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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머나먼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72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월
평점 :
시와 그닥 가깝지 않은 내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접하게 된 시집이다.
이 시집은 최승자시인이 1999년 [연인들]을 펴 낸 후 11년만에 내는 시집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기나긴 잠의 침잠에서 벗어난 듯 시간들에 대해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나는 전혀 겉멋으로 치장하거나 가공되지 않은 자연미를 느낄 수 있었으며, 세계, 역사, 사회, 자본등의 등장은 그 상상력이 무한대로 뻗어나가 범 우주적이며,과거, 현재, 미래등 초시간적인 경계와 공간성을 넘나들어야했다.
또한 꿈, 잠, 새,죽음을 통해 자유로움을 맛보게도 되며 <한 아이가>라든지, < 참 우습다>에서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참 우습다 中>
경쾌하면서도 내 나이 57세의 모습을 연상해보니 재미있다.
아직 내 나이엔 흐르르흐르르 하기보단 포르르포르르 해야하는데
몸과 마음가짐은 할머니 쪽으로 기우는 듯하니
뭔가 문제가 있는 듯하다. 마음으로라도 젊게 살아야지...
하늘 虛 한잔 <하늘 虛 한잔>,
커피 한 스푼의 無/ 커피 물 한잔의 無限 <구름 한 점 쓰다 가겠습니다>
시간은 늘 괴어있다. ....
흔들리고 흔들리는 이 세계 속에서 왜 시간은
늘 괴어 있는 것일까?
...
흔적도 없이 괴어있는
시간의 잿빛 그림자 <시간의 잿빛 그림자 中>
괴어있는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왜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흐르지 못하고
무슨 아쉬움에 잿빛 그림자가지 남겼을지 궁금해진다.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그 사막 한 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
나는 배고팠고 슬펐다.
어디선가 한 강물이 흘러갔고
(그러나 바다는 넘치지 않았고)
어디선가 한 하늘이 흘러갔고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한 세월이 있었다 >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눈(雪)의 시간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
시간들도 있습니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
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시간이 사각사각 中>
아무생각 없이 살아온 한세월,
사람들 살다간 흔적은 남지않고
아름다운 결정체의 시간들과 불안정한 결정체의 시간들의 교차속에 살아간다.
바스러지고 무너진 시간들은 회색 재가 되겠지만 쌓아두고 싶진 않다.
작가의 메모처럼 나는 잿빛으로 삭고
세계가 무한 잿빛으로 가라앉을 만큼
사막 한가운데서 혼자
힘겨운 오랜 고뇌와 고통이 수반되는 시간이 지나면
한 인생이 흘러간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일찌기 나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 살은 온다"<삼십 세>
등 경이로운 문장을 던져 주었던 시인 최승자에 대해 박 혜경씨의 해설과 설명을 통해 그녀의 작품 세계를 알게 되었고, 쓸쓸한 밤에 벗삼아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