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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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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설국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눈(雪)의 계절이 돌아왔다.

어제 중부지방으로 '첫눈'이 내렸단다.

노벨상 수상자이기도한 전후 일본문학의 대표주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 유명한 작품의 내용은 주저리 주저리 설명할 필요도 없을것 같다.

일본에 한번도 가 본적이 없지만 언젠가 이 소설의 배경이 된 니가타현의 눈쌓인 온천마을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

언제나 100프로 그렇지만 영화나 소설속에 묘사된 지역을 실제로 찾아가면 영화로 봤던 모습이나 글로서 상상했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은것 같다.

 

뭐 소설의 짧은 감상은 이쯤 해두고 약간 통속적인 비난을 하자면 설국의 내용은 남성들이 가진 남성우월적인 불순하고 음란한 상상을 부추기는 소설의 결정판이라 할만하다.

주인공인 시마무라와 시골여관의 게이샤 고마코의 사랑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요 줄거리다.

시마무라의 나이는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대략 중년을 넘긴 나이로 짐작이 되고 고마코는 갓 스물을 넘긴 나이다.

한마디로 중년의 지긋한 도시 남성이 시골의 어린창녀와 놀아나는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말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은 기차가 끊어지고 집이 매몰될 만큼 외진 벽촌에 살고 있는 고마코에게 먹물깨나 먹음직하고 돈푼깨나 있음직한 도시의 중년남성은 접촉하는것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답답한 삶의 탈출구로 느껴질만 하다.

하지만 시마무라는 어떠한가?

고마코는 그저 휴가철 한동안 데리고 놀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고마코가 자신에게 집착하면 할 수록 큰일(?)나기 전에 어서 이곳을 떠나야지 하는 생각만 드는것이다.

 

내가 얼마전에 알던 인간쓰레기 같은 놈또한 마찬가지 였는데 아내와 아이들은 조기유학이란 명목으로 중국으로 보내놓고 시골마을 건설현장에 와서 술집 작부들이랑 그짓을 해대느라 공사비명목의 남의 돈을 물쓰듯이 쓰는것을 보았다.

내가 옆에서 보기엔 역겨울 정도로 추잡스러웠지만 자기딴에 -그딴 인사가 설국을 읽었을리 만무하지만-자신이 시마무라가 된듯 호색을 부렸을게 아닌가....

아직도 '영웅호색'이란 삼국지 풀뜯어먹는 소리에나 나올법한 말로 경치좋은 한촌에서의 추잡스런 외도가 낭만인냥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말하노니 정신차리시라......

경치좋은 풍경은 사랑하는 사람과 건전하게 즐기시길...

오늘은 감상문이 끝간데 없이 은하계로 날아가는구나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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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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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한번 쯤 읽고 싶어 보관함에 늘 담아두다 지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드뎌 장바구니에 옮겨담고 사서 어제 배송되자 마자 단숨에 읽어치웠다.

96년에 발표된 소설이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으니 당시 판타지소릴 들었다는 말이 우스갯 소리로 들리지 않을 만큼 시대를 앞서나간 소설임에 분명한것 같다.

 이 책은 죽음을 묘사한 대표적인 미술작품 세개의 이미지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는 '구스타브 클림트'의 '유디트'가 바로 그것이다.



 
미술작품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이라고 할수 있는 나조차도 어디선가 본듯한 작품이었다.

덕분에 검색으로 몇가지 지식을 얻었는데 구약에 나오는 유디트의 이미지 보다는 요부 '살로메'를 더욱 닮았다 하여 전시장에 아예 살로메라는 제목으로 걸린적이 있단다.

 뭐 각설하고...소설은 자살을 도와주는 조력자로 나오는 주인공과 C와 K형제 그리고 유미미,따로 이름이 있었으나 유디트라 불리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 여인.......아 또 주인공이 여행중에 만난 홍콩사는 처자...들이 각자의 생채기를 서로에게 부대끼며 자살이라는 고귀한(?)소멸의 길로 향해 간다.

 책의 말미에 근 50여페이지 분량으로 주절주절 늘어놓는 '자살의 윤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해봤을 자살에 대한 심각한 윤리적 철학적 고찰... 폭발의 시점을 알수 없는 시계없는 시한폭탄같은 존재인 인간이 스스로 뇌관의 공이를 쳐서 자폭할 수 있는 능력..또는 유혹은 인간으로서 마지막 남은 고결한 권리가 아닐까?

 
잊어버릴만 하면 신문지상을 떠들석하게 만드는 '자살사이트'의 동반자살 사건같은 극단적인 유혹 뿐만이 아니라  불가항력 하에서의 '안락사' 논란등 자살이란 주제는 이미 종교나 윤리의 문제만으로는 해결할 수없는 영원한 숙제가 되었다. 아니 인간의 존재 시점부터 이미 있어왔던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난 자살에 대해 그동안 논외로 둘 만큼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지만 요즘 사회돌아가는 꼴을 보자면 극단적인 빈곤의 상황에 몰리거나 불치나 불구의 몸이 되어 버린경우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아올리는 실용정부(꺽꺽꺽..ㅠㅠ)의 최하층에서 사회적 모멸과 자기 혐오를 견디며 살아갈 자신이 있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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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가든
이언 매큐언 지음, 손홍기 옮김 / 열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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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적쟎이 충격을 받았다.

실화라는 말에 사건의 전말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영화가 개봉하던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도 엄마의 시신과 함께 생활하던 중학생의 이야기가 세간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IMF이후 많은 가정들이 몰락했고 그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 아이들이었다.

얼마 전엔 여동생을 수십차례 유린한 친오빠와 아버지의 기사가 떴다.

도피중이던 그 아버지란 작자는 어제 잡혔다는 기사가......정말 통탄할 노릇이다.

철없는 오빠는 그렇다 치고 자식들을 보호해야 마땅할 애비라는 작자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겠다.

 

인간의 타락은 어디까지 일까?

가정이 파괴되고 윤리와 도덕의 개념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순위가 뒤로 밀리면서

일어나는 .....우리나라 극빈층에서 실제로 일어나고도 남음직한 이 소설을 읽고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국가에서 최소한의 보호를 해야한다.

복지관련 예산을 늘리고 관련 공무원을 늘려 최소한 짐승같은 처지에 내몰리지는

않게 보살펴야 한다.

 

비록 현실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지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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