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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내가 주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김삼환 지음, 강석환 사진 / 마음서재 / 2021년 4월
평점 :

<사랑은 내가 주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저자 : 김삼환 에세이
출판사 : 마음서재 / 쌤앤파커스
“어느 날 아내가 떠났다. 내게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긴 여행을 떠났다. 아내를 향한 그리움이 다발 다발로 묶여 내 몸을 휘감았다. 벽이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벽의 말을 받아 적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은퇴를 앞두고 30년 동안 함께해 온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 아내가 어디가 아팠거나 한 게 아니라, 그냥, 즐겁게 여행길에 오른 도중에 예고 없이 떠났다. 은퇴하면 같이 춤도 배우고, 여행도 다니고 해외로 봉사활동을 가자고 약속도 한 아내였는데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떠났다. 저자는 은퇴 후에 같이 봉사활동을 가기로 한 약속을 혼자서 지키러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난다.
사막도시 누쿠스에서 한국을 궁금해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어느 날은 형형색색 스카프를 파는 시장에, 어느 날은 뜨거운 사막을 여행하며, 또 어느 날은 강변을 따라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평소에 봉사활동을 좋아했던 아내가 여기 함께 왔다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에까지 닿는다. 이 책, <사랑은 내가 주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는 저자가 먼 타지로 떠나면서 아내와의 기억을 어떻게 추억하고,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과 슬픔을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동안 세월을 함께해 온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일까. 저자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가득 쓰여진 이 책을 읽으며 그 슬픔을 가늠할 뿐이다.
육신의 무게는 가볍게, 정신의 무게는 무겁게 다스려야 좋은 사람이 될 텐데 아직 갈 길이 멀다. 내가 좋은 사람인지 스스로 질문했을 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삶은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가. - P40
안과 밖이 조화를 이루고 지식과 행동이 균형을 이루며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는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그게 바로 맵시다. 세상은 넓고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더라도 자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항상 자기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 P42
50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살아온 이근후 선생은 우리에게 ‘행복’과 ‘불행’이라는 개념, 실체가 모호한 관념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인간이 살면서 왜 슬프고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없겠느냐면서 하루하루 순간순간 즐거운 마음으로 괴로운 마음을 덮어버리고 살아가면 된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이고 인생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는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 P81
내 몸을 적시는 그리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만 그때는 재회를 기다리는 희망이 있었고, 지금은 그 희망마저 사라지고 없다. (...) 가슴에 모아놓은 그리움의 입자들이 우루루 쏟아지는 소리를 당신은 듣고 있는가? - P102
더구나 30여 년, 내 삶의 동지이자 동반자였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북극성 여행을 떠나버린 후에는 남은 생에 대한 어떤 의욕이나 욕심도 발동하지 않는다. 해가 바뀔 때마다 나이를 한 살 더 셈하게 되고 눈에 보이진 않지만 신체의 어느 한 구석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미세하게 느낄 뿐이다. 누구든 멀쩡히 살다가 언제 갑자기 북극성으로 가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된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쌓아가면 충분하다. 거창한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것이 새해 아침에 갖는 소박한 소회다. - P112
길을 걷다가 한 카페에 들어갔다. 노래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당신은 사라졌다. 하루의 피로를 단번에 씻어주던 당신의 농담 한마디를 기대했는데 당신은 어느새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 P160
어둠이 말없이 노을을 꿀꺽 삼키듯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노을은 노을의 몫이 있고 나는 나의 몫이 있을 뿐이다. 인생이나 노을이나 존재의 순간은 잠깐이다.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애를 쓰지만, 욕망의 크기를 줄이지 않으면 사실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노을은 말해준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주어진 몫만큼 보여주다 떠날 뿐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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