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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평점 :
추리나 탐정 소설을 즐겨읽지 않는 나였지만 재밌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단박에 애거서 크리스티 책이라 말하곤 하였다. 학창 시절 빨간 표지로 된 애거서의 작품을 모았던 적이 있었는데 어찌된 이유에선지 결혼 후 책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특히 < 삼나무 관>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그 빨간 표지 책을 구하려 하니 멋진 표지의 새 책들이 등장하여 살짝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라는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애거서의 작품들은 모두 재밌다 하면서도 정작 애거서 크리스티란 작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녀의 작품을 고전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였지만 단순히 범인이 누구일까 맞추는 것에만 집착한, 그렇게도 좋아하는 작품들이라면서 나 또한 B급 문학으로 취급했었나보다.
책을 펴내며 여는 글에서 소개한 작가의 말들이 마음 속에 콕콕 와 닿았다.
그리고 이 책의 방향성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어른이 된 후 다시 읽게된 애거서의 작품들에서 새롭게 보이는 것들, 역사가인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작품 해석, 전집과 자서전을 같이 읽고 알게된 것들을 바탕으로 16개의 주제로 묶어놓은 이 책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작가에 대한 정보를 비롯 작품 해설까지 개인이 찾기에 너무도 방대한 것들을 한 권으로 잘 정리된 책으로 만날 수 있다니, 애거서의 수많은 작품을 읽기 전에 미리 읽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고, 다 읽은 후 정리 작업으로 읽어보아도 유용할 책일 거 같다.
푸아로 탐정은 영국인이 아니라 벨기에인이다. 애거서의 자부심 중 하나는 푸아로와 마플 두 명의 탐정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탐정이 등장한 부분에 집중했던 편이 아니였는데 이야기를 읽으면서 탐정 시리즈도 다시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푸아로가 영국인이든 벨기에인이든 어른이 된 후에도 어쩌면 아무런 궁금증 없이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서양 역사에 대한 무지한 편이라 유럽이란 나라가 한나라인 마냥 깊숙히 알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이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을 비롯 푸아로가 벨기에인으로 설정된 이유 등등 역사 전공자의 해설을 읽고 나니 작품이 더욱 새롭게 느껴지고 한층 더 재밌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되었다.
책은 단순히 주제에 대한 설명만 나열하고 있지 않다. 중간 중간 관련된 내용의 커다란 사진을 첨부해 두었는데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이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층 더 깊이 애거서를 이해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녀의 사건 배경은 그녀가 살고 있던 집이나 주변이었던 경우가 왕왕 있었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을 직접 체험해 보는 치밀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정유정 작가도 배경 선정에 있어서 치밀함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인터뷰에서 본 것 같았는데 그런 수고로움 덕분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전쟁이 주는 참상은 애거서도 비켜가지 못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녀는 가놓사를 지원했는데 병동에서 조재실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무슨 일을 하든 열정적인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녀의 글이 사랑받지 않을 수 없겠단 생각이 든다. 독살에 의한 죽음이 많은 애거서의 작품은 이러한 그녀의 실제 노력에서 탄생되었다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애거서 크리스티란 작가에 대해 알게 되고, 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알게 되고, 그녀가 쓴 책들의 목록을 기록하며 재독 아니면 새로 읽고 싶게 된다.
코로나 시대 작가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짧은 기간 집필한 책이었다 하지만 참고 문헌의 분량을 보면 말씀처럼 가볍게 읽히게만 쓴 책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덕분에 누군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고, 작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한층 더 깊이 추천하고픈 고전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아주 당당하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역사학자 설혜심 작가님의 책을 참고 하시라 꼭 추천해 주고 싶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