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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지음, 윤지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2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107/pimg_7195101833261892.jpg)
책을 본 순간 제목보다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풍의 표지였다.
제목이 <가짜 산모 수첩>이라니...
반전을 불러일으킬만한 제목이었지만 너무도 임신을 바라는 산모의 상상임신이라던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가짜 임신 행세를 하는 스릴러물이 아닐까 하는 짧은 상상력의 추측으로 패쓰할까도 싶었다.
요즘엔 아무런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이야기만 읽고 싶어서랄까 자극적인 글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불합리하고 일상적인 차별에 제대로 빡친 어느 날 위장 임신을 결심했다는 띠지의 문구가 나의 흥미를 자극시켰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딱히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과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말하라 한다면 나의 임신 시절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남편도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보면 우린 결혼을 했기에 한명 정도의 아이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그나마 경제적인 계획까지 염두해 두고 준비를 하였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것 같다.
맞벌이를 하고 있었지만 육아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출산휴가도 육아휴직도 챙기지 않은 채 퇴사했었다. 덕분에 임신기간 동안 오롯이 아이를 위한 활동에 전념하는 호사로움과 행복한 시간을 선물받았지만 시간이 흘러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남편에게는 정말 미안한 시간이었겠단 생각도 든다.
이 이야기는 임신 5주차 부터 시작된다. 임신 주차별 해당 이야기가 시작되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나의 임신 주수를 되짚어 보는 설레임과 행복감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시바타씨의 임신 이야기는 나와는 결이 달랐다.
남자 사원들만 있는 지관 회사 부서에서 일하는 시바타씨는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탕비실 청소를 비롯 커피잔 정리며 손님이 오면 커피 심부름까지 당연스레 도맡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 무척 공감되었다.
그녀의 통쾌한 한방은 바로 임신했다는 말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두들 당황할 것 같은 상황이였지만 의외로 그 후의 상황들은 덤덤했다. 읽는 내내 들킬까봐 조바심 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의 문제로 임신했다고 하면 짤릴까봐 쉬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일텐데 가짜임신을 했으면서도 그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래서 당당하게 처녀가 임신 선언을 할 상상도 해 보았나 싶기도 하였다.
임신과 육아를 통한 불합리함이 메세지로 전해지고 있는 작가의 의도가 있는 소설이었지만 이기적인 독서로 나는 나의 행복했던 시간을 소환하는 목적으로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
가짜 임신이긴 하였지만 임신부의 생황을 그대로 실천했던 어찌보면 진짜 산모 수첩과 같은 기록들이었기에 즐거웠다. 36주에 진짜 태동을 느끼고 병원에서 진료까지 받는 장면을 보면서 진짜 임신인가 아닌가 혼란 스럽기도 하였지만 일일히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책 속에는 맛있는 일본 음식과 내가 좋아하는 영화 제목들이 대거 등장한다.
임신 기간 했던 요가랑 육아 강좌, 그리고 남편과 함께 받으러 갔던 수업 등등 그 날의 기억들이 떠올랐고, 지금도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그날의 추억을 주절거렸다.
뱃속에 있을때만 사랑스러웠지? 하는 아이의 폭탄 발언에 급 뜨끔하면서 뭘 반성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모쪼록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 책 본연의 취지를 생각해 보면, 외벌이로 혼자 힘들게 일하고 있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많이 개선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부당하게 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직원에게만 시키는 이름없는 일들, 맞벌이로 임신과 육아의 어려움에 직면한 엄마들의 입장에 공감해 본다.
그럼에도 가장 공감되는 장면은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크면 좋을까?란 질문을 하면서 이름을 짓던 순간과 내가 뭘 좋아하는지 까먹기 전에 꾸미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라는 친구의 조언이 있던 장면이었다.
가독성 있는 책에다 발상이 기발하여 빨려들듯 읽어내린 소설이었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