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에게 많은 도움과 어려움을 함께 나눈 친근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문학적 가치와 카프카의 삶과 가치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을 엄선하여 100통을 연대순으로 배열하였다. 편지의 내용은 문학이나 철학에 관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일상적인 생활을 다룬 것들이다.

신경쇠약과 폐결핵에 시달리면서 요양소나 여러 여행지에서 보낸 것이 많은데, 기괴하고 난해한 작품세계와 달리 부드러운 모습과 때로는 친구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자상한 면이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편지 중에 카프카가 폐결핵에 걸린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전하는 모습은 부모님의 근심 걱정을 덜어드리려는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친구들에게 독서, 문학 작품의 글 쓰기에 대한 고민과 논의하는 내용은 카프카가 추구한 문학 세계의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옮긴이의 글

1장 1900~1910년의 편지 17통
-오스카 폴라크
-파울 키슈
-막스 브로트
-오스카 바움

2장 1911~1920년의 편지 41통
-막스 브로트
-펠릭스 벨치
-오스카 바움
3장 1921~1924년의 편지 42통
-막스 브로트
-오스카 바움
-로베르트 클롭슈토크
-펠릭스 벨치

부록
_ 등장인물 소개
_ 카프카 연보

 

 

나는 이즈음 손에 펜을 들 수조차 없었다네. 왜냐하면 누구라도 그렇게 빈틈없이 점점 드높게 탑을 쌓아간 그런 인생을, 너무 높아서 쌍안경으로도 거의 그것에 미칠 수 없을 그런 인생을 개관하다 보면, 양심이 안정을 찾을 수가 없게 되지. 그러나 양심이 폭넓은 상처를 입게 되면 그것은 좋은 일이야. 왜냐하면 그로 인해서 양심은 물린 데마다 더 민감해질 테니까. 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해.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것. 그렇지만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오스카 폴라크에게, 1904년 1월 27일 수요일. - 알라딘
글 쓰는 일이 나를 지탱하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생을 지탱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바른 말이 아니겠는가? 이게 뭐 물론 내가 글을 쓰지 않으면 내 생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네. 아마도 그렇게 되면 훨씬 더 나쁘고, 완전 참을 수 없을 것이며, 정신착란으로 끝날 것일세. 그러나 그것은 물론 실제로 그렇기도 하거니와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 해도 역시 작가이며, 글을 쓰지 않는 작가는 어쨌거나 정신착란을 부르는 괴물이라는 전제에서 말이네. 하지만 작가라는 존재 자체가 어떻단 말인가?
-막스 브로트에게, 1922년 7월 5일. - 알라딘
내 삶은 다른 이들의 삶보다 더 달콤했고, 내 죽음은 그만큼 더 처절할 것이다.
내 안의 작가는 곧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물은 지반도, 지속도 없으니까,
또 먼지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까.
다만 미친 듯한 속세의 삶속에서 약간 가능할 뿐이며, 향락욕의 구조일 뿐이니까.
이것이 작가이다.
작가는 인류의 속죄양이다. 그는 인간에게 죄를 죄 없이 거의 죄 없이 향유하도록
허락한다.
-1922년 7월 5일, 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알라딘
  

  • 최근작 : <카프카 단편집>,<실종자>,<그리운 친구여> … 총 264종 (모두보기)
  • 소개 : 1883년에 체코 프라하에서 유대계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학 시절인 1904년에 첫 작품 <어느 투쟁의 기록>을 집필할 만큼 삶의 의미를 문학 창작에 두었으나 아버지의 강한 영향으로 법학 공부를 하였다. 졸업 후 프라하의 국영 보험회사 '노동자 산재보험 공사'에서 1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글 쓰는 것을 병행했다.

    자수성가한 상인으로 기골이 크고 독선적이었던 그의 아버지 헤르만은 아들 카프카에게 "나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만큼 해냈는데, 부족한 게 없는 너는 왜 그렇게밖에 못하느냐"며 몰아붙였다. 카프카는 수모감에 사로잡혔다. 그런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세 번이나 결혼을 통한 독립을 시도했으나 결혼이 가져오는 속박에 묶이지 않기 위해 생애의 대부분을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1922년 보험회사에서 퇴직한 후 , 1924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결핵 요양소에서 사망하였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체코어에 유창했다. 그러나 그는 프라하 독일어로 저술했는데, 보헤미아의 수도인 그곳의 유태인과 비주류인 기독교인들이 쓰는 언어였다. 그는 프라하 독일어가 고지독어 (High German) 보다 진실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프라하 독일어를 잘 사용하므로써 그는 그의 작품을 완전히 그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독일어로 글을 쓰면서 아주 긴 문장을 쓸 수도 있었다. 카프카는 마침표 바로 앞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문장의 박력을 종종 주기도 했다. 그런 박력은 의미와 강조점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카프카는 생전에 단지 몇 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이는 그의 작품 중 일부이다. 그의 대부분 작품은 미완성이다.(아마 예외는 <변신>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그가 죽을 때가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임종 시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원고, 일기, 편지 등을 모두 불태워 없애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작품과 문서 등을 상당 부분 편집, 출판하여 그의 문학 세계를 대중에게 알렸다. 한편, 그의 연인 도라 디아만트는 부분적으로 그의 바람대로 집행하였다. 사실 그녀는 20편의 노트와 35편의 편지를 비밀리에 숨겨가지고 있었으나 1933년 게슈타포에 압수당했다. 이 유실된 원고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한 작가의 삶이 물론 그의 문학 창작에 경우에 따라서는 큰 역할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카프카의 길지 않은 삶의 여정은 그의 문학 세계의 섬세한 면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그의 문학 창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을 대충 간추려 본다면 가족관계, 특히 아버지상, 그의 약혼녀 펠리스 바우어, 유대인의 주체의식 등을 들 수 있겠다. 문학비평의 측면에서는 자주 거론된 "삶의 의미 추구"에 관한 문제를 여기서 짧게 손꼽을 수 있겠다. (--- 위키디피아)

    주요 작품으로는 <성>, <변신>, <실종자>, <판결>, <유형지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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