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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다 ㅣ 에프 그래픽 컬렉션
루이스 트론헤임 지음, 위베르 슈비야르 그림, 이지수 옮김 / F(에프)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요즘 제가 즐겨읽는 책은 취미 실용서나 에세이, 그리고 그래픽 노블입니다. 맞벌이에 늘 생활이 바쁜 편이라 느긋하게 장편 소설을 읽을 여유는 없지만, 책을 손에서 놓고 싶진 않아서 가볍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책들을 선호하게 된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소설과 만화의 중간 형식을 취하는 그래픽 노블은 만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좀 더 진지한 주제를 가지고 있고, 스토리도 완성도가 높아 읽는 즐거움이 크더라고요. 최근에 에프의 그래픽 컬렉션, <밤으로의 자전거 여행>을 아이와 함께 읽고 이번에는 <머물다>라는 책을 골라 보았어요.
에프의 그래픽 컬렉션은 그림과 텍스트의 조화를 추구하는 그래픽 노블 시리즈인데, 정말 다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작품들이 많네요. <밤으로의 자전거 여행>과 <머물다>를 시작으로 하나 둘 소장해서 모두 읽어볼 생각이에요.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만한 작품 같은데, <머물다>같은 경우에는 아이가 좀 더 자라면 함께 읽어보려고요. 선정성이나 폭력성은 전혀 없지만, 갑작스러운 사건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 전개와 철학적 주제의식을 감안하면 어린 친구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청소년과 성인들에게는 최고의 그래픽 노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짧은 만화에 줄거리를 다 알려드리면 시시할 수 있어서 최대한 스포는 삼가겠습니다. 바닷가로 휴가를 떠난 한 커플에게 닥친 황망한 사고로 이야기는 시작되고요, 이곳에서 만난 낯선 이방인과 며칠을 함께 하는 이야기입니다.
<머물다>는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휴양지의 즐거운 사람들을 잔뜩 그려내고, 죽음을 매우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황당한 사망 사건을 스크랩하는 묘한 취미가 있고, 어떤 이는 죽음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휴가 일정을 보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사람들마다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도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죽음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킬 뿐이지요.
게다가 낯선 이들이 만나 서로를 적당한 거리에서 위로하는 방식은 참 새롭고 따스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간의 관계를 사랑 아니면 원수로 그려내는 작품들이 넘쳐나는데, 이 책은 진부하지 않은 따스한 관계를 그려내 참 좋았어요.
<머물다>라는 제목이 단순히 휴가지에 며칠을 머무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은 항상 우리 옆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하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술술 읽히고 시각적인 즐거움도 주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머물다>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