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 열 편의 인권영화로 만나는 우리 안의 얼굴들
이다혜.이주현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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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흔히들 사는 일도 바빠 죽겠는데 쓸 데 없는 얘기까지 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이상은 이상으로 두고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만큼 여력이 없다는 뜻이리라. 속된 말로 “먹고 죽을 것도 없는데”의 논리이다. 많은 경우에 “나도 힘든데 남의 일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위와 같은 말이, 혹은 눈치가 오갈 때 가장 쉽게 밀려나는 것은, 그 ‘쓸 데 없는 얘기’와 ‘남의 일’이 너무도 도처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도 현실이고, 너무도 가까이에서 매일같이, 어쩌면 평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외면하는 것,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어쩌면 바로 그 생각부터가 오류일지 모른다는 것은 쉽사리 이야기되지 않는다. 외면하고 싶은 얼굴들을 면전에 들이미는데 유쾌할리가 없다.

문제는 바로 그 외면의 이유이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나의 책임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괴롭다.


생각하지 않으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당장의 두려움을 외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밖으로 떠밀리고 있는 이를 생각하지 않으면 침묵의 죄마저 외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 책은 2013~2023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인권영화의 주제와 내용을 톺아보며 지금 현재, 어딘가, 어쩌면 바로 곁의 문제를 말한다. 불법촬영, 학생 인권, 공연예술노동자(아이돌), 노인 소외, 입시 경쟁, 존엄사, 고독사, 빈곤, 양심적 병역거부, 장애인 인권, 디지털 감시사회 등.

어찌 보면 중구난방일 이야기들, 열 편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권, 즉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우리는 책임이 없습니까? 사람이 사람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사회 밖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까?

p.66 “통제되지 않는 일 앞에서는 미안하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하는 게 가장 빠르다. 미안하지 않으면 논란이 생긴다. 논란이 생기면 이미 시험대 위에 올라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지는 게임이다.”

p.76 “누구나, 아이돌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과도하게 자기를 몰아붙이는 게 당연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갖는 피로감을 공유한다고 생각해요. 궤도에서 이탈한 사람들에게 손을 적절한 때 내밀었나? 하는 죄책감을 다 같이 느낄 수밖에 없어요.”



이 도통 해결된 적도, 될 수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문제들의 근원을 가치의 인정싸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 위협받지 않고 살 권리, 인생의 가치를 실현할 권리,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고 존엄하게 생을 마칠 권리를 갖고 있다, 고 믿는다.

그것은 너무도 쉽게 부정된다. 타자에 의해, 자본에 의해, 많은 경우에는 타자가 점유하는 거대자본에 의해. 대다수가 사람의 사람다움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꼭 그 믿음의 크기만큼 가벼운 것이 사람다움이 아닌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사람에게 붙이는 것이 아니다. 무쓸모와 무의미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 존재를 형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그러나 너무도 쉽게 쓰인다. 우리 현실의 다른 의미는 절망과 폭력이다.

p.156 영화에 나오는 “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라는 질문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울 사람을 향한 애원처럼 들리기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손을 내밀지 않은 사회를 향한 고발처럼 들리기도 한다. 개인도 사회도 이 문제에서 구경꾼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에, 자신에게 여전히 가치가 있음에, 밀려날 수 없는 자리가 있음에 자격이 요구된다. 내가 나임에 인정이 필요한 세상에서 안락은, 무관심은 지금-나-아님을 외면해야만 가능하다. 나로, 너로, 우리로 돌아올 것들을 최선을 다해 외면해야만.

인권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사람의 권리, 사람에게서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박탈될 수 없는 권리가 아닌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어쩌면 존재의 전후까지에도 빼앗겨서는 안 되는 자리가 아닌가?

존재가 맞닥뜨리는 모든 사회적 문제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침해한다면, 그것이 곧 인권 문제가 아닌가?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일이 존엄의 문제가 아닐 수 없지 않은가?

p.87 사회적으로 일정 연령이 되면 현업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은퇴 후 경제력을 잃고 사회적 영향력마저 상실하게 되면 스스로의 능려고가 사회가 판단하는 능력 사이의 괴리의 경험하게 된다. 여전히 일할 능력이 있다고 느끼는 나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불화한다.

p.115 관람석에 앉은 사람에게는 그저 순위로 기억될 뿐인 선수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계속 달릴 자격은 성적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열 편의 영화를 통해 두 저자는 묻는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까? 그려내진 참상을 관람하는 당신은 어디에 위치합니까? 당신은 그들의 우리가 될 수 있습니까? 너무도 잘 아는 이 비극은 영원히 반복되고 재현될 것입니까? 우리 곁에, 영원히, 낮은 곳에 임하시어.

나는 이렇게 답하고자 한다. 낮은 곳에 임하시어 우리를 밀어 내치는 세상에서 여전히 해야 할 일을 찾겠다고. 이것은 모든 나의 일이지 않느냐고.

조세희 선생의 말을 빌어 쓴다.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라. 냉소주의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 간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말아 달라. 당분간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지기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다 연대의 힘, 우리 사랑의 힘, 평등의 힘, 자유의 힘. 이것을 우리가 소유하도록 합시다.

p.28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 나오는 일이다.”


우리, 영화에서 만난 우리 안의 얼굴을 마주하는 우리에게는 총을 부르는 총이 아닌, 꽃을 부르는 꽃을 지켜낼 책임이 있다.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을 외면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

열 편의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하고자 한다. 우리에게는 이 지독한 세상에서 여전히 희망을 찾아낼 의무가, 꿈이 아니게 할 책무가 있다고.

p.41 “혁명을 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지금 당장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지금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일종의 사랑의 혁명성에 대해 생각했다.” 중요한 건 과거와 미래의 사랑이 아니라 현재의 사랑이다. 사랑은 유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p.177 총을 들지 않겠다는 것은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평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결국 병역 거부는 평화로 나아가는 말이 되어야 한다.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을 꽃을 부른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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