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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이윤 리 지음, 정혜윤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9월
평점 :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이윤리#다산북스#2026퓰리처상수상작
※ 본 도서는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본 서평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도서명 :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Things in nature merely grow)
2. 저자 : 이윤 리(Yiyun Li)
-1972년 베이징 출생. 베이징대학교 졸업 후 1996년 아이오와 대학으로 면역학 공부하러 유학을 왔다. 아이오와 대학 작가 워크숍에서 소설 창작의 재능을 발견했다. 2000년 면역학 석사 학위, 2005년 동 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 석사 학위 받았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문예창작부 학장으로 재직, 작가 양성 및 교육하고 있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정혜윤 옮김
3. 출판사 : 다산북스
4.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멈추게 했던 생각들
- 전반적인 느낌은 무거웠다. 저자의 첫째 아이 빈센트, 둘째아이 제임스는 모두 자살했다.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저자의 아이들은 또래보다 월등히 문학적, 철학적, 예술적 기질이 풍부한 것 같았다. 그런 섬세함이 어쩌면 현실을 살아가기에는 버거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의 짧은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붙잡았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 없어도 엄마로서의 저자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기억을 한 번쯤 떠올리며, 후회가 아닌 그저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로서 받아들이며 살아야했다. 아이들이 떠났다고 자신에게 처한 삶을 버리고 따라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의 역설이었다.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외로운 삶처럼 살아온 것 같아"- 개구장애의 엘도라도
노래의 한 구절이 계속 떠올랐다.
첫째아이의 자살도 받아들이기 힘든 아픔이었을 텐데 그로부터 6년 4개월 19일 후(p.25) 둘째도 같은 방법을 택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특히 제임스(둘째)는 죽기 몇 주전에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페이지에 이런 말이 있다. (p.82)
"진정으로 중요한 철학적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며, 그것은 자살이다.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제임스는 자살에 대하여 형을 떠나 보낸 것과 자신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는 구절이었다. 형의 삶과 자기의 삶이 어떤 연결고리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는지, 어떤 것인지, 이 책에서는 두 아들의 자살원인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엄마로서 이 말할 수 없는 큰 슬픔과 심연에 처한 자신의 비통함을 어떻게 바라보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지를 기술한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연현상이나 풀, 꽃, 동물, 식물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큰 생태계 차원에서 항상성을 유지하며 묵묵히 돌아간다. 멈추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한발짝씩,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또 다른 곳에 다다를 때가 있다. 그런 경우가 한 번, 두 번 반복되면서 예전 것을 잊혀지고 하나씩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저자의 마음의 상태나 침울한 정도, 그리고 삶의 의욕면에서 이 모든 것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쉽지만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어찌보면 우리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저자의 서술내용과 기법을 볼 때 <<스토너>>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스토너에서도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스토너가 결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상당히 불행하며 어쩔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현실을 강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1년만에 알게 된 현실을 번복할 수도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특별한 이슈 없이 무미건조한 어투로 진행하는 스토너를 보며, 왜 극적 반전조차 작가가 허락하지 않았나 처음에는 실망도 했다. 하지만, 스토너를 다 읽고 책을 덮자, '아!'하며 깨달았다.그것은 우리들의 인생도 스토너처럼 삶의 소소한 일상이 모이고 얽혀서 된 것이니, 영화 속에서와 같은 해피엔딩을 꿈꾸는 것은 허황된 욕심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사람의 보통의 일상이 우리 삶이구나, 그것을 스토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도 비슷했다.
p.45 인간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는다.-카뮈
의 명문장처럼, 일반론에서 시작한 인간의 삶은 늘 긍정적이며 밝으며, 행복하리라 꿈꾼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행복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 앞에 그리고 행복하지 않더라는 부수적 진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손으로 가릴 수도 없는 것이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여백을 찾아가는 삶도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 이윤 리가 처한 상황은 자기 자신을 자책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큰 아이의 자살이 둘째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짓기도 무리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이었다. 그런 사실 앞에 내가 저자의 입장이라면 난, 어떤 선택을 했을까.
2000년대 초반에 상당히 유쾌한 행복전도사 최윤희 씨가 떠오르며, 그분의 갑작스러운 자살보도가 함께 겹쳤다. 행복하게 보냈지만, 육체의 고통이 더는 삶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판단으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는 보도는 상당히 충격이었다. 더욱더 충격이었던 것은 이 분의 남편도 함께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고, 사랑하는 이가 죽음을 결심하자 본인도 함께 그 여정에 동참했다는 보도였다.
이윤 리의 태도와는 정 반대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자살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다가왔다. 그래도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이윤 리의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반면에 사랑하는 이가 죽음을 결심했고, 그 사랑하는 이의 의사를 존중해서 본인도 함께 여정에 동참했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었고, 누구의 고통이 더 클지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책<<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본다면, (p.242)
내가 내 삶이라 부르는 이 심연에서 사실은 그 논리와 의미와 무게와 더불어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것이 썩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그래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o Sisu 민의 결론 ->현재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는 것, 우리가 책을 읽고, 문학을 배우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최소한의 선인 것이다.
5. 나만의 평점 : ☆☆☆☆☆
-슬프지만, 삶의 밑둥이 다 도려내지는 상처에도 나는 살아가야한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