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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전작에선 엄마에 대한 애뜻함에 눈물을 자아내게 한 저자가 이번엔 이 책을 통해 20대 방황하던 젊은 날에 대한 추억에 젖어들게 한다.
얼굴을 가리는 투구부터 두툼한 보호대를 차고 대치한 정렬된 푸른 군복의 젊은이들
멀리 울려퍼지던 투쟁가와 구호, 찢겨진 대자보와 빨간 글씨의 현수막,
여기 저기 불안하게 도사리고 있는 도화선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날아오고 가는 돌맹이와 불 붙은 화염병 노란 최루탄 가스와 방망이질..
급박한 상황에 넘어지고 다치고, 붙잡히고 끌려가 차 위에 오르면 어딜론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닭장차(?)...
80년대 젊음이라는 의미는 시대적 상황에서 앞장서야 할 책임의 주체처럼 느껴졌고,학교앞 동동주를 파는 허름한 술집에선 시대적 아픔이 우리가 풀어야 할 최대 난제처럼 한숨짓고, 울분을 토하며, 구호를 부르짖는 소임을 맡아야 될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여기 네 명의 젊은이도 그 시대에 대학생으로 각기 다른 아픔과 방황의 숱한 날들을 몸부림치며 앓고 있다. 어릴적 친구 정윤과 단, 또 한쌍의 어릴 적 친구 윤미루와 이명서~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윤교수~
암 투병생활을 하는 엄마와 일찍 떨어져 서울로 올라 온 정윤,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하며 정윤을 사랑하지만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한 단, 언니의 그림자같이 언니에게 완전 분리되지 못하고, 언니의 불행이 자신의 탓이라 죄책감을 안고 사는데 손까지 데어버린 윤미루, 그런 친구를 곁에서 힘겹게 지켜봐주고 있는 명서까지....
그들은 이 시대에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두려움속에서 힘들게 견뎌내고 있을 뿐이었다. 젊음은 그런것이다. 통과의례를 거치며 성숙을 위한 아픔을 거쳐야 하는 것이었다. 나의 젊은 날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왜곡된 진실앞에 불타오르고, 알수없는 미래와 홀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고독감에 한 없이 걷던 그런 젊은 날이 있었다.
그러 하기에 윤교수는 예수님을 업고 강을 건너 구원을 받은 크리스토프의 얘기를 들려준다.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 편으로 가는 와중에 있네...우리 모두는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무엇엔가에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강을 가장 잘 건너는 방법은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게.(p62~63)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無)의 허공을 지난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니는 것을 의미합니다.살아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살아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있으라.(p291)
이 소설에서 ’언젠가’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윤미주가 정윤에게, 정윤이 단이에게, 단이가 윤이에게, 명서가 윤이에게 ’언젠가’를 기약하며 했던 약속들.... 이제 이룰수 없는 약속이 되었지만 남은 자들은 살아가면서 추억과 함께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라~
그들은 젊었기에 젊음의 소중함을 모르고, 사랑했음에도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있어도 상처를 대신할 수 없었고, 할 말이 있어 써 놓은 편지를 부칠 수 없었다.
네 명의 청춘의 아픔은 따로 각 자 짊어져야 할 몫이고 모두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 것이다.
이 소설에는 ’오늘을 기억하자’라는 말 또한 많이 나온다.
엄마의 묘소에서 떠온 한 줌의 흙에 테이블야자를 심어 방에 놓은 윤이나, 언니를 잊지않기위해 언니의 잔꽃무늬 플레어 치마를 항상 입고 매 끼니 먹는 것을 적으며 거식증과 싸우는 미루, 갈색노트에 일기를 쓰는 명서나 군대에서 오지않는 답장에도 열심히 편지를 쓰는 단이나 그들은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하루 하루 고군분투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청춘은 단 한번만이고, 일생중 완성단계인 맨 끝에 자리한 것이 아니기에 지나보면 더 아쉽고, 좌충우돌 지내 온 추억이 있어 더 기억에 남는가 보다.
오늘도 어디선가 계속 나를 찾는 벨이 울린다. 그렇게 세상과의 관계는 끝이 없고 인생은 우리의 힘든 결단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