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르는 까닭에, 언제나 능력 좋은 심령술사를 찾아 헤맨다. 역사학자 퀸 슬로보디언의 《크랙업 캐피털리즘》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자유지상주의자’가 시장을 억압하는 민주주의를 배제하는 형태인 ‘크랙업 캐피털리즘’ 개념을 설명한다. 또한 크랙업 캐피털리즘이 지배하는 물리적 영토인 ‘구역’의 형성 과정과 이용 방식을 살피고 그들에 대항할 수 있는 미래를 고민하게끔 만든다.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고했던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20년도 지나지 않은 오늘날, 급진적 자유주의라는 또 다른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445)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자들은 불러낸 급진적 자유주의의 유령은 민주주의보다 더 완벽한 정치 체제는 없을 것이라는 한계를 자본의 힘으로 뚫어내어 은유적 의미로서 구멍perforation, 물리적인 위치로서 구역zone, 민주주의의 민족국가의 틈으로서 균열crack-up을 남겼다.
“구역이란 국경을 넘나드는 투자 계급의 요구에 따라 기존 국가를 분절하고 구획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 책에서 ‘크랙업 캐피털리즘’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종류의 탈영토화된 지구적 자본주의의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전위 공간”(11)이다. 이렇게 자유지상주의자들에 의해 구성된 구역은 “자본주의적 권리 행사에 필요한 여러 기능을 수행”(26)하며 민주주의가 부재한 자본주의의 팽창 가능성을 두드러지게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스타트업 기업의 모습에서 스타트업 국가를 호명하고, 메타버스라는 디지털 연결망으로 개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민족성을 대체하며 자유지상주의자는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 안에서 여러 구역을 뚫는다.
홍콩, 싱가포르와 같이 민주주의가 부재한 금융 중심 국가들은 국가 안에 모이는 자본들로 이익을 얻는다. 이러한 모델을 성공적으로 분석한 이들은 홍콩과 싱가포르를 좇아, 시장을 규제한 최소한의 정부도 거절한 채, 자본가들의 비자금을 형성하는 커다란 블랙홀의 금융업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를 만들기에 이른다.
주로 비서구권에 구역을 만들어 놓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유교 공동체주의” 가치를 중심으로 행하는 중앙정부의 통제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근면, 고용주에 대한 충성심, 작업장 내의 협력을 도모하는 강력한 추진체”(107)와 같은 유교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 “유교 자본주의”(107)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예시로 등장한 특성들이 낯익은 까닭은 한국 또한 ‘유교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어느 정도의 ‘구역’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이름으로 2003년 인천(송도, 청라)을 지정하였으며, 이후 부산, 진해, 광양만권, 경기(평택, 시흥), 대구·경북, 동해안권, 충북, 이어 광주, 울산이 선정되었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선정되면 외국 자본 및 기술 투자 유치를 위해 세제 지원 확대, 인프라 지원, 노동법 규제 완화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자신의 국가 내부에도 의도적으로 구역을 건설하는데, “자본을 유치하고 관련 산업의 낙수효과를 누리면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443) 구역 건설의 명목은 “지역 경제 활성화” 정도도 좋다. 2023년 11월 3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안’을 가결 처리했다. 이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적극적으로 해당 법안을 반대하였는데,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주 40시간 노동, 최저임금, 사업자 안전 및 보건 조치 의무’와 같은 규제에 대한 특례조항이 포함된 ‘악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는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노동법의 여러 조항에 대한 특례는 “해당 기회발전특구를 관할하는 시·도지사가 지방의회의 동의를 거쳐 신청하면 규제 소관부처의 검토 및 규제 소관부처가 포함된 지방시대위원회가 특례여부를 심의”(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밝혔으나, ‘자유지상주의 유령의 말’과 다를 바 없다. 결국 특별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으나, 국가가 나서서 ‘자본 유치를 위한 유연한 노동시장’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 아래, 실제 임금 노동자(국민)의 권리를 바닥에 던져버렸다는 사실만은 뚜렷하게 남는다. “눈부신 도시”(45)라는 찬사를 받으며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는 제외”(60)했다고 밝힌 2016년 인간 자유도 지수에서 홍콩이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괴리감과 정부의 답변은 많이도 유사하다.
그러나 망령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한국 정부와 서울시는 다시 강령술을 실시하여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발표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5월 23일 저출생 대책으로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을 지시하였는데, 내국인 인력의 고령화와 부모의 가사 및 돌봄노동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너무 ‘비싸다’는 오세훈 서울 시장은 “최저임금 미만을 지급하여야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의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마치 미국인들이 손재주가 있는 저임금 소녀들을 홍콩 공장에 투입하여 생산의 이점을 누리는 것”(54)이라는 슬로보디언의 말과 같다. 자본은 저임금을 따라 노동을 외주화한다. 게다가 이들이 예시로 드는 ‘홍콩, 싱가포르’가 모두 자유지상주의자들의 구역이라는 사실과, 이러한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를 받는 가사관리사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출생률이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시당하고 있다.
(주로 여성에게 부과되는 돌봄노동에 대한 이중적 잣대도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다. “유교적 효도라는 말로 이를 당연시한 정부는 상당한 돌봄노동을 각 가정으로 떠넘겼다.”(144))
정부의 규제를 풀어주는 일에 일차적으로 실패한 윤석열 정부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노동법 규제를 풀기 위해 시도한다. (싱가포르에서는 주말 동안 아이의 부모가 집에 있다는 이유로 입주가사노동자들은 입주하는 집에서 ‘휴가’라는 명목으로 쫓겨나 길거리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는다. 이때 입주가사노동자는 비시민이자 비가시적으로 비영토화된 존재이다. 공간을 점유할 수 없는 존재는 거리로 추방당한다. 이런 걸, 한국이 추구할 사업모델의 사례라고 말할 수가 있나?) “코로나19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 비좁은 막사에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엄청나게 감염되어 피해를 입기 전까지 자신들이 전염병 확산 속도를 늦출 초기 조치를 완수했다고 생각”(317)한 싱가포르 정부처럼 한국도 하층 계급 노동자들의 생명에 무지하다. 최근 삼성SDI 협력사의 하청업체인 아리셀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23명의 외국인노동자가 사망한 재해가 떠오른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노동자가 아닌 자원이 되고, 노동법을 피할 수 있는 ‘구역’이 된다면 그 구역을 누구에게 확장되겠는가?
정부가 말하는 ‘맞벌이 부부의 부담 분담, 저출생 정책’와 같은 목표는 싱가포르에서 입주가사노동자를 고용한 부부의 ‘휴가’라는 명목과 유사하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와도 같다) 역자 김승우는 해제 마지막에 “경제 논리를 앞세워 등장하고 있는 구역이 함의하고 있는 자유지상주의 정치를 이해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무기력하게 방치하지 않고 분배적 경제정의를 지향하는 운동의 출발점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452)라고 묻는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이 한국의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를 받게 된다면, 그들은 비시민이자, 비가시화되어 영토에서 추방당한 구멍이 된다. 가사관리사들에게 제공한다는 강남의 1평짜리 숙소가 구역이 된다. 그렇게 수많은 구멍이 뚫린 사회는 유연할까? 아니면 내구성이 약해져 단 한 번의 위기에도 그대로 무너져 내리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 이다음 비가시적 존재로서 공간에서 추방당할 구멍은 ‘나’일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도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참고문헌
1.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9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