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를 읽고, 두 번째 만나 본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입니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라는 제목으로, 2006년 소담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는데 이번에 리커버판이 새로 나왔어요.


시간이 농익은 작품을 새로운 옷을 입은 책으로 만나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다소 오래된 느낌의 책에 선뜻 손을 뻗길 망설이는 젊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고, 예전에 책을 읽어 본 독자들에게도 재회와 소장의 기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는 단편 소설집인데요, 각 편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한 이야기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한 여고생이 이번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에서 포커스에 있었던 소녀가 다시 엑스트라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초록 고양이' 편에서 에미의 우산을 뻔뻔하게 훔친 단독 행동자 다카노 씨가 '머리빗과 사인펜' 편에서는 한 남자의 몸과 마음을 훔친 성숙해 보이는 여고생으로 나오는 식입니다. 이 아이는 아까 누구였더라.. 기억을 상기시키며 앞 장을 넘겨 보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구성이에요.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는 단편소설의 특성상 책 속의 아무 페이지를 펼쳐 갑자기 시작하는 것처럼 충분한 인트러덕션 없이 불쑥 이야기가 시작되고, 또 잘 보고 있던 드라마가 어디선가 툭 끊어져 버린 것처럼 끝나버리는 조각조각의 단편들이 무척 낯설었어요.


하지만 그러다 '아! 이런 게 우리가 지나 온 10대의 시간과 맞닿아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불쑥 찾아와 흘러갔고, 잊힐 듯 조각조각으로 남은 우리의 슬프고 혼란스러웠던 한때... 그 시간들을 정말 조각보 이불처럼 성기게 짜 내려간 이야기구나 싶었어요.



 처음에는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가 10대들의 성장기를 그린 소설이라는 말만 듣고 제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10대의 시간은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것이며, 누군가에겐 분명 지나 온 세월입니다. 부, 집안, 외모, 성격, 학습능력 등 다른 모든 것은 공평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만큼은 소름 끼칠 만큼 무섭게 공평합니다.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냥 다 추억이었지~' 하면서 웃을 수 만은 없는 고통과 혼란의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제 40대에 접어들면서 10대의 기억 따윈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혼란스러웠던 나를 다시 만나본 것 같아 마음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10대의 상처와 혼란들을 조각조각 부수어 상자 속에 가둔 채, 겉으로만 나이 먹어간 나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앞으로만 향하는 발걸음을 되돌려 예전의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춰보고 싶을 때 읽어보면 좋을 책이네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진솔한 생각을 담은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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