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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베이커 자서전 : 성장
러셀 베이커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평점 :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르면서 그의 자서전을 읽게 된 것은 부제처럼 커다랗게 붙어있는 <성장>이란 단어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른이 되기위해서는 사춘기를 겪어야하며 성장이란 미명아래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나도 내마음을 모르는 혼란한 상태로 거북한 현실앞에 내던져진다. 그 길은 누구도 동행할 수 없으며 모순덩어리를 안고 혼란스럽고 격정의 폭풍우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감내야하는 통과의례이다. 사람에 따라 수위는 다르지만 우리는 이것을 통해 성장하고 어른으로 발돋음하며 자기만의 가치나 목표를 세우고 더 긴 여정을 준비한다.
러셀 베이커~ 그는 퓰리처상 평론부문 수상 경력이 있는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다. 나는 그의 성장일기는 엿보고 싶은 호기심에 이 책을 들게 되었고,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의 빈 자리도 많은 친척과 부대낌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잘 성장되어갔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관객의 입장에서 주위 가족들을 그려내고 있으며 자신의 부끄럽고, 우스광스런 속내까지 솔직히 들어내는 모습은 더 인간적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위해서는 온 마을사람들의 보살핌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무릇 아이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주위사람들의 희노애락을 같이 느끼고 몸으로 부딪혀봐야 남을 배려하고 스스로 성장할 자양분을 많이 얻는다는 진리를 또 한번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아홉남매중 맏딸로 지방 변호사인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시골선생님으로 오게 된 저자의 억척스러운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와는 영 딴판으로 11번째의 아들인 아버지는 투박한 시골 청년이었다. 어머니 못지않게 기가 센 할머니와 어머니와의 가족간 갈등관계,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시작되는 외삼촌댁의 더부살이, 대공황시기에 어려운 살림등 러셀앞의 삶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았다. 8살이 되자 아들의 출세와 성공를 향한 의지를 태우는 어머니는 러셀에게 신문판매일을 시키셨으나 야무지고 똑부러진 여동생 도리스와는 달리 적극성이 부족한 그에게는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른들의 얘기에 귀기울이고 행복해하며 세상을 배워나갔다.
"..어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때면 나는 아주 진지했다.나는 그 자리에서 이 세상에 대해, 그리고 이 세상을 읽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는 셈이다. 내가 배운 것은 이야기의 내용 자체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 태도에 있었다.그리고 그 태도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 인생의 밑거름이 되었다."(p188)
치매라는 병으로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면서 글을 열었고 어머니를 찾아뵙는 장면으로 책을 마무리한 그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상당히 컸음을 느낄 수 있다. 그에겐 희망을 버리지않고 든든히 버텨주신 어머니셨다.
러셀이 사귀는 친구에 노심초사하고, 여자친구사귀는 아들이 늦게 들어오자 초조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여느 어머니와 다름없었고, 수중에 돈이 없어도 할부로 교회에 갈때면 말끔히 빼입을 꽤 값이 나가는 옷을 사 입혔으며 신사로서의 에티켓을 가르치셨고, 어려운 살림중에서도 쪼개어 자전거라는 성탄절 선물까지 마련하는 어머니셨다.아이의 잘 하는 점을 찾으려 애쓰고 대학진학을 위해 열심히 학습을 시킨 어머니는 당신의 좌절된 젊음을 아들의 출세를 위해 바치셨고 그 꿈은 집도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위해 철도회사에 다니는 허브아저씨와 재혼하게 됨으로써 현실성있게 이루어졌다.
어머니의 열정적인 뒷바라지의 결실인지 러셀은 존스 홉킨스대학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해군 비행단 조종사훈련까지 받는 멋진 신사가 되었다. 어머니의 마음에 쏙 드는 기준의 여자는 아니었지만 예쁘고 생활력 강한 미미와 결혼을 하며 한 아이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집안의 기둥 자리를 내주기 싫어 새아버지를 지적 우월감으로 철저히 무시하는 반항하는 행태라던가, 미미와의 연예과정이나 어머니와의 첫 대면인 식사초대이야기등은 가볍고 즐거움과 웃음을 준다.이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에서도 소박하지만 유머와 절제를 잃지않는 외가의 분위기영향인 듯도 한데, 이렇게 성장시기의 환경은 그 사람의 일생을 통해 오랫동안 영향을 주게된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
그의 자서전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과거여행에 대해 알게 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부모가 우리에게 자신의 과거를 얘기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부모님의 시간에 한정된 것을 깨부수고 빠져 나오고 싶었듯이 우리 아이들도 나의 미래였지만 그들에겐 과거인 시간에는 무관심하다. 언젠가 그들도 그 과거를 알고 싶어하는 때가 올까?
러셀의 다음 귀절에서 그 해답을 구해본다.
"우리 모두는 과거에서 왔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생겨나게 한 그 과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인생이 아주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시간으로부터 현재에까지 뻗어있는, 사람들로 엮어진 동아줄과도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인생이란 결코 기저귀에서 수의(壽衣)를 입기까지 한 뼘의 여정으로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p22)
어느 새 잔잔한 감동이 여운을 남기며 내 가슴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