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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 - 인간의 문명을 정복한 식물이야기
리처드 메이비 지음, 김영정 옮김 / 탐나는책 / 202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에게 잘 길들여진 반려식물이나 텃밭 작물들을 다룬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은 사실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며 하대하고 경계하는 식물들에 대한 책입니다.
작가인 리처드 메이비는 이 책이 잡초를 변호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라고 털어 놓는데요, 우리가 골칫거리로만 여기는 잡초의 본모습을 좀 더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바라보자고 말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잡초도 그저 존재할 뿐... 잡초도 나름의 생태학적 정의와 지위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잡초를 인간의 계획을 방해하고, 인간 관점의 아름다움을 위해 섬세하게 설계된 풍경을 망쳐놓고, 농사와 정원일을 방해한다고만 생각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한 발 물러나 어떻게 보면 잡초를 변호하려는 입장을 가진 책이라 무척 흥미롭습니다.
잡초를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특히, 아름다운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분이라면), 적어도 잡초를 중립적이고 생태학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책입니다.
잡초는 생태학적 의미 뿐만 아니라 사회학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본래 외래종의 잡초는 유입 및 정착과정에서 토착 식물들이 속했던 공간과 자원을 차지함으로써 다문화주의를 떠오르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외래종의 이국적이고 기이한 습성, 때론 독을 가지거나 끝도 없이 번식하는 것과 같은 위험한 특징은 토착종을 끊임없이 위협합니다.
토착민과 이주민과의 갈등, 이주민을 우리 밥그릇을 뺏어가는 하등하고 위험한 존재로 취급하는 인간세계의 모습은 잡초를 저급한 하층민으로 취급하는 것과 소름끼치게 닮아있습니다. 잡초를 포용력있게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땅으로 이주하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막을 것인가... 뚜렷한 정답이 없는 이 난제는 사람의 세계와 식물이 사는 세계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잡초는 부적절한 곳에서 자랄 때 또는 잘못된 문화로 들어올 때 식물이 아닌 방해꾼 취급을 받습니다. 어떤 곳에서 잡초는 냉이처럼 식량 작물이 될 수도 있고, 개양귀비처럼 아름다운 꽃밭의 풍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생태계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으로 옮겨지면서(주로 인간의 활동에 의해), 그 식물은 자신을 적당히 먹어치워주는 곤충과 토착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이들은 제어불가능한 외래종 잡초로 취급받으며 사람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게 되는 것이죠.
몬스테라, 고무나무, 아레카야자 등 우리 실내 환경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식물 이야기만 듣다고 웬 잡초?!! 하며 당황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본래 쓰여진 문체가 어려운 것인지,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술술 읽히는 맛은 없어요.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 중심을 두고 읽으면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우리 인간과 너무나 닮아있는 잡초의 이야기, <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