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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반쪽
브릿 베넷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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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자들의 연대기

-기묘한 마을의 핏줄인 쌍둥이 자매, 다시 그들의 딸들-


이 소설의 시작은 사라진 쌍둥이, 즉 데지레 빈스와 스텔라 빈스의 이야기에서부터지만, 이 둘만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데지레의 딸인 주드와 스텔라의 딸인 케네디 역시 비중 있게 등장한다.


두 자매와 그들의 두 딸, 도합 네 여자. 이들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아예 다른 열매를 맺는다. 고향을 떠난 데지레와 스텔라가 하나는 아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고 다른 하나는 백인으로 패싱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그들의 딸들도 다른 삶을 산다.


보다 밝은 피부색의 아이를 낳는 것을 경쟁하는 폐쇄적 사회, 맬러드 타운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태어난 데지레와 스텔라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억압에 대응한다. 데지레는 보란 듯이 어두운 피부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스텔라는 백인인 척 행세하여 백인과 결혼함으로써 그들의 사회로 편입하는 것이다. 둘 다 녹록한 삶은 아니다. 데지레가 아이만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스텔라가 거짓말을 하며 사는 것도 어떤 관점에서는 실패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삶의 어느 대목에서 겪는 실패가 그 삶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아니며, 데지레와 스텔라는 자기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계속해서 나아간다.


주드와 케네디에 대해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쓰지 않겠지만 이 사촌 자매의 기질이 보이는 대조가 재미있다. 만약 이들이 어려서부터 서로를 알고 왕래하면서 지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하여간 이들 역시 자신들의 어머니가 겪었던 방황과 탐색, 자아 확립 및 성장이라는 삶의 지난한 과정을 겪는다.


“이 대단하고 오래된 세상, 우리는 이곳을 단 한 번만 헤쳐 나갈 수 있을 뿐이지. 

세상에서 무엇보다 슬픈 일이 있다면 바로 그거야.”

『사라진 반쪽』 163쪽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기게 되는 문제들이 몇 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인종 차별 문제. 백인의 유색인 차별이 이루어지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단지 피부색, 데지레와 스텔라가 증명한바 뭐가 진짜고 가짜라고 말할 수도 없는 피부색으로 사람을 규정하고 삶을 재단하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두 번째는 자기 정체성 문제. 쌍둥이와 떨어져 자기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데지레와 스텔라, 어려서부터 검은 피부 때문에 많은 시선을 받아 온 주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케네디, 그리고 그들과 서로 사랑하고 관계 맺는 여타 등장인물들까지도 이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세 번째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 문제. 여러 여성이 등장하는 만큼 다양한 고민이 다루어진다. 데지레, 스텔라, 주드, 케네디 모두 여성이기에 부딪치는 문제가 있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네 번째는 사랑과 연대의 문제. 데지레와 스텔라는 헤어진 뒤로 거의 지구 반대쪽에 사는 사이처럼 동떨어져 살았으나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 주드와 케네디는 피차 살면서 마주칠 일 없는 유형의 사람이었음에도 서로에게 질투와, 묘한 애착을 갖는다. 일상을 시시콜콜 공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르더라도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사이라는 것에 작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여름밤에 진땀을 빼가며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 1950년대부터 60, 70, 80년대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서사 내내 숨죽인 채 책장만 바삐 넘겼다. HBO에서 영상화되기로 확정되었다는데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밀도 있는 여성 서사를 읽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자의 주관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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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경험 - 메타버스에서 인공지능과 공감하다
이상원 지음 / 넥서스BIZ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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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타버스라는 용어 자체는 meta와 universe의 합성어인데, 그 의미가 뭐냐는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은 어째 아리송하다. ‘어, 온라인 가상세계?’ 정도일까?


이 책에서도 ‘메타버스란 이것이다’ 하고 확정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아직 합의된 정의를 갖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명쾌하게 한 줄로 제시될 수 없고, 현재의 기술 중 어떤 것이 메타버스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 추구의 대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설명될 수 있을 뿐이다.


아직은 막연하고,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니 다르게 이해하며, 그것을 표방하고 나온 상품들도 뭔가 시원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제 시작 단계인 그 단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첨단 기술이 메타버스로 향하게 만든 맥락과 주변 개념부터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바로 그 부분, 맥락과 주변 개념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어느 하나에 치중하지 않고 광범위하며, 짤막한 꼭지로 나뉘어 읽기에 부담이 없다. 디지털 환경의 인터페이스 디자인, 크라우드 펀딩, 여러 세대의 아날로그 취향, 리얼리티 쇼,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및 NFT 등등. 각각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과 SF 소설을 비롯한 대중적인 미디어 작품 들을 적절하게 제시하며, 그것들을 기술의 관점으로 들여다보고 분석하여 이해가 쉽다.​


물론 이과적 시각에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뼛속까지 문과인 내게는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기준으로 새삼스럽게 들여다보는 과정이 친근하고 재미있었다. 이 책의 시작은 저자가 연구 및 사례, 일상생활에서의 경험 등을 자주 언급했었던 강의 자료를 업데이트하려던 데서부터였다고 하는데(259쪽) 그래서인지 교양 강의를 수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자는 메타버스라는 개념 자체가 단순히 기술 발전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종합적인 생활상에 일어날 어떤 도약이라고 전망한다. 정말로 인류의 시대를 구분 지을 정도의 혁신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관점 자체는 흥미로웠다. ‘메타버스 그거 나 어릴 때부터 했던 온라인 rpg 게임 월드랑 뭐가 다르냐’는 생각이 있었는데, 과학자의 미래 확신에 설득되어 ‘그게 오긴 오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묘한 경험도 했다.


2.

최첨단 기술이 추구하는 결과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도래할 근미래 세계, 혹은 그런 세계를 대비해 ‘남들보다 앞서’ 해야 할 일. 그런 것들은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허황된 망상이 되어버리기 쉽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현혹해 붕 뜨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문외한이지만 적어도 그런 것이 과학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런 점에서 『메타 경험』은 과학적인 책이다. 기술이 어떻게 해서 현재에 다다랐고 현재 어디까지 와 있는지, 현실 생활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진단한다. 현실을 다각도로 살펴봄으로써 발밑을 단단히 다져 도약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심도 있는 내용을 알고 싶어지는 입문서, 첨단 동향을 빠르게 파악하는 트렌드 읽기 도서로서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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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가 된다 위대한 도시들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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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우리는 도시가 된다』는 어떤 이야기인가 

- 메가시티 뉴욕의 생사를 건 활극 


이 작품은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자, 뉴욕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작중 핵심 개념인 도시 화신(化神, Avatar)에 대해 알아야 한다. 원래 화신이란 인간의 몸을 입고 지상에 나타난 신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도시가 된다』에서는 신이 아니라 도시가 인간을 제 화신으로 삼는다. 무슨 계시나 특별한 표시가 나는 것은 아니고, 도시가 ‘생명을 얻어 태어나는’ 순간 화신은 화신으로 선택된다.​


뉴욕보다 먼저 태어난 선배 도시로는 홍콩, 런던, 상파울루 등이 있다. 상파울루와 홍콩의 화신은 작중에 등장하고, 런던의 경우 특이한 역사가 있었음이 언급된다. 그리고 도시로 태어나는 데 실패하여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 사례도 있는데,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나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 멸망한 폼페이 같은 곳들이다. 나는 촘촘하게 짜인 세계관 설정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다.​


하여간 생명을 얻은 도시와 그 도시의 화신은 운명을 함께하게 된다. 따라서 화신이 잘못되면 도시도 잘못되며, 갓 태어난 도시의 화신을 공격하는 것은 곧 도시를 파괴하려는 행위와 같다. 즉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시가 된다』에서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난다!


갓 태어난 뉴욕의 화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와 맞서 싸우게 되고, 온 힘을 다해 그 싸움을 이겨내지만, 기운을 다 써버리고 그만 잠에 빠진다. 그를 찾아내 깨우고 힘을 줄 수 있는 것은 뉴욕에 속한 다섯 자치구의 화신들. 그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협에 맞서면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서로를 찾아내며, 뉴욕의 화신을 찾아 깨우고자 한다.



​2. 혐오와 배제 그리고 공생이라는 키워드 

- 도시를 향한 신랄한 질문 :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사람들이 뉴욕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래의 빌딩숲과 노란 택시, 불야성을 이룬 마천루, 그리고 센트럴파크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소 같은 것들일 테다. 미국의 수도보다도 더 ‘미국적’으로 유명한 이 거대 도시는 ‘온갖 좋은 것들을 다 가진, 오만하고 도도한 세상의 중심, 1세계의 심장’ 정도로 요약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뉴욕의 정체성 그 자체처럼 느껴질 만큼 화려한 맨해튼은, 물론 뉴욕이 맞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맨해튼은 뉴욕 자체는 아니다.


뉴욕은 맨해튼과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 스태튼아일랜드라는 다섯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맨해튼은 뉴욕의 일부이되 전체는 아니고, 이는 다른 자치구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뉴욕은 다섯 자치구의 총합이며,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뉴욕의 구성원이다. 서로 아주 많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묶인 여러 땅덩어리에 와글와글 모여 이루는 삶의 에너지, 그것이 바로 도시인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뉴요커 제미신은 뉴욕의 화신들에게 다채로운 속성을 부여해 개성 있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맨해튼의 화신 매니를 제외하고 모두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지게끔 했다. 그들은 여성이고 유색인종이며, 홈리스, 이민자, 성소수자, 노인이다. 한 마디로 사회의 주류인 ‘1세계 백인 남성’의 여집합, 나머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배제의 경험을 뼛속 깊이 가지고 있는 이들이 실은 도시 그 자체라는 역설. 도시를 생동하게끔 만드는 원동력은 최상층의 권력 주류에게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아래쪽, 각자의 삶을 때로 버거워하며 영위해 나가는 비주류에게서 나온다는 주장. 제미신은 화신들이 낯선 적과 맞닥뜨렸을 때 누구보다 ‘자기답게’ 맞서 싸우는 모습을 통해 그러한 메시지를 전한다.​


뉴욕(들)이 여러 차례의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적대자를 물리치는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기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이러하다. 진정한 자신을 알고, 타인과 다름을 인정하며,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함 또한 인정하여 대의에 함께할 것. 서로를 받아들여 온전히 하나가 될 것. 그렇게 함으로써 뉴욕은 비로소 뉴욕이 되고, 이계에서 온 침략자를 물리친다. (이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반전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예고되었던 복선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생활감 넘치면서도 가슴 벅차는 이야기를 통해, 제미신은 ‘진정으로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동산 소유주 말고, 숨쉬듯 타인을 차별하는 비겁자들 말고, 역차별을 부르짖으며 소동을 피우는 무뢰배들 말고, 하여간 그런 족속들 말고 진짜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그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다. 도시는 나의 것이고, 모두의 것이고, 도시에 속하기 원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3.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화려한 서막

- 다음 권 빨리 주세요


『우리는 도시가 된다』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지만, 아주 닫힌 이야기는 아니다. 작중 상파울루는 뉴욕(들)에게 어떤 요청을 함으로써 뒷이야기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황금가지 출판사에서도 『우리가 만드는 세계』라는 후속작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안내한다.


이 책은 시리즈의 첫권답게 스케일 큰 세계관과 개성 있는 여러 캐릭터들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일방적으로 읊는 게 아니라 사건과 캐릭터를 엮어 독자가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한참 읽어가면서 세계관과 캐릭터에 익숙해진 뒤, 한껏 몰입해서 신난 시점에 남은 페이지가 얼마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뉴욕의 화신들이 가진 유쾌한 전투능력과 그보다 더 유쾌한 말빨(!)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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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백래시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Philos Feminism 1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 손희정 해제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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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전 미국 사회의 전 분야에 나타난 안티페미니즘(반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분량도 방대하고, 읽을수록 바로 지금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싶어서 분노하느라 읽기에 품이 들지만 꼭 한번 읽어 볼만한 책이에요. (단, 이북만 그런지는 몰라도 오탈자가 심각하게 많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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