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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뿐사뿐 교토 살랑살랑 고베 소곤소곤 나라 - 세 도시를 즐기는 오감만족 13가지 코스
비사감 지음, 소년장사 사진 / 마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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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非전문가의 둘이 하는 여행 일기

그러니까 어제, 무려 쉬는 월요일에 고베의 미술관에 가는데 나는 또 습관처럼 가방에 주섬주섬 책과 노트와 사전을 쓸어담았다,가 다시 다 꺼내고 이 책 한 권만 챙겨넣었다. 갈 곳이 분명히 정해져 있었기에 어디를 갈지 참고할 일도 없었지만 오고가는 전철에서 읽고 싶었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며언ㅡ
수줍은 표정을 하고 말수가 적고 화장기 없는 겉모습을 하고 있으나, 들여다보면 '얼굴빨개지는아이'의 '재채기하는친구'와 같으며, 또한 그 속은 얼마나 진국인지 모른다
고 주책을 떨고 싶은 책이다. (그래요, 나 지금 책장사 나왔어요.)

'내가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의 책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읽고 있으면 벚꽃 날리는 봄기운이 폐를 간지럽히는 것 같고, 교토의 가을 낙엽을 밟고 있는 것만 같다. 비사감과 소년장사의 비슷하고도 다른 성격이 서로 교차되면서 어우러지는 모습은 다섯 마짜리 체크무늬 같다. 비사감의 글은 과연 여행일기다우면서 깊은 맛이 나는 반면, 소년장사의 글은 발랄하면서도 '왠지' 중요한 메모를 적어놓은 포스트잇 같다. 

여행'비'전문가의 여행서이므로 군데군데 길을 헤맨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읽는 나에게는 '피가되고살이되는' 실수들이며 코스들도 부담스럽지 않아 흉내내볼 만하다. 무슨무슨 유명한 곳이나 유적지만 다 찾아다닌 것도 아니고, 소비를 부추기는 글도 아니다. 다만 마호 그녀들의 더듬이로 찾아낸 곳들이기 때문에 이분들과 취향이 맞는다면 더 괜찮을 터(라고는 하지만 벚꽃의 흩날리는 모습을 바라볼 만큼의 여유를 지닌 당신이라면 그녀들의 센스를 믿어도 더욱 좋을 터). 그녀들의 성격상 꼼꼼하고 친절한 안내는 기본. 끝으로 누군가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혼자 여행할 때와는 달리 그 사람을 더 많이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낯선 여행지에서 겪는 사고 못지않게 신경 쓰이는 것이, 지금까지 잘 알고 지내왔다고 믿었던 상대방의 '낯선' 모습인데, 두 사람의 글 속에서 둘이 하는 여행의 미묘한 구석에 특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이 둘은 일상에서도 마호를 유지하는 돛대와 돛과 같은 관계이다.) 

염장이 될 만한 글귀를 몇 개 뽑아본다.

"예정에 없이 만난 가모가와 강변을 걷다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릇 가게들이 모여 있는 거리를 걷는 행운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중략) 여행 중에 실수를 행운으로 바꾸는 건 혼자 힘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금 이곳에서 느낀 감상을 나만의 언어로 적어 둔다. 예를 들어 '최홍만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내려다본 신발에 묻은 얼룩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풍경' 같은."
"혼자 하는 여행은 예측불허의 럭비공처럼 통통 튀기며 다니는 기분이지만, 둘이 하는 여행은 오히려 나를 지키며 내 다리로 설 수 있게 해준다. 말이 통하는 친구와 걸으니 온전한 나로 존재하며 '내'가 골목을 걷고 '내'가 음식을 먹고 '내'가 도시를 본다."
"넌 아침 출근길, 난 아침 산책길"



굳어진 마음에 이스트를 뿌려주고 싶다면, 여행은 가고 싶은데 여행가방을 싸는 게 귀찮다면
제목이 너무 길다 불평 말고 일단 일독을 권함.
간사이로 여행을 갈까말까 망설이고 있거나 이미 간사이로 여행할 결심이 섰는데
또한 같이 여행할 이가 있다면 더더더더욱 일독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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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문턱 - 총력전하 한국-타이완의 문화 구조 아이아 총서 102
한국-타이완 비교문화연구회 지음 / 그린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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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타이완에서 만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타이완은 판타지(幻・まぼろし)로 존재한다"고.

타이완 섬은 뚜렷한 모양새로 존재하나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우리'의 범주는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타이완에 살게 된 경위도 다르고, 민족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저마다 가진 역사가 다르다.

그렇다면 분단 이후 한국은 '저항' 혹은 '반일' 정신 아래 과연 통합되었는가? 그랬다면 어째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타이완은 과연 '친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왜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되었을까? 당연하게 생각되던 그것의 '부자연스러움'을 언젠가부터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심에 조금은 속 시원한 느낌을 가져다 줄 이 책은, 협력과 저항의 틀로는 설명될 수 없는, 식민지를 살았던 사람들의 욕망이나 세계관 같은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전쟁 스펙터클'의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 'OO인-되기'를 무의식 중에 연기했던 정체성 문제, 당시의 사회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실제로 가졌던 불만을 엿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조선(한국)과 타이완의 일본 식민지 경험이라는 '같은' 사실과 그 안에서 벌어진 '다른' 경험들을 당시의 '문화'라는 코드를 통해 읽어낸다. 타이완-일본, 조선(한국)-일본이라는 식민 종주국과 식민지의 선긋기가 아닌, 식민지(한국, 조선)-식민지(타이완)를 나란히 놓고 바라본다는 점이 이 책이 귀하다고 생각되는 점이다(마치 <옥희의 영화>의 영화처럼;;). 
  
이 책의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당하는' 입장이 아닌 '하는'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차별화와 동화를 상황에 따라 변주했던 지배 논리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게 되는데, 1930년대, 전쟁 준비기에 돌입하며 일본이 조선에서 황국신민화 정책과 지원병 제도를 시작했을 때 조선인의 참전이 정치에 대한 참여 요구로 이어질 것을 경계하거나 창씨개명 실시에 대한 지배층 내부의 비판에 관한 대목들이 그 예다.

그리고 "주된 담론 생산자들에 의해 평평하게 획일화되고 균질화되어버린 하위 주체들의 흔적을 복원"하고, 동시에 위와 같은 정책/공적 이념을 드러내면서 그 둘 사이의 길항 구도를 드러내는 것 또한 이 책의 시도일 것이다.

한국 측 저자인 김예림은 한국과 타이완을 연결하는 구도 설정을 통해 "관계의 다각화와 관계 맺음의 다면화를 통해 공통의 기억과 체험을 나누어 가진 서로 다른 집단들의 소통이나 상호 발견을 자극"하고, "과거를 안고 있는 현재와 미래, 과거를 향하는 현재와 미래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타이완 측 저자인 류수친(柳書琴)은, 조선은 "전전(戰前)에는 '무국가 민족'이 되었다가 전후에는 '분단체제'를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타이완은 "민족 전체가 식민 상황에 편입된 것도 아니었고 또 국가 체제로 포스트 식민 상황에 처하게 된 적도 없"다며 두 식민 경험 국가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한다.  

특히, 소설을 통해 세계화를 앞서 경험한 두 식민도시(하얼빈과 타이베이)를 비교한 류수친의 글이 인상적인데, 식민화와 세계화를 동시에 겪으며 지역민의 삶이 어떻게 휩쓸려 갔는지 읽을 수 있다.  "사실 북만주 작가들의 비판적 관점은 세계 체계에서의 제국/식민지의 차별 현상과 주권의 파괴 및 국가 기능의 퇴화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식민지의 민족적 모순(식민자 대 피식민자) 혹은 현지 사회 내부의 모순(자산계급 대 무산계급)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116쪽).

안타까운 것은 1930년대의 하얼빈에 관해서 쓴, 류수친의 이 문장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지금의 현실이다.

 

 

 

+) 사변적 이야기  

이십대 초반,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 혹은 상식들이 갑갑하게 느껴져 억지를 부려 20명의 친구들과 함께 비행기를 탔다. 그때의 해방감이 그립고 그리워 다음해에 다시 날아갔다. 전년도와 같은 중국의 동북지역이었으나 이번에는 혼자 살았다. '팀'이라는 울타리 없이 접촉한 최초의 '외부'였는데, 막상 겪어보니 늘상 그 외부(혹은 경계)를 느끼며 사는 게 생각보다 쓸쓸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이방인이다'라는 느낌을 끊임없이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사소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그저 피곤했던 것이다. 그러나 반 년 정도를 지났을 때부터 그들과 나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이나 공감대를 느끼기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것이 크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말하는 '이미지'나 타자화를 의심하고 의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 무척 따뜻했던 중국의 친구들이 간혹 타이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타이완에 대해 당시 그 친구들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치 '서울 깍쟁이'를 보는 시선이랄까. 타이완이 일본-미국과 친하다는 것도 미운털이 박힌 이유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타이완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없었다. 아는 게 없었다.

2008년 일본어를 배우고 있을 때 나와 함께 있어준 이들이 타이완 학생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일본 문화를 즐기는 80년대생들이었다(1949년에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과 구별되는 본성인本省人이고, 굳이 구분하자면 민진당民進党을 지지하는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 아이들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역사, 그딴 것'은 중국에 대한 혐오감, 한국에 대한 불쾌감,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나 선망에 대한 근거로 사용될 때가 많다. 그래도 나와 친해진 덕분에 한국에 대한 불쾌감은 '이제 없다'고 했는데, 초반에는 비꼬는 뉘앙스의 질문도 많이 받았다. 

도대체 이 모든 것들이 왜 머릿속에 자리잡고 일상 속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는 걸까? 왜 나는 어디서든지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걸까? 나는 그 국가에 대한 이미지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에 대해 질리고 말았다. 그러나 '타자'와 부대끼고 살면서 공감대를 느끼고 크게 위로 받았던 2003년의 경험도 잊지 못한다.  

그런 것들이 작용했는지 올해도 기어코 타이완에 갔고, 가기 전에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이러한 연구들을 지지한다. 평평하게 쓰여진 역사를 입체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매끈하게 쓰여진 역사, 그 밑에 숨겨진 다양한 층위의 '잡음들'에 귀 기울일 때, 조금 더 당시의 현장에 가까워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믿고 싶은' 진실이 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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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건축 Essays On Design 6
쿠마 켄고 지음, 임태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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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 켄고의 <약한 건축>은 그의 이름과 잘 어울리는 책이다. 쿠마(隈)는 음영, 그늘진 곳이라는 뜻이다. 다크서클도 같은 한자를 쓴다. 그의 책은 그의 이름처럼 20세기의 흐름 속에서 그늘에 가려질 수밖에 없었던 20세기의 건축물을 들추어낸다.

건축과 상관없이 살아온 A양, 웬일이신가
1등보다는 2등을 좋아하고 그늘에 가려진 이야기에 솔깃하지만, 극단적 문과적성에 비건축학도인 A양. 대형서점을 지나가다가 흰 바탕에 소박한 그림, 약한건축이라는 제목을 보고 멈춰선다. 딴에 일본어 좀 안다고 약한 건축의 원제가 '지는 건축'인 것을 알아채자 책에 대한 관심도 급증. '그래서 말인데, 무엇이 지는 건축이라는 걸까?'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책을 펼친다. '안도, 코르뷔지에, 미스 같은 사람들 말고 또 누가 있다고? 저, 그런데 미스가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만ㅡ.' 책은 소박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는 독자의 무식한 부분을 날렵하게 찔렀다. '아, 몰라. 그냥 사.' 독자는 그날의 지출규모에 걱정하면서도 책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간다.

건축물을 만드는 외부요인들, 혹은 건축을 둘러싼 20세기라는 배경에 대하여
스스로 건축가이면서 저자인 쿠마 켄고는 튀지 않는 건축물, 주어진 상황과 주변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의 시선은 세상의 조명에서 살짝 비껴난 이들을 향하고 있다. 그가 이름 붙인 '약한 건축(혹은 지는 건축)'은 뛰어난 건축물을 남겼음에도 역사의 한구석에 모셔진 것들이다. 그는 이러한 건축물들의 사례를 하나씩 들어가며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 극도로 아름다운 것을 구축해가는 방법론은 되풀이해서 적과 우리 편을 만든다. '약한 건축'은 무엇인가를 배척하기보다는 다양한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론이다(13쪽)"라고 애착을 보인다. 그가 거론하는 '약한 건축'들에는 전쟁을 비껴나 있었던 데 스타일(De Stijl), 미디어에 무감했던 루돌프 쉰들러,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방법으로 근대성을 추구했으나 국제주의 양식에 패배당한 아르데코 등이 있다.
이들이 덜 유명해진 것, 그 반면에 브랜드가 된 건축가들의 차이는 건축 그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 요지이다. 그 배경에는 20세기라는 시대의 흐름이 있다. 세계대전, 콘크리트, 미디어, 개발 붐과 건축가의 브랜드화, 박람회, 개인의 욕망 충족, 잡지와 사진의 발달, 사진빨 잘 받는 건축물 유행, 뽀샵 원조격 속임수의 등장, 내집마련정책 등과 얽혀 건축은 세상속에 파고들고 또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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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시작된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이토우 히로미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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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와 이토 히로미(伊藤比呂美) 대담집, <만화가 시작된다>
원서: 스위치퍼블리싱(スイッチパブリッㅁシング), 2008
번역서: 서현아 역, 화신문화사, 2009


엄마가 철저히 금기시한 것 중 하나는 만화책이었다. 만화를 보다가 걸려서 혼나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알아서 만화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덕분에 만화를 잘 모르는 나. 그래서 <배가본드>는 모르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슬램덩크>는 안다. 중학생 시절까지 또래와 어울리면서 보는 만화가 몇몇 있었으니까. 고등학교 친구 심과 함께 홍대 TOONK에서 이 책을 보는 순간, 우리는 하악- 했고 어느새 집어들고 말았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라는 이름과 제목에 홀려서. 제목 봐라, 만화가 시작된다니. 빨간 표지에 이런 제목. 만화가 시작되는 순간의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가.
네비게이터 역할을 맡은 50대의 애엄마 이토 히로미에게서는 오지혜와 같은 수더분함이 느껴졌다. 책은 <슬램덩크>와 <배가본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면서 이노우에의 대학시절, 데뷰할 시기의 에피소드, 캐릭터 탄생비화, 만화와 언어의 관계성까지 다루었다.

이 대담집을 보고 있으니 지난달 있었던 장률의 <중경> GV가 생각났다. 관객이 작품에 마구 흥분해서 온갖 의미부여를 하다가, "......그래서 감독님은 어떤 의미로 그 장면을 만드셨는지요?"라고 물으면, 감독은 "글쎄요, 원래 생각하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저는 감독님 작품의 무슨무슨 장면에서 무엇을 느꼈는데요......"라고 하면 감독은 "그렇군요" 하고 만다. 그게 다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어서 피식- 
역시 온갖 신화에는 조물주가 있지만 다들 이런 인간들이 만들어질 줄은 몰랐던 거야.

이노우에의 반응이 순간 호옷- 하고 올라갈 때가 있다. 이토는 55년생의 시인, 이노우에는 67년생이다. 한참 누나뻘 되는 이토가 가끔 자신의 창작경험(이를테면 13년이나 시를 쓰지 않고 소설을 쓰며 자기 안의 틀을 깬 이야기)을 하면 이노우에의 눈이 순간 커지는 것이 느껴진다. 역시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자꾸 얻어내려는 인터뷰어에게서는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대화 속에서 인터뷰이 자신도 자극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대화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이노우에의 반응을 보면서 생각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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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모으는 작은 케이크 - 누구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는 32가지 레시피
구로카와 유코 지음, 민성원 옮김 / 마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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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딱 펼치면 편집자의 성격이 눈에 보인다. 아, 이 책 참 착하고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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