생을 위한 그만두기의 기술
줄리아 켈러 지음, 박지선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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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려치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다른 가능성, 희망을 선택하라는 이야기.
그리고 만연한 무지성 자기계발서 중독에 경각심을 일꺠우고 그 기원을 꺠우쳐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유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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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팅 : 더 나은 인생을 위한 그만두기의 기술
줄리아 켈러 지음, 박지선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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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만두는 것을 죄악시합니다.

그만두는 것이 실패의 상징인 것처럼 이야기하죠.

그릿, 꾸준함, 그런 것들을 성공의 지름길이라 생각하며 칭송하고 따릅니다.

그런데 끈기 있게 버티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살면서 그만두어야 할 때에 그만두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첫 직장은 전혀 제 전공 분야도 아니었고 회사도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첫 직장에 들어가면 2년은 다녀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냥 버텼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텼죠.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서, 저의 진짜 재능은 바닥에 내버리면서요.

저는 정말로 그만두기, <퀴팅>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버텼습니다. 참 후회됩니다. 그만둔다는 옳은 선택을 하지 못했던 점이.

무언가를 하다가 도중에 그만두는 것을 우리는 '포기'라고 부르며 실패자나 하는 일이라고 비난합니다. 의지 박약인 사람들이 포기한다고 말하며, 심지어 사회 부적응자라고 까지 몰아가죠.

무언가를 끝까지 붙잡고 매달리는 사람은 대단하다고, 심지어 영웅이라고까지 칭송받습니다. 열정적이라고 칭찬받지요. 하지만 도중에 그만두고 떠난 사람은 떠났다고 비난받습니다.

문제는 그만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떠난 이유 아닐까요?


우리는 정말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만두는 것만이 답일 때가 있습니다.

끈기, 그릿, 열정, 꾸준함만이 왕도는 아닙니다.

바른 방향, 옳은 방향, 내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건 분명 버틸 만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배반하고 억압하고 나를 고통받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머무르는 것은 잘못된 그릿이라고 <퀴팅>의 저자는 말합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자질은

잘못된 방향으로의 그릿이다.

존 A. 리스트


<퀴팅> 즉, 그만두기는 사람들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 배경에는 꽤나 많은 신념과 문화적 요소들이 얽혀있는데요.

19세기 말 부상하는 시장경제 속 미국에서는 자기계발서가 대대적으로 유행했고, 당시 '내 인생은 나 하기에 달렸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나에게 달렸다'는 식의 주장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무자비하고 복잡해지는 세상속에서 성공할 수 있는 '단순한 규칙과 비결'을 사람들이 원했기 때문이죠.

실제 삶이란 불확실하고 도박과도 같으며 많은 운과 확률에 좌우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그저 '나의 노력에 달려있다'라고 맹목적으로 생각함으로써 인간의 운명을 단순하게 믿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그저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라는 믿음을 심은 것이 100년도 전에 살던 사람의 사상이라는 것이 씁쓸합니다.

이 부분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네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 아니, 외면하기 위해서 그저 뭐든 간에 꾸준히 계속하기를 선택하는 것. 그런 잘못된 그릿을 끊어내는 것이 <퀴팅>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그만두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문화적으로 그만두는 것은 나태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주입받아 왔기 때문에 수치심 등을 느끼고 죄악시하게 된 것이죠. 그릿이 성공을 뜻하고 퀴팅은 패배를 뜻한다는 식으로 이분법적 사고를 주입받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그릿 아니면 퀴팅, 꾸준히 버티기 아니면 그만두기 - 아니, 도망가기, 성공 아니면 실패 밖에 없다는 식으로요.


세상은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는 제로섬게임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라 때로는 누구나 승자도 패자도 될 수 있는 곳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퀴팅> 130p


우리는 승리자가 되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어서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읽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자기계발서만 읽어댄다고 바라는 미래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요?


규칙은 좋은 거죠.

사람들은 전략이 필요해요.

폴 피터슨


자기계발은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사업'의 영역입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발전하고 싶어하며 자극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노린 것이 자기계발, 라이프코칭 사업입니다.

그들은 꾸준히 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말을 믿고 사람들이 책을 읽고 확언을 하고 블로그에 매달리는 동안 그들은 돈을 쓸어 담습니다.

진짜 돈을 버는 사람은 그들의 말을 믿고 정작 해야하는 일에서 멀어져 잘못된 그릿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진짜 해야할 일을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신랄하게 말하는 이유는 최근에 한가지 <퀴팅>을 했기 때문인데요.

하와이 대저택의 <더 마인드>를 읽어보니 100일간 긍정 확언 문장 100번쓰기를 아침에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루 해보았습니다만. 30번쯤 쓰고 노트를 닫았습니다.

이건 잘못됐다, 에너지와 의식 낭비다, 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군요. 그 시간에 제 명료한 정신을 제가 정말 해야할 일에 쏟아야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긍정 확언을 100일간 하는 것보다 그 확언을 이루기 위해 100일간 노력하는 게 나아보이더군요.

저에겐 명백하게 <퀴팅>의 순간이 보였습니다.

책을 더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사실 <퀴팅>은 단순히 그만두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그만두는 일은 사실은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 위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 일은 어떤 가능성을 감지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죠.


한마디로 <퀴팅>이란 희망입니다.

새로운 미래, 더 나은 삶이 존재하리라 믿는 힘에서 나오는 선택입니다.

<퀴팅>은 반드시 한꺼번에 다 때려치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고수하던 성공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방법을 그만두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도 포함합니다.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찾는 부분적인 <퀴팅>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도움되지 않는 꾸준함을 버리는 일입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지 말고

몇 가지만 내려놓으면 어떨까?

퀴팅이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퀴팅> 214p


불합리한 노동환경, 지랄맞은 상사, 과중한 업무, 그야말로 "영혼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일까요? 정말 포기하는 게 죄인가요? 그리도 부끄러운 일일까요?


퀴팅은 비관주의, 게으름, 자신감 부족과 연결되므로 삶에서 나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노동경제학에서 퀴팅은 정반대의 의미다. 이 학문에서 퀴팅은 노동자들이 미래를 낙관한다는 뜻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뜻이다.

<퀴팅> 315p


저자는 퀴팅이 패배가 아니라 결정이며 전환점이라 말합니다.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고요.

과학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틀렸다고 증명된 이론을 포기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분명 무언가를 그만두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때의 그만두기는 포기도 도망도 아닙니다. 그저 필수불가결한 단계일 뿐이죠.


그만둔다는 건 삶 자체를 선택하는 겁니다. 살아있는 것의 목적은 도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면

살아 있어야 할 의무를

그만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퀴팅> 321p


변화가 두려워서, 스스로 생각하기가 자신이 없거나 두려워서 어거지로 현재의 꾸준함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나요? 다른 미래를 꿈꾸는 마음, 지금은 아니다 라고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퀴팅>을 통해서 다른 선택지를 탐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매체 속의 그만두기 장면을 통해서 대리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저자는 추천하더군요.

그만두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그만두기가 쉽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꾸준함이 어려운 만큼이나 그만두기도 어렵죠. 사람들은 불확실을 무서워합니다. 저도 무섭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고통을, 확실한 현재를 선택하곤 합니다.


그만두려면 높이 뛰어올라야 해요

<퀴팅> 106p


나를 둘러싼 억압의 울타리를, 현실 안주의 울타리를, 고통의 관성을 깨트리려면 높이 뛰어올라야 합니다.

부디 <퀴팅>을 통해서 나 자신에게 진실한 바른 그릿을 찾고 자기계발서에서 권하는 맹목적인 꾸준함의 위험성에 대해서 한번 재고해보시기 바랍니다.


※해당 리뷰는 출판사에서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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