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시작된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이토우 히로미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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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와 이토 히로미(伊藤比呂美) 대담집, <만화가 시작된다>
원서: 스위치퍼블리싱(スイッチパブリッㅁシング), 2008
번역서: 서현아 역, 화신문화사, 2009


엄마가 철저히 금기시한 것 중 하나는 만화책이었다. 만화를 보다가 걸려서 혼나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알아서 만화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덕분에 만화를 잘 모르는 나. 그래서 <배가본드>는 모르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슬램덩크>는 안다. 중학생 시절까지 또래와 어울리면서 보는 만화가 몇몇 있었으니까. 고등학교 친구 심과 함께 홍대 TOONK에서 이 책을 보는 순간, 우리는 하악- 했고 어느새 집어들고 말았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라는 이름과 제목에 홀려서. 제목 봐라, 만화가 시작된다니. 빨간 표지에 이런 제목. 만화가 시작되는 순간의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가.
네비게이터 역할을 맡은 50대의 애엄마 이토 히로미에게서는 오지혜와 같은 수더분함이 느껴졌다. 책은 <슬램덩크>와 <배가본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면서 이노우에의 대학시절, 데뷰할 시기의 에피소드, 캐릭터 탄생비화, 만화와 언어의 관계성까지 다루었다.

이 대담집을 보고 있으니 지난달 있었던 장률의 <중경> GV가 생각났다. 관객이 작품에 마구 흥분해서 온갖 의미부여를 하다가, "......그래서 감독님은 어떤 의미로 그 장면을 만드셨는지요?"라고 물으면, 감독은 "글쎄요, 원래 생각하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저는 감독님 작품의 무슨무슨 장면에서 무엇을 느꼈는데요......"라고 하면 감독은 "그렇군요" 하고 만다. 그게 다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어서 피식- 
역시 온갖 신화에는 조물주가 있지만 다들 이런 인간들이 만들어질 줄은 몰랐던 거야.

이노우에의 반응이 순간 호옷- 하고 올라갈 때가 있다. 이토는 55년생의 시인, 이노우에는 67년생이다. 한참 누나뻘 되는 이토가 가끔 자신의 창작경험(이를테면 13년이나 시를 쓰지 않고 소설을 쓰며 자기 안의 틀을 깬 이야기)을 하면 이노우에의 눈이 순간 커지는 것이 느껴진다. 역시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자꾸 얻어내려는 인터뷰어에게서는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대화 속에서 인터뷰이 자신도 자극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대화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이노우에의 반응을 보면서 생각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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