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그 자체의 감각 - 의식의 본질에 관한 과학철학적 탐구 Philos 시리즈 26
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박제윤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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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코흐가 쓰고 박제윤 번역가가 옮기고 아르테에서 출간된 《생명 그 자체의 감각》은 의식이 무엇이며 도대체 뇌 어느 부분에서 발생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통합정보이론(ITT)을 들어 설명하는 책입니다.

총 14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의식의 정의에서부터 고대의 심장에서 근대의 뇌로 인간의 중심이 이동해 온 과정, 과학적 접근법을 바탕으로도 철학적 접근의 ‘의식’까지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의식’이라는, 어쩌면 과학자들의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에 도전하는 까닭을 코흐는 “인간성의 나르시시즘과 동물과 식물이 오로지 우리의 즐거움과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뿌리 깊은 믿음을 치료해야 한다.”(325쪽)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의식이 다른 동식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믿음은 ‘인간성’이 아닌‘의식의 존재’에 근거하며, “주체가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반드시 그 주체가 경험한다는 것을 함축”하지만 “그 반대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326쪽)닙니다.

🗨️ “인간 외의 종도 내재적으로 가치 있는 주체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위한 경험적 정당성은 내적 관점을 지닌 모든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에 있다. (...) 그 경험은 유일하게 정말로 중요하다.”(327쪽)

의식이 감각의 경험이라면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가 아닌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라는 사실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정말로 무의식적 호문쿨루스가 의식되지 않는 공간에 자신을 숨긴 채 외부감각을 내재적 가치를 투영하여 인식하고 있을까?

“의식은 영리한 알고리즘이 아니다. 의식의 심장박동은 그 자체로 인과적 힘이며, 계산이 아니다”(290쪽)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을 디지털로 업로드한다는 꿈은 가능한가? 환원 가능한 컴퓨터가 환원 불가능한 의식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가?

인간의 의식을 계산하는 것과 블랙홀을 계산하는 것의 유사성을 언급하며 코흐는 실재와 경험의 괴리와 해리를 강조합니다. 컴퓨터는 단지 언제나 인간의 의식을 가진 척 행동을 되풀이할 수 있지만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 코흐의 주장입니다. 타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과적인 힘의 존재를 계산과 다르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로 내세웁니다.

의식을 주제로 하면, 언제나 철학과 과학 그 사이 어느 부분을 겨냥하게 되는데, 과학적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언제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대의 철학 물음이 등장한다는 지점은 흥미롭습니다. 의식이 발생하는 물리적인 메커니즘과 실재 의식이 다르다는 점이 안드로이드에게 권리를 주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하게 되는 동시에, 비인간 동물(을 넘어선 균류까지)의 감각 경험과 의식의 유무에서 비인간의 권리를 요구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데카르트 이래 서양 중심의 근대 사회에서 신체-정신의 이원론에서 신체는 정신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물리적 실재의 감각 기관에서 발생하는 자극이 일련의 감각-인지-운동 메커니즘을 유발하고 이러한 주의집중으로 발생한 구조화된 내재적 경험이 의식의 본질적 속성이라는 지점이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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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측면으로는, 사실 《생명 그 자체의 감각》 본문에 영어 병기가 남발되어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제가 핵심 독자층에서 벗어난 것을 제외하고도) 40~60대 과학철학서 독자들이라면 어느 정도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는 계층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간’, ‘웰시코기’나 ‘피노 누아’ 같은 원고 주제와 연관 없는 단어의 영어 병기는 불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팟캐스트(podcast)’라는 음차 번역의 영어 병기에서 독자가 저 영어를 보고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무엇일까요…?)

저도 웬만하면 병기나 부연 설명을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도, 너무 원고 주제나 에피소드에 전혀 관련 없는 모든 단어가 병기 처리되어서 나오니까 집중력이 상당히 끊기더라고요. 차라리 편집 때 크기를 줄이거나 연한 색으로 표기했으면 더 나았으려나, 여러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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