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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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력이 없는 편이라 주변에 큰 관심을 두고 다니지 않았다. 

그러다 미술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시선에 사로잡히는 작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끔씩 길을 걷다 커다란 장식물들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생각한 적도 있는데 모든 것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아이 체험 활동 덕분에 종로 거리를 자주 다녔었다. 걷는 길 사이 흥국 생명 빌딩 앞에 있는 <해머링 맨>을 보고 아이와 멋있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이 작품의 이름이 <해머링 맨>이란 것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실 그 날 아이와 나는 그 작품이 눈에 들어와 좀 더 지켜서서 보고 싶었지만 목적지가 정해져 있던 발걸음이었기에 아이아빠는 서둘러 갈 길을 재촉했었다.

만약 그 자리에 멈춰서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었더라도 작품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었을까?

아이와 미술관이나 전시회장을 찾아가 여러 작품을 보는 것을 즐겨한다.

도슨트 해설이나 오디오 해설을 들으며 제대로 작품이 담고 있는 메세지를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한데, 실제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작품들에서는 이런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눈에 띄는 멋진 작품들이 왕왕 있어도, 애써 작품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기 전에는 그 작품이 품고 있는 뜻을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다.

작가는 이런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거리예술 안내서가 되기를 바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이 책은 단순히 거리에 있는 작품들에 대한 해설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프롤로그에서 부터 거리 조형물의 유형이라던가 공공문화에 대한 설명 등 이론적인 해설도 담고 있고, 뿐만 아니라 이런 미술과 건축물을 통해 한국 션대사의 뒷모습도 자연스레 알 수 있게 구성하였다.

자주 가 보았던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상에 숨겨진 의도를 미리 알았더라면 그 앞에 멈춰 서 있을 때 스치던 생각이 달랐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코로나 유행이 좀 잠잠해지면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들이 있는 그 곳들을 한 곳씩 방문해 보고 싶다.

각각의 소개된 작품들 중에서 이미 보았던 것이나 관심있는 작품부터 골라보려 시도하였다.

사실은 첫 작품으로 소개된 김병호 조각가의 <조용한 증식>이 크게 시선을 사로잡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추상적인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그런데 작품 설명 내용을 보면서 소개된 작품이 새롭게 다가왔다. 잔디밭 접근 금지 구역으로 바뀌기 전 이 조각물이 있는 잔디밭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그들의 메세지를 알아차림 하는 것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지만 부담스런 공부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되는 지식들이 재미있었다.

궁금했던 <해머링 맨> 작품 중 우리나라의 것이 가장 크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물론 건물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라 소개되었지만 다시 한번 해머링 맨을 보러 가 봐야겠다.

해머링 맨의 작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또 다른 작품들이 소개되었는데 작품 속에 담고 있는 메세지를 알고 보니 귀뚜라미 본사 건물도 가 보고 싶었다.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용어가 나와 잠시 멈춰 찾아보게 된다. 모르고 넘어가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는 없지만 책을 읽다 보면 알고 싶다는 생각에 휩쓸리게 된다.

상식이 딸리는 나로서는 노마드나 파사드 정도의 용어도 찾아보아야했다. 그리고 키네틱아트도 궁금하여 찾아보았는데, 우리집에 홀로 열심히 돌고 있는 진자 운동을 하고 있는 저 장식물이 키네틱아트였구나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거창하게 멀리서 미술전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 아닌 이미 우리 일상에 함께 하고 있는 미술 작품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당장 작품을 보러 떠날 수 없다 하여도 책 속에 국민일보 사진부 기자들이 신문 연재를 위해 찍어준 사진들이 담겨 있어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다.

하루 빠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음 좋겠다. 따뜻한 봄이 오면 둘러 보고 싶은 곳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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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한잔할까요?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클래식 명곡
이현모 지음 / 다울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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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이며, 음악가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선 입술만 움찔거렸던 경험이 있다.

분명 평소에 클래식 음악과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하였는데,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이 있기에 그림 속의 내용을 참작하여 유추해 낼 수라도 있다하지만 음악은 단순히 들려오는 선율로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왕왕했다. 어느 자곡가의 어떤 곡이란 것을 인지 하지 않더라도 내 기분이 좋아지고 힐링되면 그 뿐이었다. 사실 암기로 음악을 접한다는 것부터 부담스러웠고, 작곡가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곡의 이름을 외우기도, 악장이 끝나는 것을 알아차림하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클래식을 주제로 하는 책들을 읽으면 그림이나 문학작품 처럼 아는 만큼 보이는 희열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 관련된 책들을 읽어 보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작곡가의 생애나 배경지식에 대한 설명이 위주였고, 곡에 대한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곡과 연관지어 배우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곡가와 곡명 따로 음악 따로 일치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냥 들어서 좋으면 그만이지 하는 상황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이 눈길을 끌긴 하였지만 이 책 또한 예전의 그런 책들과 별반 다를 바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스쳐지나갈 뻔했다.

그런데 주어진 목자에서 보여지는 열두 곡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소 알고 싶었던 곡도 있었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곡도 있었고, 낯선 곡도 있었지만 너무도 재밌을 것 같았다.

굳이 음악과 연관되지 않더라도 음악가와 곡의 배경설명을 읽는 것만으로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책날개에 있는 QR코드는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 귀에 들려올 음악까지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 QR코드는 다울림카페로 연결해 주고, 카페에서는 각 장에 소개된 클래식 음악 듣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책에서 설명된 악장의 선율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그 선율만 반복 재생하여 들을 수 있게 해 주고, 각 악장의 전체를 들을 수 있는 유튜브연주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매번 책을 읽으면서 곡과 내용이 연결되지 않은 그 부분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이 장치가 참으로 고마웠다.

책의 구성은 앞부분에서는 배경이야기를, 뒷부분에서는 곡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한 더 알아보기를 통해 작곡가나 곡에 대한 배경지식을 더 보충해 주고 있다.

첫번째 작품으로 등장한 차이콥스키의 비창에 관련된 부분을 읽으며 이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싶었던 이야기였다. 특히나 차이콥스키의 사인이 동성애 때문이란 내용을 어디선가 보았었는데, 더 알아보기에서 이런 작품 외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면 그가 말한 이 교양곡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문장이 뜨끔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차이콥스키의 비창을 알았고, 그와 관련된 배경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비창이 어떤 음악이었는지 전혀 알아차리질 못했다. 곡을 들으면서도 유명했던 부분 외에는 이 곡이 비창인지도 알지 못했다.

곡을 공부로 받아들일 목적으로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그리그의 페르귄트 부분이었다. 입센의 작품 페르귄트 보다 그리그의 페르귄트를 좋아해서 자주 듣곤 하였는데, 그 음악으로만 작품의 내용을 유추해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입센의 <페르귄트>를 읽었었다. 희곡으로 된 작품이기에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페르귄트>작품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리그의 페르귄트를 이해하고픈 목적으로 읽었던 것이었는데, 음악을 틀어놓고 작품을 읽는다 하더라도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이 나의 막막했던 상황을 단숨에 해결해 주었다. 작품의 내용과 곡의 부분을 연결시켜 음원으로 제공하여 이해시켜주는 과정이 너무도 좋았다. 직접 무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바람도 있었지만 욕심은 조용히 내려놓기로 하였다.

클래식하면 문학도 있고 그림도 있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음악이 대표적으로 생각나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클래식 음악이다. 하지만 음악을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문학작품도, 미술도 두루두루 배경설명으로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기 떄문에 음악에만 국한된 책은 아니다.

수록된 열두곡의 내용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어느 정도 클래식 좀 안다고 난체 할 수 있을 것 같다.

뭐 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지적 허세도 삶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군가 나에게 다시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이며 화가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거림 없이, 그리그의 페르귄트와 페르난도 보테로라고 대답할 것이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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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미누스 : 달과 철학을 사랑한 토끼
레베카 도트르메르 지음, 이경혜 옮김 / 다섯수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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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아이와 함께 그림책 읽는 시간을 고를 것이다.

책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녀석이었지만 그림 읽어내는 힘이 끝내주는 녀석이라 그림책을 보면서도 글자에 집착하는 엄마를 그림의 세계로 끌고 와 주는 매력적인 아이였다.

그림책의 매력은 그렇게 아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제대로 읽고자 하면 아주 두꺼운 성인 책보다 더 깊은 인생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도 많아 이제 더이상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책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이가 성장하고 책장은 책들로 가득차서 우선순위로는 이제는 읽지 않을 법한 그림책들이 자리를 비워줘야하건만, 한 권 한 권 그림책 속에 담고 있는 그 깊이를 알기에 선뜻 내놓기 위한 손이 가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저자의 작품인 <레베카의 작은 극장>은 한치의 주저거림 없이 책장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집에 있는 책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새 그림책에 눈길을 주지 말아야지 하였지만 레베카 도트르메르 작품이란 것만으로도 <자코미누스>를 스쳐 지나갈 수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하는 빅북의 형태에, 따뜻한 그림, 성인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책소개, 게다가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자코미누스란 책 제목과 더불어 달과 철학을 사랑한 토끼란 부제까지 어느 것 하나 끌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제는 성적을 위한 독서에 삭막한 시간을 보내야만 할 아이지만 아주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행복했던 그 시간 그림책 읽는 놀이를 하고 싶어 아이의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렸었다.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는 예전의 그 꼬맹이가 아니였고, 하나하나 짚어주며 그림을 읽어주는 아이는 사라졌다. 그저 숨가쁘게 달리듯이 글자를 읽어대는 엄마만 있었다.



첫장을 넘겨보고 화들짝 놀랐다.

수많은 등장인물에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로 가득찬 이 번호들이 살짝 부담스러웠다.

예전 같으면 인물 하나하나 짚어가며 누굴까 상상의 나래도 펼쳐봤겠지만 그랬다가는 아이가 박차고 일어날 것 같아 서둘러 한 장을 넘겼다.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들, 그리고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찾아보기에 맨 앞페이지의 이 그림은 너무도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 이야기에 몰입하기에도 좋아 어린 아이들과 읽기에 정말 좋은 구성이라 생각되었다.

자코미누스는 과연 누굴까, 어디에 있을까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였고, 다 큰 아이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도 효과적이었다.



이 책은 자코미누스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태어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 날까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아이를 낳고 돌잡이 하면서 남편은 아이가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처럼 보통, 평범이란 일상적인 삶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자코미누스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가치있는 것들인지 공감하게 된다.

다리를 다친 다코미누스를 달래주는 베아트릭스 할머니의 말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리를 다쳤던 아이가 깁스를 하였을 때 호들갑 떨며 걱정하던 나의 불안정했던 모습이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엄마랑 책을 읽는 것이 아닌 엄마를 위해 같이 책 읽어주는 시늉을 하는 것 같았던 아이는 꼬맹이적 집중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커진 티를 내는 듯 금새 내용과 담긴 의미를 파악하며 나에게 주절거려줬다. 엄마처럼 철학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이 입을 통해 나오는 모든 언어가 철학이었기에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

게다가 이 그림이 너무도 맘에 든다며 탭으로 쑥싹 그림을 그려 선물해 주었다.

<자코미누스> 책에 있는 그림을 보고 그린 아이의 작품이다.

자랑삼아 올려본다. ^^;;;




숫자로 나타낸 자코미누스의 풍요로운 시간들, 그리고 뒷장에 성장한 등장인물들을 찾아보는 색다른 재미가 듬뿍 담겨있다.

글의 내용도 좋지만 그림이 너무 좋아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봤음 하는 바람이 드는 책이었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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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지음, 윤지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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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 순간 제목보다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풍의 표지였다.

제목이 <가짜 산모 수첩>이라니...

반전을 불러일으킬만한 제목이었지만 너무도 임신을 바라는 산모의 상상임신이라던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가짜 임신 행세를 하는 스릴러물이 아닐까 하는 짧은 상상력의 추측으로 패쓰할까도 싶었다.

요즘엔 아무런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이야기만 읽고 싶어서랄까 자극적인 글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불합리하고 일상적인 차별에 제대로 빡친 어느 날 위장 임신을 결심했다는 띠지의 문구가 나의 흥미를 자극시켰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딱히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과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말하라 한다면 나의 임신 시절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남편도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보면 우린 결혼을 했기에 한명 정도의 아이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그나마 경제적인 계획까지 염두해 두고 준비를 하였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것 같다.

맞벌이를 하고 있었지만 육아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출산휴가도 육아휴직도 챙기지 않은 채 퇴사했었다. 덕분에 임신기간 동안 오롯이 아이를 위한 활동에 전념하는 호사로움과 행복한 시간을 선물받았지만 시간이 흘러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남편에게는 정말 미안한 시간이었겠단 생각도 든다.

이 이야기는 임신 5주차 부터 시작된다. 임신 주차별 해당 이야기가 시작되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나의 임신 주수를 되짚어 보는 설레임과 행복감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시바타씨의 임신 이야기는 나와는 결이 달랐다.

남자 사원들만 있는 지관 회사 부서에서 일하는 시바타씨는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탕비실 청소를 비롯 커피잔 정리며 손님이 오면 커피 심부름까지 당연스레 도맡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 무척 공감되었다.

그녀의 통쾌한 한방은 바로 임신했다는 말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두들 당황할 것 같은 상황이였지만 의외로 그 후의 상황들은 덤덤했다. 읽는 내내 들킬까봐 조바심 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의 문제로 임신했다고 하면 짤릴까봐 쉬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일텐데 가짜임신을 했으면서도 그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래서 당당하게 처녀가 임신 선언을 할 상상도 해 보았나 싶기도 하였다.

임신과 육아를 통한 불합리함이 메세지로 전해지고 있는 작가의 의도가 있는 소설이었지만 이기적인 독서로 나는 나의 행복했던 시간을 소환하는 목적으로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

가짜 임신이긴 하였지만 임신부의 생황을 그대로 실천했던 어찌보면 진짜 산모 수첩과 같은 기록들이었기에 즐거웠다. 36주에 진짜 태동을 느끼고 병원에서 진료까지 받는 장면을 보면서 진짜 임신인가 아닌가 혼란 스럽기도 하였지만 일일히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책 속에는 맛있는 일본 음식과 내가 좋아하는 영화 제목들이 대거 등장한다.

임신 기간 했던 요가랑 육아 강좌, 그리고 남편과 함께 받으러 갔던 수업 등등 그 날의 기억들이 떠올랐고, 지금도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그날의 추억을 주절거렸다.

뱃속에 있을때만 사랑스러웠지? 하는 아이의 폭탄 발언에 급 뜨끔하면서 뭘 반성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모쪼록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 책 본연의 취지를 생각해 보면, 외벌이로 혼자 힘들게 일하고 있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많이 개선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부당하게 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직원에게만 시키는 이름없는 일들, 맞벌이로 임신과 육아의 어려움에 직면한 엄마들의 입장에 공감해 본다.

그럼에도 가장 공감되는 장면은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크면 좋을까?란 질문을 하면서 이름을 짓던 순간과 내가 뭘 좋아하는지 까먹기 전에 꾸미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라는 친구의 조언이 있던 장면이었다.

가독성 있는 책에다 발상이 기발하여 빨려들듯 읽어내린 소설이었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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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클래식 - 삶에 쉼표가 필요한 순간
전영범 지음 / 비엠케이(BMK)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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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클래식을 좋아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만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고전을 뜻하는 의미로서의 클래식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텍스트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클래식 작품이 무엇이 있고, 어떤 내용이냐고 물어본다면 그 깊이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입쩍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니까...

작곡가가 누구고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곡인지도 모르지만 들으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곡들이 있다. 그냥 그러한 감정이 좋아서 클래식이 좋다고 말한 것 뿐인데, 작품에 대해 깊이 알고자 하면 머리 아픈 공부가 되고 말았다. 대중가요라면 곡과 함께 가사가 첨부되어 어렴풋이 무엇을 노래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지만 클래식의 영역은 그러하지 않았다.

제목조차 외우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할까나...

그림을 보고 자유롭게 느껴지는 대로 느끼는 감상을 하며 힐링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림읽는 강연을 들으면서 그림과 관련된 작가와 담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 배우면서 그림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알고 보는 그림이 더 깊이 와 닿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림보다 더 좋아했던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미술에 관련된 내용보다 음악에 관련된 도서를 만나는 것이 더 힘들었다. 겨우 만났다 하더라도 수록된 곡의 설명을 듣기 전에 곡을 찾는 시간을 할애하는 수고로움을 겪어야만 했다. 뚝뚝 끊어지는 그 흐름이 아쉬웠었는데, 이 책은 정말 감사하게도 QR코드로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친절함을 담고 있다.

수록된 음악에 대한 곡 설명과 작곡가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클래식 전반에 대한 접근을 에세이 형식을 빌어 담고 있다. 그 과정에 물론 작곡가의 인생과 곡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지만 철학자를 비롯 유명인들의 명언과 여러 영화들의 내용을 재료로 클래식을 좀 더 친근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무엇이 삶을 그리도 힘들고 지치게 하고 있는지 눈치챌 수는 없었지만 이 책에 끌림이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클래식 보다는 삶에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작은 글씨의 타이틀과 싱그러움이라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뜬금없이 떠오르게 하는 표지의 그림이었다.

쉼표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아름다운 선율, 덕분에 느껴지는 힐링, 이 마음이 오롯이 자전거 타는 소녀의 행복한 표정처럼 나에게도 주어지겠단 설렘을 선물해 주는 책이었다.

영화 <그린북>을 너무도 재밌게 아주 인상 깊게 보았었는데 힘빼고 클래식 들어도 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소재로 사용되어 더 반가웠다.

누군가 좋아하는 클래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고민했던 지적 허영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나의 머리나 수준은 그에 따라주지 못했고, 클래식을 암기로 접근하려 하니 너무도 고되고 싫다는 마음까지 생기기도 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새 클래식을 그렇게 고되게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냥 너가 뭔 내용인지 모르고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좋아라 하였던 모든 영역의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버무려 놓은 선물 같은 책이었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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