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의 철학 지도 - 나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밑그림
김선희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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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제의 크기와 복잡성을 통과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아마도 지나간 이들의 생각을 읽고 공부하는 것일 겁니다. 몸에 근육을 키우듯 마음과 생각에 면역력과 저항의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말이지요."(5쪽)

 

유토피아, 청춘, 비극, 웃음, 귀환, 우정, 자기 고백, 공부... 여덟 개의 단어에서 출발하는 철학적 질문들. 저자는 '철학을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자원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접근 방법도 달라야 할 것'(7쪽)이라고 이야기를 던진다. 삶의 자원으로서의 철학이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의 삶,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질문을 발견하고 그것에 접근해가는 철학적 경로를 탐색해본다는 것. 특히 오늘날처럼 지향점 없이, 성찰 없이 성공을 위해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삶의 태도가 무엇보다도 절실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삶의 문제들과 여러 철학자들의 진지한 사유가 어우러져 펼쳐진다. 차분하고 담담하면서 독자를 존중하는 어조도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특히 동서양 철학자들의 생각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구성해 놓은 점이 좋았다. 예를 들어 '유토피아'에 대한 사유를 펼치는 1장에서는 토머스 모어, 플라톤, 프랜시스 베이컨, 토마소 캄파넬라 뿐 아니라 노자, 장자, 도연명, 안평대군, 강유위의 생각도 만날 수 있다. 또 2장 '왜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하는가?'에서는 루소와 주희로부터 '청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배울 수 있고, 3장에서는 석가모니와 스토아학파가 '고통'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복귀와 회복에 대한 동양과 서양 철학적 담론이 각각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제시했던 5장 '왜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가?'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보통 철학서는 서양 철학자들의 담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는데(물론 그쪽 머릿수가 훨씬 많아서겠지만^^;)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적 사유들을 제시해서 만들어진 이 '철학 지도'는 풍성하고 믿음직스러운 길잡이가 되어 준다. 여러 사유들이 포개지고 겹쳐지는 그 끈들을 따라가면서 마냥 행복하다. 마음과 생각에 단단한 근육을 키우려면 음, 갈 길이 아직 아득히 멀긴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이 '고립되어 명멸하는 한 개의 점이 아니라, 생각과 경험을 잇는 어떤 그물의 한 부분이기를'(9쪽) 바란다는 말을 했다. 문득 멋진 그림이 떠오른다.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철학적 전통과 이론이 아니라, 이런 '생각과 경험을 잇는 그물'들을 통해 현재 삶의 자리에서 호기심과 의문을 갖고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런 촘촘한 그물들이 서로 엮이며 일구어가는 세상은 좀 더 나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혹시 나는 갈 곳이 없는 건 아닐까?"

그러자 벽이 말했다.

 "지도만 보면 뭐 해? 남이 만들어놓은 지도에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 같니?"

"그럼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 나와 있는데?"

"넌 너만의 지도를 만들어야지."      -루이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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