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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늘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았던 20대의 어느 날에 영문으로 읽어본 작품이고, 이제 그 기억이 희미해진 40대에 다시 읽어보게 된 소설입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입니다. 휴머니스트에서 멋진 표지 디자인과 매끄럽고 깔끔한 번역으로 출간되었네요. 사투리도 실감나게 표현한 번역이 재미있었던 버전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폭풍의 언덕>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동생으로 먼저 기억되고 싶진 않겠죠. 단숨에 명성을 얻은 언니 샬럿의 <제인 에어>와는 달리 <폭풍의 언덕>은 그 당시 가치관과 도덕,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비판을 받다가 사후에야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됩니다.
시골풍, 비도덕적, 야만적이라는 비판이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재미있게 읽히는 걸 보면 시대를 앞서간.. 아니 초월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심지어 서른 해의 짧은 삶을 살다 간 에밀리가 남긴 유일한 소설이어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 문학 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하고 격정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고 가는 듯한 빠른 흐름의 스토리가 요즘 취향(?)의 소설인지라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극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끝을 잘 들여다보면 비극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결말이어서 더 매력적이고요.
이 책은 20여년 전 영문학 시간에 처음 읽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수업을 위해 읽었던 탓인지, 그때의 내가 너무 미숙했던 탓인지 그때 읽었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클래식 문학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포인트들이 있고, 삶의 변화 과정과 가치관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면이 있어서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폭풍의 언덕 역시 그랬습니다. 워더링하이츠를 내던지는듯 불어오는 황량하고 매서운 바람이 무섭게 느껴졌고, 히스클리프의 편집증적인 집착이 악마나 광인처럼 느껴졌던 젊은 시절의 감상은 이제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굉장히 격정적이고 제목 그대로 폭풍처럼 빠른 호흡과 긴장감으로 읽힌다는 점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았습니다. 하지만 황야에서 곧장 불어오는 바람을 언덕 위에서 홀로 맞고 있는 것처럼 어떤 묘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소설 속 불행을 이끌고 다니는 포악한 인물 히스클리프를 사랑하거나 동정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나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그를 안타까워하는 하녀 넬리의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그만의 천국에 다다랐을 때는 그가 마음의 평화와 자유에 이르게 되기를 바라게 되더라고요.
클래식 문학하면 어렵다는 편견이 있어 잘 다가가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께는 폭풍의 언덕처럼 술술 잘 읽히고 스토리도 캐릭터도 모두 흥미로운 소설을 먼저 읽어보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요즘 막장 드라마 뺨치는 원색적인 재미와 함께 그런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와 여운이 함께 있어서 분명 빠져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