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이이지마 나미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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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이란 뭘까. 어떤 사람은 먹기 위해 살고, 또다른 누군가는 살기 위해 먹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까. 물론 맛있는 것을 먹으면 즐겁다. 입에 맞는 음식이나 식재료는 한참씩이나 질리지도 않고 줄기차게 찾아 먹는다. 당연히, 좋아하는 음식이나 맛도 있다. 몇 개라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만큼 귀찮다. 먹는 행위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먹기 위해서는 메뉴를 고민하고, 재료와 과정을 생각해 적절한 품을 들여 차려야 하지 않는가. 만든다기보다 해치우는 느낌으로 해내고 밥상 앞에 앉았을 땐 이미 반쯤 곤죽이 된 상태다.

어디 먹는 사람만 있나. 치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혼자 차려 혼자 먹는 식사라면, 집밥이든 도시락이든, 대개는 둘이 같은 사람이다. 포만감에 속은 불편하고, 몸은 무거운 와중에 냄새는 나니 상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행주며 난리통을 정리하고 나면 '사람은 왜 먹어야만 사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생각만으로도 지레 피곤해지기 십상인 이 먹고 사는 일, 혹은 살기 위해 먹는 일, '먹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매번 지난 날의 귀찮았던 기억은 싹 지워버리고 먹을까, 내지는 먹여볼까, 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사람은 의미를 갖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한번쯤은 즐거웠던 적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맛을 잊지 못해 낯선 식재료에 허둥거렸던 날, 별 것 아닌데도 문득 떠오르는 익숙한 맛, 경쾌한 식감이라든지 맛있다!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얼굴이라든지... 웃고 울었던 날들에.

p.30 촬영 현장에서 정신없이 요리를 완성해나가는 와중에 찡해지는 일도 있었다. 단순히 피와 살이 되는 것, 맛만 좋은 것이 요리는 아니구나, 때로 맛과 냄새를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을 불러오는 것이 요리로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요리란 참 좋은 것이네요.

p.92 즐기면서 만드는 요리는 틀림없이 맛있을 터다. 그런 요리는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요리를 먹고 자랐다는 사실,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졌다는 사실이 자신감으로 이어져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서가 풍부한 식탁을 둘러쌈으로써 요리에도 이야기가 태어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단순히 맛만 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적재적소에 알맞은 모양새의 알맞은 요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저자 이이지마 나미는 광고와 영화 촬영 현장 등에서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다.

스쳐지나간 소품, 혹은 주인공이 차려내고 먹는 음식을 딱 알맞은 모양새로 그려내는 사람. 이 자리에 어떤 음식이 있어야 자연스러울지, 이런 사람이 하는 요리는 어떤 느낌일지, 어떤 곳의 요리는 그 지방의 특색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

해외 촬영의 현지 로케라든지, 세계 곳곳에 이벤트삼아 내는 테마 식당이라든지, 짧은 여행에서 만난 색다른 요리를 더 맛있게, 때로는 편안하게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민하는 그는 맛있다!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금 부러워지기도 했다.

p.156 바쁘게 일하다 보면 식사를 대충 때우기 쉽지요. 그럴 때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위안을 받거나 저거 나도 먹어보고 싶다, 하고 밥을 제대로 먹는 계기가 된다면 그런 것도 하나의 치유일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인은 바쁘다. 나도 바쁘다. 너무너무 바쁘다. 끼니는 커녕 물도 제대로 못 챙길만큼 바빴던 날은 밥이고 뭐고 까딱도 하기 싫어 늘어져있을 때도 있다. 휴식과 식사라고 하면 단연코 휴식이 먼저일 터, 앞서 말했듯이 먹는 데도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먹기보다는 때우는 일상은 어딘가 비었다는 느낌을 준다. 묘하게 허전하달까. 오늘은 뭘 먹었나, 짚어보노라면 메뉴가 아니라 상표만 줄줄이 이어질 때, '제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쩐지 아픈 기분, 든든한 식사 한 끼가 간절할 때다.

눈으로도 맛있는, 바로 그 장면, 그 곳에 있어야 할 요리를 최선을 다해 자리하게 하는 일, 먹고 먹이는 일의 기쁨을 고민하는 저자의 기억을 따라가며 내일의 메뉴를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즐겁게, 기꺼이 만들어보자고 다짐하며. 맛있었다!로 기억할 식사를 기대하며 말이다.

"즐겁게 기꺼이 만든 요리가 맛있죠!"


*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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