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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고산자>의 작가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 <은교>는 한 소녀로 인해, 잠자리의 온기를 꿈꾼 정도
가 아니라, 심장과 온 혈관에 천천히 흐르던 노년의 피가 들끓는 청년의 피로 바뀌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노인이라고 하면 왠지 가슴이 아프니까, 남자라고 해야 하나...)
일흔 노인 이적요와 열일곱 소녀 한은교, 그리고 또다른 남자가 등장한다.
이 소설의 모든 사건의 도화선은 이적요 시인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욕망과 열망이다.
은교의 방문이 예고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잠잠하다가 갑자기 불이 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길과 같이 이적요 시인의 마음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해 가는지 이 소설의 전체에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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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가 자네에게 가르쳐주었는지 모르지만, 별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그냥 별일 뿐이네. 사랑하는 자에게 별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배고픈 자에게 별은 쌀로 보일 수도 있지 않겠나."(30쪽)
"늙는 것, 이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참혹한 범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늙은이의 욕망은 더럽고 끔찍한 범죄이므로, 제거해 마땅한 것, 이라고 모든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있었다."(208~209쪽)
"내 몸은 고요했다. 그것은 고요한 욕망이었다. 한없이 빼앗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내 것을 해체해 오로지 주고 싶은 욕망이었다. 아니 욕망이 아니라 사랑, 이라고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비로소, 욕망이 사랑을 언제나 이기는 건 아니라는 확고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310~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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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이가 든다는 것,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욕망 또는 사랑이라는 것.
이러한 것들을 계속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