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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보이던 빈 공간은 어디로 가고, 바람 같은 시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적이다. 눈사람 여관에서 느꼈던 시인의 무풍지대가 더욱 가라앉은 것 같다. 고요히 제자리에서 낙엽을 뺑이치는 가을 바람 같다. 격정적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고. 이제 이 시인도 흔들리던 지반을 떠나 단단한 땅에 서게 된 건지, 흔들리는 땅에서 같이 흔들리며 흔들리지 않는 법을 알게 된 건지. 아무튼 이제 인생을 살아갈만 하다 생각하는 나이 있는 시인의 느낌이 난다. 거의 대부분이 국내 여행인데, 국내고 국외고를 떠나서 사실 여행 산문집이라는 말이 조금 부끄러울 정도로 여행의 냄새가 나지 않는 책. 똥을 끊지 못하는 금붕어처럼 생각을 꼬리처럼 달고 쏘다니던 시인의 여행도 이제 마무리인걸까. 끌림처럼 서툴지도,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처럼 깎아지른 절벽도 아닌 글들. 개인의 단상이라 한다면 그렇구나 하고 넘기겠건만 이전 책들에서 워낙 감동을 받았기 때문일까. 이전 책들에서 일정하게 보이던 주제마저 없이 그저 갈피를 잃은 느낌이 든다. 주로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던 시인이 눈사람 여관에서 그 관계성을 더 큰 세계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서 기대했는데, 그 이후는 시집에서 봐야 하려나. 물론 좋은 글이 없었냐 하면 아주 그렇지는 않은데, 이전 책들처럼 몇 번씩 들춰볼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