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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선진국들이 200여년에 걸쳐 민주주의 형태를 갖춘것을 우리나라는 단 50여 년밖에 걸리지 않았고 이러한 저력은 전 후 굶주리고 원조 받는 나라에서 세계 G 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나라로 눈부신 경제적 고속성장을 일궈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DP가 얼마이고, 올 경제 성장률이 얼마이고... 겉으로 드러 난 숫자놀음은 우리 자신에게 나아지리라는 희망보다는 퍽퍽하고 힘든 현실벽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업이 잘되어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라는 생각은 허리띠를 졸라 평균노동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당했고, 복지나 분배는 나중으로 미뤄지며 정치적 비호아래 대기업육성정책은 재벌을 키워내어 이제 국가의 모든 권력이 재벌의 손아귀에 들어가 좌지우지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소설은 태봉그룹의 시범을 보고 서열 2위인 일광그룹이라는 재벌이 문화개척센터라는 부서를 만들어 경제 범죄를 계획하고 저지르기위해 어떠한 일이 펼쳐지는지 , 그들만의 골든 패밀리잔치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악어와 악어새관계인 대기업과 검찰, 또는 정격유착의 관계가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그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물론 모든 대기업이 이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매스컴을 통하여 대기업의 비자금문제나 변칙운용, 불법상속및 세습의 문제를 수 없이 보아왔으며, 어떤 회사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통해 이러한 행위의 실체에 익숙하다. 돈으로 매수된 언론매체나 정치세력의 결탁은 사법판결을 받는다 해도 그 수위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솜방망이보다 가벼운지 익히 알고있다. 기업이 oo공화국으로 불리며 회장은 군주와도 같은 권력과 지위를 지니고, 몇%안의 우수학생들에게 장학금과 투자로 미래의 보험을 들어두며, 언론장악으로 사회적 이미지에만 급급한 속사정들을 너무나 잘 알고있다.
이른바 천민자본주의에 대해 작가는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과거 , '기업이 잘되어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라는 생각은 바보같은 기대고 희망이었음을 말한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재벌들의 노예라고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단지 선거날 투표장소에서만 잠시 주인노릇을 했다가 그 장소를 벗어나자마자 다시 우리는 노예로 전락한다는 말이다. 무시당하고 고통받으면서도 혹시나 '경제를 살린다는데', '내가 사는 지역을 개발한다는데' 하며 믿다가 다시 배신을 당하기 일쑤여도 열심히만 일하면 내 재산을 불려 잘 살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속성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자발적 복종으로 허수아비노릇만 해 왔던 시민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내일보다 모레는 더욱더 잘 살게 된다는 희망과 꿈을 품은 자본주의 열차의 승객들은 절대로 중간에서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잘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니까요. 그자들이(사회단체) 떠들어대는 소리는 그 열차에서 뛰어내리라는 소린데, 그 소리가 잘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는 사람들 귀에 들릴 리가 있습니까..."(p414)
너무나 공감가는 대목이다. 우리는 뻔히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 불공평하다는 푸념속에서도 자처하여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잠시 흥분하다 아무렇지 않게 쉽게 잊고 내 일상적인 체념의 삶으로 돌아온다.
아니, 더 나아가 나의 못남을 탓하며, 그들의 보이지 않은 권력과 무시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 해 볼 문제다.
청문회에 서 있는 정치가는 도덕성에 흠집나지 않은 사람은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고, 세계의 빅뉴스거리중 하나가 될만한 정치권의 불법사찰도 공정한 법을 판정해야할 시녀들의 안일한 대처로 정치적 민주주의를 뒷걸음치게 만들고 있는 마당에 언론도 기댈만한 구석하나 없는 이 시점에 이 소설은 현실의 답답함을 가중시킨다.
저자는 소극적이지만 대중들에게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연합과 대중들의 결속으로 무혈의 경제혁명, 즉 대중들이 자발적 복종에서 벗어나 더 똑똑해지고 눈을 부릅떠 재벌들의 비자금이나 불법, 탈법을 감시하고 불매운동도 불사하는 경제혁명을 제안하고 있다. 나아가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싶어하는데,
"기업들은 양심적으로 투명경영을 하고, 성실하게 세금을내서 복지제도와 함께 분배가 잘 이루어져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랐다."(p251)
이것이 경제민주화인 것이다.
정치민주화가 시급하여 유보되었던 경제민주화를 이제 꿈꾸고 실천하기를 저자는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경제민주화실천연대를 이끄는 변호사 전인욱과 입바른 글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허민교수가 경제혁명의 기수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에 반해 윤성훈, 박재우, 강기준은 일광그룹의 문화개척센터의 일원으로 음모와 경제비리를 자행하며 , 호시탐탐 돈과 권력을 쫓아 철새처럼 옮겨다니는 타락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어디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긴 인류의 역사는 증언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p325)
이 책은 자발적 복종으로 허수아비춤을 추고 있는 우리에게 시대를 통찰하고 망각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계기를 준다. 또한 현실의 부당함과 역사의 처절함에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토해 낼 줄 아는 작가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삶과 역사가 만나는 작품을 창조하는 긴 숨의 작가이기에 그의 울림이 더욱 멀리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