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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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매스컴에서 일년에 두번 열리는 성북동의 간송 미술관에 관람객이 줄을 길게 서며 입장을 기다린다는 소식을 본듯하다. 무슨 전시이기에 일년에 두번뿐인가 하는 의문은  피카소나 샤갈, 르노와르등 눈에 띄는 유명 화가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간송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내겐 그저  지나가는 문화계의 한 소식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한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런 분이 계셨다니...간송 전형필선생님의 높은 민족의식,  우리문화작품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열정, 거간군에게 후하게 대접하며 상품의 가치를  제대로 쳐주는 商도덕, 빠른 판단력과 배포등 그의 인생을 재조명하고 보니  존경스러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

이 책은 미국에서 단편소설, 칼럼을 쓰고 있는 이 충렬님이 2006년 간송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출품된 22점의 국보와 보물을 보면서 간송 전형필 일대기를 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자료조사와 간송家의 출판도움과 협조를 받아 탄생된 책이다.

이 책은  무신家의 전형필선생님의 조상이 미곡상을 하며 벌어놓은 많은 사재를 털어넣어가며 일제강점기동안 수 많은 국보급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막기위해 남이 가지않는 번민의 길을 자처한 간송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친부와 양부의 유일한 상속자인 그는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매년 기와집 150채 상당의 수입을  보장하는, 기와집 2천채 상당의 가치가 있는 논을 상속받은 백만장자였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흥코자 일본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했으나 휘문고보 미술선생님인 춘곡선생의 왜놈손에 넘어가는 우리의 서화와 전적을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의견에 따라 평생 스승 오세창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오세창선생님은 서화대수장가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당대 최고의 감식안으로 평가를 받았고, 그와의 만남은 간송이 평생 우리 선조들의 그림, 글씨, 책, 도자기등이 우리 ’민족의 혼이자 얼’로 그가 우리민족의 혼을  지키기위한 일을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수장품을 후세까지 잘 보존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 박물관을 세우는 결심을 하는데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셨다.

또한 거기에는 외종사촌형인 월탄 박종화의 민족과 역사에 대한  의식과 좌우로 그를 보필한 거간군 이순황과 신보가 있었고, 고서화 수집의 전진기지였던 한남서림을 넘겨준 백두용등  그를 후원한 사람들이  많은 덕이었다. 

힘겹게 간송 박물관(보화각과 북단장)을 짓고  해방을 기다리던 그에게 해방후 찾아온 민족상잔의 비극은 또 한번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고, 피난으로 인해 서화와 많은 구장서의 손실을 막을 수 없는 허무함도 있었다. 구제사업과 선친의 뜻인 교육사업도 시작하여 보성고보를 운영하게 되었지만 전쟁후 농지개혁법안 통과와 토지대금으로 지불받은 자가증권은 화폐가치의 추락으로 수입이 없어져 나중엔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간송 생전엔 간송미술관이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것을 보지 못한채 황망히 세상을 떠났지만 이를 지키기위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걸어왔는지 책에 잘 들어나있다.

그의 박물관엔 고려의 푸른 하늘에서 학이 춤추는 천학매병의 고려청자와, 개스비가 20년동안 모은 고려청자들, 심 사정의 <촉잔도>는 거금을 주고 사왔지만 보존상태가 나빠 사온 값보다 더한 돈을 들여 보수를 해야했고, 일본에 유출된 <혜원전신첩>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되사와야했으며, 부도 반환 청구 소송으로 찾아와야했던 <괴산 팔각당형 부도>, 13년의 기다림끝에 손에 넣을 수 있었던 <훈민정음>해례본등 하나 하나 사연없고 인내와 번민없는 수장품은 없었다.


황금광시대 돈 좀 있는 사람은 금맥을 찾아 인생역전을 꿈꾸기에 나섰고, 조선의 대수장가들도 해방을 기다리다 끝내 역사를 지키는 일보다 부귀영화를 택해 일본인에게 수장품을 처분하는 현실,  일본의 밀반출은 눈감아주면서  우리나라 사람에겐 깐깐이 적용되는 불공평한 관례등 그에게  안타깝고  억울한 고난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가 과연 그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꿋꿋하게 버티지 않았다면, 그 시대에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곁에 남아있는 보물이나 국보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런지 아찔하기만 하다.
그가 수집한 우리 문화재는 삼국시대부터 조선말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에 걸쳐 서화는 물론 조각과 공예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것이었으며 이는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겸재, 단원, 혜원, 오원, 추사등 거장의 명품을 중심으로 민족의 얼을 찾는 작업이었다.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그는 한국의 미를 발굴하고  지키며 그 품격을 후세에 알리는 수문장이셨고, 그가 탁월한 심미안으로 한국의 미를 사랑했기에 고난과 번민의 길이었지만 행복하였으리라 믿고싶다.

보물을 찾고 일본수집가와 벌이는 명승부의 이야기에 , 때론 탄식하고 때론 안도하며 함께하다보니 어느새 다 읽게 되었다. 
 책장을 덮으며 큰 인물 간송 전형필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으며 내년 봄 간송 미술관전시때 방문하면 소장품 하나 하나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오리라 믿으며 그 날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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