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박완서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난지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하네요. 박완서 선생님은 '나목'이라는 소설로 등단하셨고, 많은 소설 작품을 남기셨지만 보석같은 산문 글도 간간히 쓰셨다고 합니다. 이 책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은 박완서 선생님의 산문을 선별하여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엮은 에세이집입니다.


흔히 산문은 잡문이라고 해서 그 격을 낮추어보는 사람들도 많은 줄 압니다. 하지만 평소 에세이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산문을 폄하하고 한가할 때 쓰는 글로만 보는 시선에 공감을 하기 어렵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대로 소소한 글 한 편에도 모래알만 한 진실을 담고자 했다면, 그 글의 가치는 누구도 낮게 평가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에세이는 작가의 생각을 진솔하고 자유롭게 드러낸 글들이 많아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도 들어 요즘같이 소통하지 못하는 시대에 읽기 적당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일상과 가까이 있으며, 생활 속의 작은 소재로 생각에 생각을 이어 나가는 산문은 우리의 평범하고 얼룩진 일상을 가만히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 좌석에 나란히 앉게 된 남자에 대한 오해를 쓴 산문은 아, 이런 소소한 일에도 작가의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이 닿으면 아름다운 글로 탄생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지인들과 노래방에 갔다가 '너희는 노래할 자유가 있는데 나한테는 왜 노래 안 할 자유가 없냐'며 진지하게 외치자 일순 분위기가 서먹해지고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만... 작가로서는 들춰내고 싶지 않을 일상 속의 모습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스스로 창피하고 혐오스러웠다 고백하는 작가의 인간적인 모습에는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책 꾸러미의 배달이 잘못되어 임무가 안 끝났는데 어떻게 퇴근을 하냐며, 오늘 안에 배달을 해 달라고 직업의식까지 들먹이며 고함을 쳤는데... 밤 열한 시가 다 되어 15, 16세쯤 돼 보이는 키 작은 소년이 지친 모습으로 책 꾸러미를 배달하고 너무하다 말하며 돌아간 일화에서는... 이치에 어긋남 없이 바른 소리로 자신만만 큰소리쳤던 자신의 모습에 진저리가 쳐져 잠을 못이루셨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남의 사소한 실수를 넘기지 못하고 바른 이치만 따지고 들었던 스스로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더군요. 이처럼 박완서 선생님의 글에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진솔하고 담백한 모습이 있어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잘못과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사소한 잘못이라도 솔직히 인정하고 고치려고 마음먹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동안 그런 사소한 실수나 부끄러움들은 덮어놓고 없었던 일처럼 굴었는데, 그런 사소한 고백마저 잊지 않는 박완서 선생님의 자기성찰을 보니 제가 너무 부끄러웠어요.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26 page



위 문장은 제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부분입니다. 요즘 정치의 현실에서도 보듯이 이 세상 악을 한 번에 몰아내고 절대 선을 세울 것 같은 큰 목소리가 있어서 세상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결국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 선에 대한 무의식적인 추구가 세상을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가 담은 진실도 이처럼 소소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무게있는 진실입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고 나서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을 좀 더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이 지난 후에도 따뜻한 문학의 숨결로 우리 곁에 함께 하시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 이번 겨울에 꼭 한 번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