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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시집은 박경리님의 유고 시집이다.
이 시집은 그녀의 출생부터 시작 된 가족이야기가 들어있으며 실제 여행보다는 내면인 마음의 여행을 좋아하고, 그녀의 천성이 어떠한지까지 알 수 있다. 물 한모금 밀알 하나꿈꾸는 새에게 연민을 품고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 간 인간 본연의 진솔된 모습도 보여준다.
즉, 자신에 대한 주변 정리라고 할까?
내용 중 [어머니의 사는 법]을 보면 저자는 태평양전쟁, 육이오를 겪었고, 유신 군사시대를 맞는 등 격동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고된 삶을 살면서 인간이 얼마만큼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 온 몸으로 뼈저리게 경험했다고 한다.
남과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았고, 셈이 확실하셔서 외상값을 갚고 피난을 가신 어머니덕에 이웃간에 반동을 색출하는 무시 무시한 분위기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말소드레기(말을 옮겨 분란을 일으키는 것) 를 안하시는 어머니의 생활 방식을 배우며 극적인 세상을 살아 내 오셨다. 이는 저자의 작품 속에 녹아져 우리에게 전달되어 오지만 한 인간으로서 평탄치 못한 삶에 恨 을 말하는 그분이 가여워 가슴 뭉클하다.
유년기의 저자의 감성은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새와도 같았다고 하는 말로 감정을 드러내신다.
옛날을 회상한다던지 가족사에 얽힌 한 단면만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순]이나 [마음], [넋]에서 보여주듯이 지식인들의 어리석은 논쟁이나, 인간의 부질없는 권세와 명리, 재물을 쫓는 탐욕등을 꼬집는 시도 있다.
또한 우주 만상 속의 당신을 보며 삶을 초탈할 듯 보이는 자세는 회촌 골짜기의 겨울을 쓸쓸하게 묘사하며 삶의 끝자락을 준비하는 마음이 보여지기도 한다.
.......
속박과 가난의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中에서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옛날의 그 집 ] 中에서
육신의 아픈 기억은
쉽게 지워진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덧나기 일쑤이다
떠났다가도 돌아와서
깊은 밤 나를 쳐다보곤 한다.
나를 쳐다볼 뿐만 아니라
때론 슬프게 흐느끼고
때론 분노로 떨게하고
절망을 안겨 주기도 한다
육신으 아픔은 감각이지만
마음의상처는
삶의 본질과 닿아있기 때문일까
그것을 한이라 하는가 [恨] 中에서
우리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 이리도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일까?
다 버리고 내려놓고 가야 할 인생, 우리는 중요한 순간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 끝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로 마무리 할 수 있을지 마지막 한 장의 달력을 남긴
12월의 첫 시작에서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백발이 성성하신 몸으로 밭일 하고, 고추 널고, 배추 가꾸시는 몇 컷의 사진은 열심히 살아 온 저자의 열정적이고 자연스런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욱 감동적이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정성스레 수 놓으신 이 작품들,
비우고 비우며 삶을 완성하신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다시금 그녀를 애도해 본다.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