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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시선집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2015년 9월
평점 :

시를 읽고 생각해본게 언제 일이지? 생각해보니 고등학교때 교과서에서 본 시가 마지막인듯 하다. 시를 읽으며 이 단어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암기했고 시를 외웠고 어떤 형식으로 쓰였는지 공부는 했지만 시를 진짜 시로서 즐긴적은 없던것 같다. 어렸을때 사생대회에 나가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중에 하나는 글쓰는것 뿐이었기에 가장 간단한 시를 적고 놀고는 했다. 그때는 5분10분 멍하게 있다가 시를 쓰고는 신나게 놀며 시간을 보냈지만 가끔 시 덕분에 상도 받고는 했었다. 그냥 시험을 위해 읽고 외웠고 놀기 위해 시를 썼지만 시에 대한 깊은 느낌이나 생각은 아직까지 없었다. 폭풍같이 바쁘게 보냈던 시기에는 시는 커녕 글을 읽지도 않았다. 하지만 왠지 내 삶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글과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시를 읽고 싶어졌다.
시는 그림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느 소설보다 다른 어떤 글보다 시를 읽으면 한편의 그림이 저절로 떠오르듯 풍경이 생각나고 또 사람이 생각나는것 같다. 그만큼 그 작은 쉼 하나에도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그 풍경이 녹아있게 만드는것이 시인것 같다. 시에 대해 많이 알지는, 아니다 거의 알지는 못하지만 잘 모른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볼줄 모른다고 그림을 느낄줄 모르는것은 아닌것처럼 시는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난 시를 몰라도 류시화 시인은 안다. 그는 너무나 유명하기도 하고 아무리 모른다고 해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문장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모를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시를 이렇게 만나본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질문에 대답하듯 던지는 질문을 받아들이며 나는 언제 시인임을 그만두었나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1981년부터 1991년까지의 그의 시를 먼저 만나게 되었다. 사랑이 가득 들어있었다. 시인은 그저 시인일뿐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 혼자만 표현할 수 있는 듯한 짙은 감성에 푹 빠져들었다. 이렇구나 사랑은 이런거구나 싶은 마음이 느껴지게 그의 시는 내 마음을 온통 뒤 흔들어놓았다. 왜 이제야 만났을까 싶은 생각이 저절로 생기는 아름다운 구절이었고 감동이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문장으로 만났던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가 만나는 나무가 새가 그리고 거미가 내가 알고 만나던 그들이 맞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을 훔쳐서 볼수 있다는것이 그나마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라고 생각했다.
1992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시들은 모두 그리움의 대표들 같았다. 왠지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게 옳던 그렇지 않던 중요하지는 않다. 나는 그저 그렇게 느낄뿐이니까 꽃이 흔들리는 모습도 슬펐고 시는 그의 눈물처럼 짜게 느껴졌으며 쓸쓸하고 씁쓸했다. 1997년부터 2012년까지의 시들은 소소하고 읽는 시간 내내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는 힘든 시간을 겪고 아름다워진 해변의 동그란 돌같은 느낌이었다. 파도도 오롯이 받아들일줄 아는 그런 시를 선물해주었다.
시를 오랫만에 만나고 읽고 감동을 받으며 내 안에서 잊고 있었던 감수성이 조금은 살아난듯했다. 그의 시는 따뜻했고 외롭지만 다정했다. 시를 읽고 행복한 순간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기분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