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물리학 -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한 시간여행의 모든 것
존 그리빈 지음, 김상훈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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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시간 여행"을 상상한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뜬금없이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는 자는 하수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큰둥한 얼굴로 "글쎄..." 하고 말꼬리를 흐리는 자는 중수다.

그렇다면? 마침 잘걸렸다 내지는 땡잡았다는 얼굴로 반색하며 시간의 정의와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작품의 계보를 줄줄 읊어대는 (혹은 설명하기도 지친다는 얼굴로 말을 돌리는) 자, 그 자가 바로 고수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양손을 움켜쥐고 "안녕하십니까. 고수 동지. 어디 있다 이제서야 나타나신 건가요." 하고 격한 반가움을 전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그치만, 만나기 좀처럼 쉽지 않단 말이지.

이 주접은 이를테면, "진짜 팬"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나름의 억울함의 발로(그런데 이제 쪼끔 구질구질한)인 것이다. 누군가는 이 세상에 '이 세상에 진짜 팬, 가짜 팬이 어디있나' 불만을 제기할지 모르겠으나...


결정적인 순간, 취향 합치에 실패해 머쓱한 분위기로 돌아서본 적이 있는 이라면 알 것이다. 이구동성을 기대했던 자리에 '으;; 맛알못'만이 남겨진 그 서글프고 찝찝한 마음을.

그뿐인가. 장르로서의 SF 자체의 역사도, 그 계보와 미래를 그리는 시도 자체도 숱하게 이어져왔으나, 여전히 SF를 "공상과학"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상상보다는 공상,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로 간주해 팬들의 마음(또는 골치)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는 뜻이다.

그러던 차에 우리가 사랑했던 SF 작품들 속 장면들을 통해 시간여행의 원리와 그 가능성을 보이는 책이 반갑지 않을리가 있나. 각각의 챕터를 따라 고전 반열에 오른 대작부터 액션영화까지, 활자와 영상, 흑백과 컬러를 넘나드는 지적 탐구에 흠뻑 빠져있노라면,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 지도 모른다.

아, 이거 동족이구나. 존 그리빈은, 앞의 이야기를 빌어, 그야말로 어디 있다 이제서야 나타난건지 반가운 고수 동지(라고 하기엔 줄곧 문단에 있었지만... 지박령에 가깝지만...)가 아닐 수 없다.


필연 SF는 가장 낭만적인 장르다. 눈 앞에 보이는 세계, 지금 여기의 시공 그 너머를 상상하는 일이 아름답고 환상적이거나 짜릿하고 생생하지 않을 수가 있나. 동시에 독자를 몹시 괴롭게하는 장르임이 분명하다. 당연함을 비틀고 진리라고 믿어온 세계를 다르게 보기를 요구하는데 진입장벽이 없을리가.

그러나 보라, 상상만큼 현실적인 일도 없다. 현실이 없다면, 지금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면 그 너머, 다른 세계, 차이를 이해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없다. 소설과 영화 속의 한 장면은 현실을 찢고 파내고 뒤집어 만든 또다른 현실-가능성이 아닌가.

그러니 여기서 물어야 한다. 왜 가능한가? 어떻게 가능하거나 불가능한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숨은 팬을, 미래의 오타쿠 씨앗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과도 같지 않을까.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시계바늘의 이동이나 숫자의 순차적 변화가 아닌, 시간 그 자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과거나 미래로의 도약은 어째서 불가능하거나 또는 꿈꿔볼만한가?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동일한 개체가 맞는가? 우리 우주는 단일한가?

시간에서 시작해 자아와 우주로 흘러가는 일련의 의문은 과거부터 끝없이 제기되어왔다. '나' 너머의 '나', '세계' 너머의 '세계'를 원하는 마음은 이동의 자유를 체감할 수 있게 된 인간이 당연하게 가 닿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현재를 벗어나고픈 욕망, 과거를 바꾸고자 하는 후회,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게 아닐까?

상상의 토대가 되는 이론과 함께 가설을 넘어 가능성을 움켜쥐는 여정에 함께할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언젠가 도래할, 혹은 시간을 넘어 찾아낼 "반가운 고수 동지"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도서제공 출판사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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