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하생활자의 수기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평점 :
인간의 이익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들은 꼭 집어서 정확히 정의할 자신이 있는가?
그 어떤 이익보다도 강한 힘을 지닌 일종의 내적 충동에 힘입어, 인간은 그야말로 엉뚱한 짓을 할 수 있는가?
최상의 이익보다도 더욱 귀중한 그 무엇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도스토옙스키는 이 책을 통해 위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인간이 창조를 사랑하고 진로를 개척하기를 좋아하지만 또 한편 파괴와 혼돈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내면의 상호 모순성, 공존하는 모순된 두 요소, 선성과 잔인성, 우월감과 열등감의 이중 인격과 생각과 행동의 불합치성등을 몇가지 이야기의 수기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경제적 이유로 경멸하던 관청의 관리 생활을 뒷발로 걷어차버리지 못하는, 현대인이 그렇듯이 세상 상식에 합치하도록 노력하고 인습에 맹종하는 겁쟁이이고 노예였다. 하지만 먼 친척으로부터 어느정도의 유산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사표를 내고 방에만 틀어박힌 고독한 생활을 시작한다.
자신이 고상하고 이지적이라는 허영심의 소유자며 에고이스트지만 자신에 대한 요구가 너무나 엄격해 자기혐오와 우울, 음탕함에 대한 수치심, 히스테리까지 있는 주인공은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모욕과 증오에 가득차 있다. 단 한사람 거처의 부속물같이 생각되는 그의 하인 버릇없는 아폴론만이 같이 살고 있을뿐이다.
고아로 사랑을 받은 적도 준적도 없는 주인공은 친구관계나 여자에 대한 사랑 조차 정신적인 정복에 지나지 않았다. 환영받지 못한 즈베르코프친구의 송별식에서 자신이 겁쟁이가 아니란 것을 보이기위해, 전혀 필요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참석하여 불편함과 고통을 주는 그~
접대부 초년생 리자에게 사랑의 의미나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해 진지한 충고를 하면서 정작 자신은 연민의 정을 표현한 그녀에게 모욕감을 주면서 증오하는 고통을 선택한다.
사랑을 느끼거나 받지 못한 사람, 친밀한 교류를 갖지 못한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피폐하며 자신뿐 아니라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그의 자의식이 얼마나 그를 괴롭히는지 연민의 정을 느낀다.
현대인에게 불균형적으로 비중이 커진 이성이나 지식에 비해 감정이나 의지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한다.
한편, 그는 자신의 소심함을 분별력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자위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자유로운 의욕, 제멋대로의 변덕으로 인간임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용기를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말하는 이익 즉 행복이니 재산이니 자유니 안일따위를 향해 한치의 한 눈 팔 겨를없이 달려가는 겁쟁이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 같다. 지적 능력만을 만족시키는 이성의 무조건적인 숭배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총체적인 활동을 하는 본능이 이익에 반하여 고통을 줄지라도 인간이기에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의 경우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내비쳐보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은 최상의 이익보다도 더욱 귀중한 무엇이 있으며, 개인마다 자신의 선택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결정하며 개성대로 살아간다. 그 대가가 비싸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인간은 이성이나 이익이 명령하는 것에 따르기보다는 하고 싶은 짓을 제멋대로 하고 싶어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설파한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최고의 상승주가를 올리는 개그맨이 돌연 자리를 박차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안정된 직장을 접고 어릴 적 꿈을 이루기위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사람을 볼 수 있으며, 외국에서의 출세기회를 마다하고 강한 내적 힘에 이끌려 가난한 록밴드 기타리스트 생활을 하는 사람등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개성있는 삶,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