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풍차 방앗간의 편지
알퐁스 도데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평점 :

알퐁스 도데 하면 '별'과 '마지막 수업'이 떠오르죠. 하지만 그의 다른 문학작품들은 작가의 명성에 비해 쉽게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 전, 아이가 어린이를 위한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집을 읽고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조잘조잘 들려주는데, 의외로 슬프고 비극적인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알퐁스 도데 하면 그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쓸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말한 비극은 어떤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저도 알퐁스 도데의 <풍차 방앗간의 편지>라는 책을 읽게 되었어요. 책 표지에 '프로방스의 색채를 가득 담은 선물 같은 소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책을 읽어보니 이 짧은 문구는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풍차 방앗간의 편지>는 '프로방스의 연대기'라는 제목으로 앞서 발표했던 열두 편의 작품에 다른 열두 편의 단편들을 추가해 1869년 다시 출판한 책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별'을 포함해 총 24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어요.
그동안 동명의 책들이 다수 출간되었는데, 작품 중 일부만 선별했거나 요약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해요. 소담출판사의 <풍차 방앗간의 편지>는 24편 전부를 완역하고, 프로방스어와 라틴어까지 완전하게 번역해 실었으므로 더욱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온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랄까요?
특히 알퐁스 도데가 작품 내내 담아내고 있는 프로방스의 색채와 정서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아내에게 헌정한 단편소설집이라고 하니, 알퐁스 도데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집 같아 더욱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단편소설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단편임을 감안해도 매우 짧은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글은 우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네요.
글을 자주 쓰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장황한 글보다 짧은 글을 쓰기가 오히려 더 어렵거든요. 알퐁스 도데는 짧은 글에 담긴 한 편의 수채화 같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묘사에도 흐트러짐 없이 이야기의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알퐁스 도데의 섬세한 감수성과 서정적인 문체를 느낄 수 있는 문장들을 몇 개만 빌려와 소개해 봅니다. 특히 마지막에 가져온 문장은 실시간 영상지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작가가 묘사한 풍경이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듯해요.
45 page / 녀석들이 무슨 말을 속삭였는지 알고 싶거든 이끼 밑에 숨어서 졸졸 흐르고 있는 수다쟁이 샘물에게 물어보게.
69 page / 나는 어제 아침에 마른 라벤더 향기가 나고 책갈피 대신 거미줄이 쳐진 빛바랜 원고에서 읽은 이야기를 가능하면 그대로 들려주겠다.
88 page / 그리하여 물속으로 뛰어드는 갈매기, 파도와 파도 사이에서 햇빛을 받으며 나부끼는 물거품, 멀어져 가는 연락선의 하얀 연기, 붉은 돛을 단 산호 채집선, 진주 같은 물방울, 양털 같은 안개 등 자신을 제외한 온갖 삼라만상이 되는 것이다. 아, 나는 이 섬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행복한 몽상과 망아의 시간을 보냈던가!

고전문학 작품이지만, 오히려 요즘 스타일 같다! 느낀 부분이 바로 길지 않은 이야기로 다채로운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이었어요. 단편들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마냥 낭만적인 느낌도 있고, 웃음과 해학도 있고, 삶의 애환과 비극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은 비제의 음악, '아를의 여인'의 모티브가 된 작품 '아를의 여인'과 가장 비극적이었던 이야기 '세미양트호의 최후'였어요. 이 외에도 '코로니유 영감의 비밀'은 산업화로 변해가는 프로방스 풍경과 이 책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풍차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담아 특히 인상에 남았어요. 안타까운 영감의 사연 속에서도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어 더 아름다웠던 이야기예요.
'교황의 노새'는 '7년 동안이나 뒷발질을 벼르고 별렀던 교황의 노새 같다'라는 속담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소박하지만 웃음과 해학이 있어 좋았어요. 그 밖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중간중간 딸에게 들려주기도 했는데, 딸아이도 무척 좋아하네요.
아이는 '황금 두뇌를 가진 사내의 전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해요. 이 이야기에서 작가가 결코 강요하지 않는... 억압적이지 않은 교훈을 하나 가져왔어요.
172 page / 세상에는 자신의 두뇌를 가지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생에서 하찮은 것을 위해 자신의 가장 귀중한 황금, 말하자면 자신의 정수와 본질을 낭비합니다. 그것은 나날의 고통입니다. 그리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릴 때......
'별'과 '마지막 수업' 두 작품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알퐁스 도데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어요. 소설집 한 권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과 풍부한 감정을 만날 수 있어 책 한 권을 읽었다기보다 작가와 함께 프로방스 지역으로 먼 여행을 다녀온 느낌입니다.
프로방스 지방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방 구석으로 돌아오니, 고흐가 그림으로 묘사한 프로방스 추수 풍경의 황금빛 들판이 보이는 듯도 하고, 책에서도 왠지 라벤더 향기가 풍기는 것 같아요. < 풍차 방앗간의 편지> 아직 만나보지 못하셨다면 일독을 권해봅니다.

꼼꼼평가단 11기로 참여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