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팅 : 더 나은 인생을 위한 그만두기의 기술
줄리아 켈러 지음, 박지선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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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만두는 것을 죄악시합니다.

그만두는 것이 실패의 상징인 것처럼 이야기하죠.

그릿, 꾸준함, 그런 것들을 성공의 지름길이라 생각하며 칭송하고 따릅니다.

그런데 끈기 있게 버티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살면서 그만두어야 할 때에 그만두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첫 직장은 전혀 제 전공 분야도 아니었고 회사도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첫 직장에 들어가면 2년은 다녀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냥 버텼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텼죠.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서, 저의 진짜 재능은 바닥에 내버리면서요.

저는 정말로 그만두기, <퀴팅>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버텼습니다. 참 후회됩니다. 그만둔다는 옳은 선택을 하지 못했던 점이.

무언가를 하다가 도중에 그만두는 것을 우리는 '포기'라고 부르며 실패자나 하는 일이라고 비난합니다. 의지 박약인 사람들이 포기한다고 말하며, 심지어 사회 부적응자라고 까지 몰아가죠.

무언가를 끝까지 붙잡고 매달리는 사람은 대단하다고, 심지어 영웅이라고까지 칭송받습니다. 열정적이라고 칭찬받지요. 하지만 도중에 그만두고 떠난 사람은 떠났다고 비난받습니다.

문제는 그만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떠난 이유 아닐까요?


우리는 정말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만두는 것만이 답일 때가 있습니다.

끈기, 그릿, 열정, 꾸준함만이 왕도는 아닙니다.

바른 방향, 옳은 방향, 내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건 분명 버틸 만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배반하고 억압하고 나를 고통받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머무르는 것은 잘못된 그릿이라고 <퀴팅>의 저자는 말합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자질은

잘못된 방향으로의 그릿이다.

존 A. 리스트


<퀴팅> 즉, 그만두기는 사람들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 배경에는 꽤나 많은 신념과 문화적 요소들이 얽혀있는데요.

19세기 말 부상하는 시장경제 속 미국에서는 자기계발서가 대대적으로 유행했고, 당시 '내 인생은 나 하기에 달렸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나에게 달렸다'는 식의 주장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무자비하고 복잡해지는 세상속에서 성공할 수 있는 '단순한 규칙과 비결'을 사람들이 원했기 때문이죠.

실제 삶이란 불확실하고 도박과도 같으며 많은 운과 확률에 좌우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그저 '나의 노력에 달려있다'라고 맹목적으로 생각함으로써 인간의 운명을 단순하게 믿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그저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라는 믿음을 심은 것이 100년도 전에 살던 사람의 사상이라는 것이 씁쓸합니다.

이 부분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네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 아니, 외면하기 위해서 그저 뭐든 간에 꾸준히 계속하기를 선택하는 것. 그런 잘못된 그릿을 끊어내는 것이 <퀴팅>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그만두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문화적으로 그만두는 것은 나태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주입받아 왔기 때문에 수치심 등을 느끼고 죄악시하게 된 것이죠. 그릿이 성공을 뜻하고 퀴팅은 패배를 뜻한다는 식으로 이분법적 사고를 주입받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그릿 아니면 퀴팅, 꾸준히 버티기 아니면 그만두기 - 아니, 도망가기, 성공 아니면 실패 밖에 없다는 식으로요.


세상은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는 제로섬게임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라 때로는 누구나 승자도 패자도 될 수 있는 곳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퀴팅> 130p


우리는 승리자가 되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어서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읽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자기계발서만 읽어댄다고 바라는 미래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요?


규칙은 좋은 거죠.

사람들은 전략이 필요해요.

폴 피터슨


자기계발은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사업'의 영역입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발전하고 싶어하며 자극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노린 것이 자기계발, 라이프코칭 사업입니다.

그들은 꾸준히 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말을 믿고 사람들이 책을 읽고 확언을 하고 블로그에 매달리는 동안 그들은 돈을 쓸어 담습니다.

진짜 돈을 버는 사람은 그들의 말을 믿고 정작 해야하는 일에서 멀어져 잘못된 그릿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진짜 해야할 일을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신랄하게 말하는 이유는 최근에 한가지 <퀴팅>을 했기 때문인데요.

하와이 대저택의 <더 마인드>를 읽어보니 100일간 긍정 확언 문장 100번쓰기를 아침에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루 해보았습니다만. 30번쯤 쓰고 노트를 닫았습니다.

이건 잘못됐다, 에너지와 의식 낭비다, 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군요. 그 시간에 제 명료한 정신을 제가 정말 해야할 일에 쏟아야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긍정 확언을 100일간 하는 것보다 그 확언을 이루기 위해 100일간 노력하는 게 나아보이더군요.

저에겐 명백하게 <퀴팅>의 순간이 보였습니다.

책을 더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사실 <퀴팅>은 단순히 그만두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그만두는 일은 사실은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 위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 일은 어떤 가능성을 감지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죠.


한마디로 <퀴팅>이란 희망입니다.

새로운 미래, 더 나은 삶이 존재하리라 믿는 힘에서 나오는 선택입니다.

<퀴팅>은 반드시 한꺼번에 다 때려치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고수하던 성공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방법을 그만두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도 포함합니다.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찾는 부분적인 <퀴팅>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도움되지 않는 꾸준함을 버리는 일입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지 말고

몇 가지만 내려놓으면 어떨까?

퀴팅이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퀴팅> 214p


불합리한 노동환경, 지랄맞은 상사, 과중한 업무, 그야말로 "영혼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일까요? 정말 포기하는 게 죄인가요? 그리도 부끄러운 일일까요?


퀴팅은 비관주의, 게으름, 자신감 부족과 연결되므로 삶에서 나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노동경제학에서 퀴팅은 정반대의 의미다. 이 학문에서 퀴팅은 노동자들이 미래를 낙관한다는 뜻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뜻이다.

<퀴팅> 315p


저자는 퀴팅이 패배가 아니라 결정이며 전환점이라 말합니다.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고요.

과학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틀렸다고 증명된 이론을 포기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분명 무언가를 그만두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때의 그만두기는 포기도 도망도 아닙니다. 그저 필수불가결한 단계일 뿐이죠.


그만둔다는 건 삶 자체를 선택하는 겁니다. 살아있는 것의 목적은 도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면

살아 있어야 할 의무를

그만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퀴팅> 321p


변화가 두려워서, 스스로 생각하기가 자신이 없거나 두려워서 어거지로 현재의 꾸준함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나요? 다른 미래를 꿈꾸는 마음, 지금은 아니다 라고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퀴팅>을 통해서 다른 선택지를 탐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매체 속의 그만두기 장면을 통해서 대리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저자는 추천하더군요.

그만두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그만두기가 쉽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꾸준함이 어려운 만큼이나 그만두기도 어렵죠. 사람들은 불확실을 무서워합니다. 저도 무섭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고통을, 확실한 현재를 선택하곤 합니다.


그만두려면 높이 뛰어올라야 해요

<퀴팅> 106p


나를 둘러싼 억압의 울타리를, 현실 안주의 울타리를, 고통의 관성을 깨트리려면 높이 뛰어올라야 합니다.

부디 <퀴팅>을 통해서 나 자신에게 진실한 바른 그릿을 찾고 자기계발서에서 권하는 맹목적인 꾸준함의 위험성에 대해서 한번 재고해보시기 바랍니다.


※해당 리뷰는 출판사에서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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