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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평점 :

하현님의 책을 다 좋아한다. 특히나 좋아하는 이유를 꼽아보자면 너무 나랑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이번에 또 신작이 나온다기에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제목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누군가가 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맑은날 오래전부터 해뒀던 약속이 상대의 사정에 의해 취소되었을때, 그때 나는 자유를 느낀다. 아쉬운척 안타까운척 하지만 사실은 혼자 지내고 싶다. 물론 맑은날이 아니어도 약속 취소는 꽤나 반갑다.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다음이라는 기약도 할수 있으니 완벽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혼자 지내며 홀로 할수 있는 일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혼자 스테이크도 먹으러 가고 혼자 가고싶었던 카페도 간다. 이러다가 곧 최고치의 수준을 달성해서 혼자 고기부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난 홀로 못할것이 없는 천하무적이 된다. 누군가와 잘 지내고 싶지만 혼자 지내고 싶은 내 마음을 들킨듯 하현 작가님의 책을 읽다보면 폭풍공감을 하게 된다. 이번 책도 공감하며 힐링하는 행복한 시간이 될거라 기대했다.
기대는 역시 적중했다. 책을 읽으며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듯한 느낌으로 한장 한장 이야기가 넘어감에 아쉬워하며 책장을 넘겼다. 나는 혼자있는것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사람을 좋아한다. 뭔가 앞뒤가 안맞는 말일것 같이 느껴지겠지만 작가님의 책에서도 말하듯 어떤 세계를 집중하는 사람을 만나 내가 집중하는 세계와 함께 같이 넓어지는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더 많이 볼수 있는 시간들 역시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요즘의 내 세계는 음식뿐이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다른것들도 집중해서 바라봐야겠다.
가끔 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할 때가 있다. 물론 일에 관련해서 어쩔수 없이 당연하게 내가 말을 시작해야하는 사람이므로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해 나간다. 아마 책에서 나온 미용실의 스몰토크처럼 나 역시도 물어봐야하고 이야기를 해야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과 만날때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깊게 이야기한다면 모르는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잘하고 많이 한다. 하지만 깊이는 없다. 그렇게 기억에도 잘 남지 않을 이야기들을 늘어뜨려놓으며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억지로 웃어서 턱이 아프기 시작한다. 주변 많은 사람들은 내가 외향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진짜 가까운 친구들은 너무 내향적인 사람인데 그렇게 사는걸 보면 신기하다고 할정도니까. 그래서 책을 읽을때마다 너무 나 같아서 좋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조용한 미용실은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며 어쩌면 이게 내 꿈일까 싶은 부유하고 명랑한 독거노인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참 큰 위로가 됐다. 아직까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매일 고민하지만 혼자 쓸쓸히 늙어가는것이 아닌 내 삶을 살아내는 시간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하현님의 책을 읽으면 마음도 몸도 가벼워진다. 조금 더 나답게 살수 있을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책을 읽으며 너무 기분 좋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분명 또 하현님의 다른 책들처럼 오랜 시간 내 책장에 함께 하며 몇번을 같이 공감하게 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