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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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되지 않았지만 박완서님의 사인회를 가게 되었다. 작은 몸집에  가녀린 어깨, 기력이 넘치진 않았지만 온화한 미소는 그 분을 뵙는 것만으로도 기쁜 자리였다.

 

그분의 작품에서 만나는 이야기는 내 어머니가 풀어놓는 보따리처럼 친근하고, 솔직하여 웃음을 자아내게도 하고 공감가는 작은 이야기들은 나를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저자의 유년시절에 대한 추억은 내 추억인가 싶을 만큼  세세하고 감정이 살아있는 놀라운 기억력의 결과이며,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은 갈 순 없지만 어릴 적 시골집의 살구나무가 반가워 그녀를 한적한 경기도로 이끌 정도로 힘이 세다.

 

회귀(回歸)!

나이가 들면 어릴 적 생각이 더 그립고 고향으로 가시고 싶은 건지 내 아버지도 같으셨다. 정년퇴임이후 고향으로 내려가시던 아버지~ 홀로 계시던 할머니도 맘에 걸리셨겠지만   어릴적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은 막내딸을 서울에 버려둔 채로 (오빠집에) 가시기에 망설임이 없으셨던 것 같다.

 

고향의 의미가 그리 넓은 안식처가 되셨을까? 하지만 서울이 고향인 나는 고작 몇년 정을 붙이고 자라난 곳이라도 쥐꼬리만한 추억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건물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들어서 있으니 나의 마음은 고향이라는 안식처마저 잃어버린 불쌍한 사람이 된 듯하다.씁쓸한 일이다.

 

박완서님은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다. 책을 읽고, 책을 쓰고, 사인회를 다니고, 영화를 보고, 여행도 하고, 쉴 새없이 마당을 가꾸고...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이리  열심히 사시는데 있지 않나 싶다.

 
시대적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오고, 혼돈의 이데올로기속에 살아 남기위해 견디기 힘든 여정을 걸어왔고, 아들을 앞세우는 참척의 고통을 당했어도 여전히 문학계에 건재하고 계신 모습은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고난을 헤치고 멋있게 나이들어   살아가는 본보기를 보여준다.
 

이렇게 되기까지  소리 없이 나를  스쳐 간 건 시간이었다.시간이 나를 치유해줬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이 아니었을까.(p155)

 

 무자비한 전쟁과 넌더리 나는 이념앞에 그녀는  정치성을 버리고 숨어버린다.스스로 비겁함을 얘기하지만 특수한 상황의 거친 여정을 이겨낸 그 세대에겐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위로받고, 치유하며 작가생활을 해온, 80을 코 앞에 둔 저자에게 이 책은 생(生)을 뒤돌아보며 완벽하고 조용한 미래를 꿈꾸는 마음이 엿보이는데 누구에게나 한번쯤 불쑥 찾아오는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 또한  그녀를 비켜가지는 못한 모양이다.

또한  아직도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본 적이 있다니 그건 아마도 영원불멸의 질문인 것 같다.죽을때까지 고민해야하는...

 

나에게 못 가본 길은 어느 길이었을까? 빛 바랜  젊은 날의 수첩을 뒤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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