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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날 - 존엄사의 최전선에서, 문화인류학자의 기록
애니타 해닉 지음,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7월
평점 :
#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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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날" – 죽음의 선택은 삶의 존엄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언어!
‼️"삶을 다하게 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다."
"내가 죽는 날"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삶의 반대가 아닌 연속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은 죽음을 미화하거나 조력 사망을 정답처럼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의료체계와 사회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고통받는 죽음”과 “선택할 수 없는 죽음”에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을 덮을 즈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일은 결국,
오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되돌아보는 가장 깊은 방식이라는 것을.
"내가 죽는 날"은 삶을 위한 책입니다.
죽음의 이야기를 품었지만, 실은 가장 인간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
그런 책이었습니다.
애니타 해닉(Anita Hannig)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이며, 삶과 죽음을 둘러싼 인간 경험을 깊이 있게 탐색해 온 연구자입니다. 보스턴 칼리지에서 인류학을 가르쳤으며, 주로 의료인류학, 죽음 연구, 윤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 조력 사망에 관한 연구를 위해 수년간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등 조력 사망이 합법화된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환자와 가족, 의사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수집하고 기록했습니다. "내가 죽는 날"은 그녀의 현장 중심적 연구와 인간에 대한 공감, 관찰자의 윤리가 집약된 대표작입니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가지 사전 지식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력 사망(Medical Aid in Dying, MAID) - 말기 환자가 의사에게 치사 약물을 처방받아 스스로 복용함으로써 생을 마감하는 방식으로, 미국 일부 주에서 합법이다. 이는 '안락사(Euthanasia)'와는 다르며, 후자는 제3자가 약물을 투여하는 행위로 미국에서는 대부분 불법이다.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Palliative Care) - 생명을 연장하기보다는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의료 서비스.
✔️미국 존엄사법 - 오리건주에서 1997년 처음 시행된 뒤 여러 주로 확산된 제도. 합법화에는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논쟁이 뒤따랐으며, 그 적용 범위는 아직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와 사회적 인식의 틀 안에서,
이 책은 그 제도의 구체적 현실과 윤리적 고민을 파고듭니다.
애니타 해닉은 죽음을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보고자 합니다.
그녀는 "죽을 권리"라는 주제를 정치적 구호로 소비하지 않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삶의 통제권, 자기결정권, 그리고 인간다움의 조건을 탐색하고자 합니다.
또한 조력 사망을 자살이나 패배의 이미지로만 보려는 시선에서 벗어나,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남은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저자에게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거나 외면해 온 사회에 더 많은 언어, 더 다양한 이야기를 허용하자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지만,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는가는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애니타 해닉의 "내가 죽는 날"은 이 당연하지만 간과된 진실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책입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저자는 관찰자의 위치를 넘어서, 조력 사망을 선택한 환자들과 그 가족, 의료진의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아파하며 이 밀도 높은 기록을 완성했습니다.
📌“조력 사망은 우리가 의학의 잠재력을 이해하는 방식을 재구성한다.”
이 책은 조력 사망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지만, 결코 이분법적인 시선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찬성'이냐 '반대'냐의 입장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맞이할 권리', 그리고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에 대한 인간적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던집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옷, 더 좋은 인생을 꿈꿨지만, 이제 그것들이 무의미해졌다”는 고백은 우리가 죽음을 마주할 때 비로소 알게 되는 진실을 전해줍니다.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스스로의 존엄’을 새롭게 정의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존엄사’라는 말조차도 그 본질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저자의 고민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존엄성을 누가 정의하나요? 죽어가는 사람이 정의해야죠”라는 말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보다 ‘누가’ 결정하는지가 더욱 본질적인 문제임을 알려줍니다.
가장 깊은 감동을 받은 부분은, 환자들이 삶의 끝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지막을 준비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특히 아직도 읽고 싶은 책이 있고, 트럼프의 퇴임이 궁금하고, 야구팀의 승패에 마음을 두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먹먹한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삶을 내려놓으면서도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삶의 마지막을 앞당기는 것은 의지력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문장과 맞물려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죽음이라는 여정은 결국 한 존재가 가장 인간답게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마침내 '내가 죽는 날'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자는 말합니다.
고통을 단지 견디라고 요구하는 대신,
그 고통에 인간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방식을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여기까지 왔다고 해서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선택권이 주어진 게 정말 오랜만이에요.”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조력 사망이 살아온 인생의 마무리를 ‘설계’하는 과정으로 조명된다는 것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남은 시간을 자신답게 마무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책의 중심에는 언제나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주체적으로 마주하기 위해 조력 사망을 ‘선택’하는 과정은 삶의 끝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회복하려는 인간의 필사적인 몸짓처럼 보입니다.
조력 사망은 어떤 이들에게 “오랜만에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 선택은 삶의 의미를 다시 붙들게 하는 마지막 수단이었습니다.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이 제도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도식적 구조로 몰고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해닉은 ‘누가 존엄을 정의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존엄성을 누가 정의할까요? 죽어가는 사람이 정의해야죠.”
이 문장은 조력 사망을 바라보는 시선의 패러다임을 전복시킵니다. 어떤 이에게는 의료 장비에 의존한 생명이 존엄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 없이 떠날 자유가 존엄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또한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는, 조력 사망 제도가 제도적, 법적 테두리 안에서 얼마나 많은 관료적 장벽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인지 낱낱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책 속에는 '호스피스로도 부족하다'고 절망하는 사람, 엄격한 법적 요건에 가로막히는 사람, '자살'이라는 낙인에 시달리는 사람 등 여전히 제도 바깥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삶과 고군분투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조력 사망을 자살이라 부르는 것은 환자와 유족 모두에게 해롭다.”
조력 사망은 ‘자살’이 아닙니다. 그 둘은 용어 이상의 차이를 가집니다. 해닉은 언어의 힘을 강조하며 말합니다. 조력 사망을 ‘자살’이라 부르는 순간, 그 결정은 낙인과 죄책감의 영역으로 밀려납니다. 언어가 인식과 감정을 규정한다면, 우리에게는 죽음을 둘러싼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합니다.
부드럽고 단단한 언어, 편견을 걷어내는 언어, 슬픔을 덜어주는 언어.
하지만 저자는 조력 사망이 ‘좋은 죽음’의 유일한 해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은 특권이 아니며, 삶을 빨리 마치고 싶은 이들을 위한 급행열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완화 의료, 호스피스, 사회적 돌봄 등 다양한 옵션들이 함께 놓인 자리에서 조력 사망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력 사망’이라는 민감하고 낯선 제도를 둘러싼 문화, 제도, 언어, 감정의 스펙트럼을 압도적으로 섬세하게 포착해냅니다. 오리건주를 비롯해 조력 사망이 합법화된 지역의 환자, 가족, 의료진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삶에 동행하며 기록한 이 책은 오히려 인간이 어떻게 ‘죽음을 살아내는가’에 관한 현장보고이자, ‘죽음조차 자기답게 살고 싶은 인간의 존엄’에 관한 찬가입니다.
의외였던 사실은, 조력 사망이 ‘호스피스’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조력 사망이 가능해진 이후, 호스피스와 완화 의료가 더욱 섬세하고 민감하게 환자의 욕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조력 사망을 호스피스의 대안이 아니라 보완책으로 보면…”
제도 하나가 사회 전체의 돌봄 감수성을 높이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왜 이런 논의를 더 많이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내가 죽는 날"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에 관한 책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해야 할지를 다시 묻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저 눈물짓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사유하고 준비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진짜로 사는 삶이 가능하다면,
이 책은 그 대화를 시작하기에 가장 용기 있고 따뜻한 문이 될 것입니다.
📌“좋은 죽음이 현대인의 또 다른 의무로 둔갑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이 책은 ‘좋은 죽음’을 또 하나의 성취 목표로 착각하지 않도록 경고합니다.
또한 죽음을 예찬하지 않으며, 조력 사망을 이상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조용히 소망합니다.
"내가 죽는 날"은 죽음을 향한 사적인 여정을 따라가지만,
결국 그 이야기는 우리 사회 전체의 윤리와 법, 문화와 제도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우리가 그토록 자랑해온 의료 시스템과 돌봄의 체계가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것은 누구를 위한 체계인가?
책을 읽으며 한국 사회에서도 존엄사와 조력 사망에 대한 논의가 보다 열린 언어와 실질적인 고민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죽음을 앞당기자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언어를 더 넓히고, 더 깊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이 마지막까지 선택하고, 계획하고, 사랑하며 떠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결국 조력 사망이라는 제도는 죽음을 앞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삶의 끝을 어떻게 맞이하고,
그것을 어떻게 동행할 수 있을지를 묻는 장치입니다.
"내가 죽는 날"은 한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대우하고, 죽음 앞에서 얼마나 겸허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그리고 그 거울 앞에서 스스로 묻게 됩니다.
⁉️어떻게 죽고 싶은가? 그리고 그 죽음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책을 통해 오늘을 조금 더 단단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삶의 끝을 그려보는 일은,
삶의 본질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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