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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평점 :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는 단순히 글쓰기에 관한 책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쓰는 언어와 표현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기도 하고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작가님의 조심스러운 시선이 글 군데군데에서 온전히 나타나는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내가 쓰는 언어와 표현을 되짚어보면서 내가 그동안 써왔던 표현 중에 차별을 나타내는 언어가 있었을까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차별받는 소수에게까지 생각이 닿았다. 홍승은 작가님의 책을 읽는 날 동안 단 한 장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한 문단, 한 문단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173-174p.
‘걸레, 된장녀, 맘충, 김여사’와 같은 여성혐오 표현과 ‘중2병, 급식충, 등골브레이커’와 같은 청소년 비하 표현, ‘암 걸리겠네, 장애인이냐’와 같은 질병과 장애 비하 표현, ‘똥꼬충, 젠신병자’와 같은 성소수자 비하 표현은 소수자를 한 덩어리로 뭉쳐서 멸시하는 용도로 기능한다. 언어는 또다시 인식과 문화를 형성하고, 제도적 차별의 기반이 된다. (...) 생각 없이 쓰는 언어가 실재하는 존재를 어떻게 지우는지 알아차린 사람은 쉽게 말을 뱉지 않는다. (...) 내 표현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누구의 얼굴을 지우는지, 그 표현으로 누가 사회적 공간에서 밀려나는지 살펴야 한다. (...) 비문이나 맞춤법은 수정하면 그만이지만, 차별적인 언어는 누군가의 상처를 찌르고 눈물샘을 건드린다.
작가님은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우리의 글쓰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좋을지, 다른 사람의 글에 공감하는 태도가 왜 중요한 일인지, 매혹적인 글이 되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을 이 책에서 알려 주신다.
글쓰기에 대한 많은 내용이 담겨있는 책이지만 그럼에도 작가님이 이 책을 집필하시면서 절대로 놓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당신이 쓰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일과 글 쓰는 사람의 자격을 허무는 일이었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작가여야만 할 수 있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서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하는 작가님의 바람이 담겨있었다.
작가님은 오래전부터 글쓰기 모임을 하고 계시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털어내지 못했던 자신들의 속 이야기들을 쓰면서 응어리를 푼다. 그리고 서로의 글을 읽으면서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며, 그곳에서 사람들은 글쓰기를 통해 치유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글쓰기란 치유에 가까웠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어느 날은 원인을 모르게 마음이 허할 때가 있었다.
“이런 느낌이 드는 때가 뭐 한 두 날이던가”하고 그냥 지나쳐버렸지만, 그럴수록 몸과 마음이 더 쉽게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감정들을 글로 적어내기 시작할 때면 신기하게도 내가 왜 요즘 마음이 공허하고 쉽게 지쳤는지 원인이 불쑥 나타났다. 그러더니 내 안의 긍정 기운이 또 솟구쳐 신이 나서 나만의 해결방안을 내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일기를 안쓴지 오래됐다. 나는 그동안 귀찮다는 이유로 일기를 안 썼는데, 옛날의 글쓰기 경험을 떠올려보니 글을 쓸 때가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오늘 간만에 일기장을 구입했다(ㅋㅋㅋ)
나는 요즘 돈에 휘둘리고, 권력에 휘둘리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휘둘리며 여기저기 너덜너덜해지는 중이다. 내 마음이 여기저기 부딪혀 멍이 드는 이런 사회에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멍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을 찾아내는 방법으로는 언제나 ‘글쓰기’가 될 것이다. 일기를 열심히 써야겠다.
작가님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이게 왜 당연한거지?’라고 물음을 가질 수 있을 때야만 사회의 변화는 시작된다고 한다. ‘개인적’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가장 ‘정치적’인 일이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삶의 서사를 써야만 하는 것이고 사소하지 않은 수많은 개인들의 목소리가 담긴 글을 읽어야한다.
요즘 읽는 책들에서 나는 항상 같은 결론을 마주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공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서사를 쓸 수 있기를 또 그 글을 서로 나눠 읽음으로써 공감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작가님의 울림이 가득한 책이었다!
*어크로스 A.B.C 북클럽 활동으로 지원받아 읽게 된 도서입니다. 올해 제 최애 도서가 될 것 같아요. 소중한 책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걸레, 된장녀, 맘충, 김여사’와 같은 여성혐오 표현과 ‘중2병, 급식충, 등골브레이커’와 같은 청소년 비하 표현, ‘암 걸리겠네, 장애인이냐’와 같은 질병과 장애 비하 표현, ‘똥꼬충, 젠신병자’와 같은 성소수자 비하 표현은 소수자를 한 덩어리로 뭉쳐서 멸시하는 용도로 기능한다. 언어는 또다시 인식과 문화를 형성하고, 제도적 차별의 기반이 된다. (...) 생각 없이 쓰는 언어가 실재하는 존재를 어떻게 지우는지 알아차린 사람은 쉽게 말을 뱉지 않는다. (...) 내 표현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누구의 얼굴을 지우는지, 그 표현으로 누가 사회적 공간에서 밀려나는지 살펴야 한다. (...) 비문이나 맞춤법은 수정하면 그만이지만, 차별적인 언어는 누군가의 상처를 찌르고 눈물샘을 건드린다. - P173
13p. 페미니즘은 사소하다고 여겼던 문제가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오히려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나누는 기준을 의심하며, 그 기준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 자신이 경험한 일이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말할 용기를 가질 수 있다. (...) 글을 통해 구체적인 개인의 서사가 말해질 때, 빈곤, 성별, 장애, 인종에 대한 단순한 인식과 차별을 깰 수 있다. - P13
16p. 내 세계를 타인에게 보이는 일, 타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 타인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고개 돌리지 않는 일. 나에게 읽고 쓰는 과정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었다. 아직 나에게도 깨지 못한 편견이 많고, 사회에도 깨지지 않은 침묵이 많다. 강요된 평화가 아닌 정직한 불화를 위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다. - P16
77p. 어렵게 뱉어진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 글이 얼마나 오래 목구멍에 걸려 있었을지 가늠하고, 글을 뱉은 사람이 느낄 자유로움을 상상하며 그가 들려줄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 쓰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가 노트북이나 노트, 펜이라면 쓰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마음은 용기인 줄 모르는 용기가 아닐까. 내 숨을 막는 말, 한 번쯤 꼭 꺼내야만 하는 말, 누구보다 내가 먼저 이해하고 싶어 어렵게 꺼낸 말. 쓰는 만큼 가벼워지는 각자의 순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도 다시 용기를 내본다. - P77
126p. 버틀러의 말처럼,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 슬픔을 겪으면서 내가 되어간다. 타자에게 상처받고 영향받으면서, 혹은 흠집 주고 영향을 미치면서 살아간다. 타자와의 접촉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으며, 어떻게 이 세계를 책임지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 P116
225p. 나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라고 선언하고 끝난다면 그때의 솔직함은 아집에 머무를 수 있다. (...) 아무리 솔직한 글이라고 해도 과연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애인을 보면 불쌍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 ‘나는 성소수자를 반대하지 않지만, 내 지인 중에는 없길 바란다’, ‘차별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식의 태도는 솔직함이라기보다 지금의 인식에서 나아가지 않고 손 놓겠다는 포기에 가깝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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