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티시 - 광신의 언어학
어맨다 몬텔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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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적으로 ‘언어’를 주제로 하는, 그것도 사이비 종교나 비이성적이고 무논리적인 극단적 집단 이념에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언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오웰의 《1984》가 떠오른다. 오웰은 이 소설로 독재자 숭배와 인위적 언어의 연관관계를 암시했다. ‘반대’라는 단어가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반대하는 자들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오웰이 전체주의적 믿음에 반하는 소수집단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어를 지워낸 것과는 반대로, 몬텔의 《컬티시》는 ‘탈집단’ 사회, 즉 자신의 정체성을 집단에 소속시키지 않는 개인화된 사회에서 오히려 극단적인 이념을 내세우는 ‘컬트 집단’이 가능하게 된 이유를 언어에서 찾는다. 검색 한 번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온라인으로 과연결된 시대의 사람들은 도대체 왜, 사람들은 ‘컬트’에 혹하는가?

컬트의 정의

‘컬트’는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진 기만적인 인물이 이끄는 소수의 신봉자 그룹’부터 ‘뭔가에 매우 열성적인 사람들이 모인 집단’”까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러니 컬트는 신도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이비 종교에서부터, 아이돌을 열렬히 사랑하는 팬들이 모인 집단까지를 이르는 모호한 단어가 되었다.

몬텔은 ‘컬트’는 결국 “대화 상황이나 발화자의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이야기하며 좋음과 나쁨 사이의 컬트 스펙트럼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좋은 컬트에 가까운지 나쁜 컬트에 가까운지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컬트’인지 ‘나쁜 컬트’인지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광신의 언어학

그렇다면 이 컬트 집단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언어다. 언어 수행성 이론에 따르면, 언어는 존재하는 세상을 묘사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존재에 영향력을 끼친다. 바로 언어가 우리의 행동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어가 ‘세뇌’의 수단이 되느냐? “언어의 역할은 사람들이 믿고 싶지 않은 것을 믿도록 조종하는 게 아니”며,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아이디어를 믿도록 허락”하는 일이다. 컬트 집단을 믿는 추종자들이 ‘세뇌’당했다는 편리한 이야기는 결국 그들이 왜 컬트 집단에 매혹되었는지, 빠져나오지 못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몬텔은 광신의 언어학, 즉 컬트적 언어의 핵심 요소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우리 vs 저들 이분법’, ‘로드된 언어(집단 내에서 두려움이나 슬픔, 공포, 환희, 존경 등의 감정을 반사적으로 촉발하는 단어)’, ‘사고 차단 클리세’가 그것이다. 컬트 집단은 자신들만 사용하는 언어를 만들어 내집단과 외집단의 경계를 확실히 한다. 그 경계가 지어지면, ‘로드된 언어’가 개인을 공동체 내부의 새로운 사고로 녹여낸다. 그리고 ‘사고 차단 클리셰’로 집단 내 교리에 어긋나는 모든 행동을 무시하도록 한다.

그러나 컬트적 언어 요소들은 일상적 대화 상황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남자들은 원래 그래’나 ‘오늘따라 네가 너무 예민해’와 같은 발화가 익숙하다면, 누군가 당신에게 사고 차단 클리세를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커지는 컬트 집단

이제 컬트 집단은 유토피아를 꿈꾸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외계인의 침략, 운석 충돌을 피하기 위한 공동체보다 더 광의의 의미를 가진다.

다단계 회사들은 페미니즘 임파워링 언어를 자본주의적 프로테스탄트 논리와 연결하여 여성에게 ‘경제적 자유’를 약속하거나, 빈곤은 ‘절대적으로 개인의 잘못’이라는 신자유주의 신화를 성경으로 삼는다. 피트니스 산업은 종교적 언어를 탈취하여 의식적 의미를 운동에 부여한다.

이들은 앞선 다단계 회사나 사이비 종교처럼 강압적이지는 않지만, 강사 자격증을 위한 코스에 높은 가격을 매겨 추종자들을 착취한다는 점은 유사하다. 인스타그램에서 ‘점성술, 건강, 명상, 마음챙김’과 같은 ‘영적 인플루언서’들도 컬트적 언어를 이용하여 추종자들을 모으지만, 터치 한 번이면 사라진다. 그러나 터치 한 번이면 이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떠오른다.

몬텔은 올바르지 않은 컬트 집단에서 벗어날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동시에 여러 ‘컬트’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유사한 것을 믿는 사람 옆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직관을 잊지 않는다면, 건강한 열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한국의 '보이지 않는 컬트 집단', 엔터테인먼트 사업

그렇다면, 2024년의 대한민국의 컬트 집단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에 등장하는 JMS,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등의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에서부터 연예인에게 열광하며 강한 공동체 의식으로 뭉친 팬덤까지, 아주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몬텔이 말한 것처럼 피트니스 산업이 컬트 집단화되는 경향은 아직 낮아 보인다. 그러나 '덕질'이라는 단어가 한때 서브 컬처인 일본 만화 및 애니메이션 산업의 팬들을 부르는 멸칭인 '오타쿠/덕후'에서 유래하였으나, 이미 서브 컬처를 넘어 모든 영역에서 '00 덕질'(하다못해 식물 덕질까지)이라는 단어가 통용되고 있다.

모두가 무언가를 '덕질'하며 열성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얕은 의미의 컬트 집단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할까

개인적으로 한국의 팬덤 문화에 컬트 집단을 교차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구조가 기형화되고 있다는 의견이 터져 나오고 있다. '러브 바밍'은 상대에게 자신이 특별한 무언가라는 의식을 가지게 해주는 언어들을 뜻하는데, 이는 손쉽게 아이돌들의 팬 서비스 문화에 견주어 볼 수 있다.

콘서트장에서 팬덤을 호명하거나, 일대일 대화가 가능한 (그러나 수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팬싸인회 현장은 마치 추종자에게 높은 금액의 워크숍을 제시하는 스타 강사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든다.

한국의 아이돌 팬덤 문화는 컬트적 언어 요소인 '우리 vs 저들 이분법'을 충실히 수행하며, 반사적으로 그들의 감정을 유발하는 특정 단어가 존재하고('로드된 언어'), 아이돌이 벌인 사건사고에는 적절하게 '사고 차단 클리셰'가 작동한다.

팬덤 개개인에게서 나타나는 컬트적 언어 요소들은, 엔터 사업의 '컬트적 구조'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한국 엔터테인먼트는 의도적으로 컬트적 구조를 형성하여 최대의 이득을 얻는 방식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로밖에 설명이 불가하다.

이제 이 구조의 기형성을 '컬트적'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만큼, 구조의 문제점을 더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작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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