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신작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장편소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리커버 된 예전 소설을 많이 읽었고, 장편보다는 단편을 많이 접했는데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을 만난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레었어요.

그동안 읽은 작품들이 많지는 않지만, 청아하고 깔끔한 문체를 가졌으면서도 의외성이 있는 인물 설정과 조금은 불편한 상황들(불륜, 이별 등)을 소설 속에서 자주 선보이는 작가라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가져왔을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청아함 속에 담담한 파격을 담는 작가라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나를 불편하게 하고, 생각하게 할까...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라는 제목에서 혼자서 마음대로 유추했던 것인데, 이번에도 어떤 쓸쓸한 로맨스와 이별이 펼쳐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세 남녀의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작품이었어요. 죽음이 휘몰아치는 슬픔과 비극으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흘러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새해 새날을 앞둔 어느 날 밤, 한 호텔 방에서 여든 살이 넘은 세 남녀가 엽총으로 자살을 합니다.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소설 속에서 따라가 본 세 남녀의 그날 행적에는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도 없어 보이고요. 그저 새해를 축하하는 것은 내년에도 남아있을 자들의 몫이라며 조용하게(?) 삶을 마무리할 뿐입니다. 

끝에서 죽음에 대한 이유가 밝혀지려나 했는데 서스펜스나 추리극이 아니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나 봐요. 이야기의 흐름이 조금은 모호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 작가가 명확한 답을 던져주는 스타일은 아니더라고요. 굳이 호텔방에서 엽총을 택한 이유 정도는 엿볼 수 있으니 실망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은 이래서 죽음을 선택했어' '죽음은 마땅히 이래야만 해'하고 교훈을 주는 소설이었다면 굉장히 재미없었을 거예요. 게다가 죽음마저 남을 이해시키고 납득시켜야 할 이유는 없겠죠.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그리고 그 방식도 존중받아야 한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까요?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엽총 자살을 선택한 세 노인보다는 세 노인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인공이라고 할 것 없이 많은 주변 인물들이 저마다의 삶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물관계도를 살짝 메모하며 읽어보면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며 그 방식 또한 제각각이겠죠. 주변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죽음은 조금씩 잊히며 일상이 되어 흘러가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도 선택 또는 필연의 순간이 올 것입니다.

 저는 삶에서 삶만을 생각하지 않고, 죽음을 가끔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것은 비극적인 상상이나 막연한 두려움과는 다를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도 삶의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나는 나만의 종이우산을 쓰고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지 한 번쯤은 돌아봐야겠습니다.  

소담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