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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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하고, 강병하리라. 조선이 그러하리라. 그리되기를 위하여 내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 (p316)

[이긴 자와 진 자의 자리가 다르다는 것을, 완전히 굴복해보지 않은 자는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진자의 자리는 바닥이 아니라 바닥 아래보다 더 낮은 곳이었다]

[세자가 원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그 작은 나라의 비루함이 아니었다. 비루함의 너머에 있는 것, 혹은 그 중심에 있는 것...그것이 바로 언젠가는 이루어져야만 할 꿈이었다.] (208)

 

이 귀절들은 소현세자가 적국 청에서 8여년 인고의 기다림을 버텨나간 이유이자  힘이 무엇이었나를 보여준다.

 

소현세자는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의 장남으로 병자호란이후  동생 봉림대군과 함게  볼모로 청나라에서 8년의 기나긴 굴욕과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게 된다. 세자의 환국은 청이  명을 무너뜨리고, 북경을 점령한 후 약 1년 만의 일이었으나, 무슨 운명인지 세자는 환국 후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공식적 사인은 학질이라하나, 아버지 인조의 지시에 의해 살해되었을 거라는 의혹이 공공연 했다.

그를 청으로 후송했던 적장 도르곤(예친왕)과의 좋은 관계는 명을 천조(天朝)로 숭상하며 200년을 섬겼던 조선의 대신들 입장에선 반갑지 않았다. 역모설에 연루되어 오르내리는 일은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인조에겐 아버지로서가 아닌 왕위를 위협받는 불안한 군주로서 소현세자뿐 아니라 그의 핏줄 (손자 등) 모두를 살려두지 않게 된다.

이 어찌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있을까? 이 얼마나 핏줄도 비정하게 잘라내는 권력의 무서운 힘이란 말인가?

 

선진적이고, 과학적인 발전을 하는 청의 문물은 실질적으로 조선의 도움이 되었을 것이나, 주자학(성리학)에 뼈속까지 젖은 조선 대신들은 실리를 추구하는 것을 비난하며  소현세자를 폄훼하였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며, '만약에'라는 단서로 섣불리 역사의 다른 결과를 추정해 보기는 조심스럽고,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안목과 다른 시각을 수용했다면 성과없이 명분싸움으로 어지럽던 조선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가능성을 생각해본다.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닐게다.
저자는 적국에서 자기 지지세력 하나없이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랐다 하더라도  펼칠 국정에서 부딪칠 일들이 너무 많아 결과를 예단하기 쉽지않았을 거라고 한다. 동의하는 바다.  바로 몇 년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쉽게 느낄 수 있었을 일이었으니까....

 

소현세자와 더불어  누르하치의 큰 총애를 받았지만, 아비의 때 이른 죽음 후에 모든 것을 잃고(모친은 순장당함), 사 후에 몇 년간의 황제칭호를 얻었으나 부관참시까지 당한 비운의 도르곤(섭정와, 예친왕) 또한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정복자의 입장인 도르곤과 적국의 볼모인 소현세자는 서로 적이었으나 외로움과 기다림의 운명이라는 점에서 벗이기도 했다.

 

 도르곤의 '위대한 자만이 자신의 적도 벗도 될 수 있다'는 말로 영웅같지 않으나 인내하고 견디면서 자기가 꿈꾸었던 것을 끝까지 놓지않은 소현세자의 모습에서 저자는 또 다른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모습의 영웅이 이 시대에도 많이 존재하기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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