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 - 꽃 같은 말만 하라는 세상에 던지는 뱀 같은 말
조이스 박 지음 / 스마트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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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모자가 하고 싶은 "


딸아이의 체온계가 39도를 가리킨다
특발성 저신장증 , 작은 여성이 이불속에서 고열로 오들오들 떨며 잠들어 있는 시간, 나는 깊은 속에서 들려오는 빨간 모자의 말을 듣고 있다. 조이스 (Joyce Park)님의 『빨간 모자가 하고 싶은 말』(스마트북스) 읽는다.

연구에 따르면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노년층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정보를 함축한 언어와 예술의 상징성과 추상성도 확연히 늘어났다고 한다. (이상희, 『인류의 기원』 참조) 어쩌면 그때부터 노인들은 경험과 지혜를 상징과 추상으로 담아, 입에서 입으로 전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수만수천 동안 우리 모두에게 동화는 문신처럼 남겨져 있다.

『빨간 모자가 하고 싶은 말』은 오래전 속에서 화덕 옆에 앉은 포츈(fortune) 음성이고, 잘려나간 손으로 아기를 안기 위해 살을 끌어올린 엄마의 비명이며, 늑대 배를 갈라 돌을 채우는 빨간 모자가 흘린 땀이다. 책에는옛날 옛적에 시작하여그리하여 둘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마무리되는 같은이야기들 21편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정말 꽃인 줄로만 알고 다가서면 아플 것이다. 빨간 모자가 하고 싶은 진짜 읽는 순간, 당신의 몸과 마음 곳곳에서 통점들이 꿈틀댈 테니까.

피부에는 온점, 냉점, 압점 그리고 통점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감각이 통점이다. 아프고, 참기 힘든, 온갖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알아차리기 위해 통점이 있다. 고통을 감지해야 생존을 위해 화들짝 움직이게 되는 메커니즘, 그것이 생명이다

“(...)
한때 손이 잘렸던 여자들이, 한때 가짜 손을 달았던 여자들이, 여자로 태어나 인간으로 완성되는 모퉁이에서 받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 손목 뿌리만 남은 손을 가지고 울며 세상을 떠돌던 삶은손을 내밀어 뻗겠는가?”라는 질문에그러겠다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마음을 먼저 내밀어 뻗으면 손이 따라 자라서 드디어 온전한 존재로 완성된다.” 

『빨간 모자가 하고 싶은 말』의 모든 문장, 문장마다 피부 1cm제곱당 100-200 개가 존재한다는 통점이 빼곡히 있다. 통점 하나하나에 아파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Joyce Park님이 다가와 속삭여준다. , 이제 행복하기 위해 잘린 손목에서 생살을 키워 손을 뻗어보자고, 이제 살기 위해 생명으로 가자고, 그렇게 존재하기 위해 우리 사랑하자고

“(…)
빨간 모자는 남들 눈에 보기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남들이 살라는 대로 살아가는,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정말로 원하는 것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어린 여성의 모습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억누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 보면 무의식 어디에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프고 병들어 자리에 누운 할머니가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그런 소리가. ” 

딸아이가 작은 키로 동급생에게장애아라고 놀림을 받던 , 나는 세상의 모든 딸들이특발성(特發性, idiopathic)’ 상태 같다고 느꼈다. "아무 문제없는 상태"이지만 비정상군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꽃과 보석 같은 말을 해서 살아남은 , 발을 내딛을 때마다 칼에 찔리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사랑을 위해 춤추었던 인어공주, 그렌델의 팔을 뽑아 죽인 베오울프, 그리고 스스로 늑대에게 잡아 먹히고 새롭게 태어난 빨간 모자. 모두 특발성이다. 여자라서, 여자니까, 여자잖아- 아니다. 남성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 속에 들어앉은 어떤여성성”, 특발성 상태 주목해야 한다

확언컨데, 『빨간 모자가 하고 싶은 말』이 들려주는 여성성은맘충이란 말에 파르르 떨며 주저앉은 82년생 김지영보다 선명하고 분명하다. 또한개시건방진모습이라며 여성정치인의 포스터가 훼손될 때마다 우리의 통점이 자극되었던 이유도 감지할 있게 해준다

지금 딸아이의 이마를 짚어보니 해열제 탓인지 더운 열이 식었다. 아니, 어쩌면 수면 깊은 속에서 감기 바이러스로 변장한 늑대와의 한판 승부에서 돌아오는 인지도 모른다. 2살의 어린 딸이 숲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는 사진을 꺼내어 본다... “아가, 숲으로 들어가거라. 늑대에게 잡아 먹히거라. 그리고 배를 갈라 돌을 넣어 빨간 모자가 되어 돌아오자. 그렇게 열병이 끝나는 아침에 너에게 들려줄 옛날 옛적 이야기가 있거든.”



아프지만 아름답고 강인한 해열제 같은
Joyce Park 
님의 『빨간 모자가 하고 싶은 말』

진심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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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atgrim/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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