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에 연재됐던 기사를 정리해서 모아 놓은 책이다. 챕터 사이에 들어가 있는 짧은 글들을 제외하면 연재 내용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과학수사의 성공적인 사례를 다루다보면 아무래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만한 것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런 것들은 방송(특히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이나 신문 연재, 혹은 관련 저서에서 두루두루 다뤄지게 되는 까닭에, 새롭게 다가오는 내용은 별로 없었다. 그렇더라도 연재될 당시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한 자리에 모아 다시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짧고 간략한 문장이 사건을 긴장감 있게 묘사하고 있어서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과학수사에 대한 맹신 없이 저널리스트로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으로 보였다.
+) 책 뒤에 수록해 놓은 참고문헌 목록은 고마운 길잡이가 됐다. 이어지는 단편적인 감상들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올 칼라로 다소 큰 판형으로 만든 보람이 있게 생생한 사진 자료가 많이 수록돼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장점이 그것뿐인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책은 법의학에 대한 개론서로서 이보다 더 훌륭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자세하고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놓았다. 전체적인 내용이 다소 부검 쪽으로 치중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피해자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해당했으며 그것으로부터 범인을 어떻게 식별하는가가 수사의 핵심적인 부분임을 고려한다면 내용적 불균형이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다.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이 너무 잔인하니 심약한 사람들은 주의하라는 평을 볼 수 있는데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다. 실려 있는 사진들이 대부분 연출된 것이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사건의 현장 사진이기 때문이다. 거칠고 조악해 보이는 현장 사진이 주는 (재현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생생한 현장감과 현실감이 주는 심리적인 충격이 분명 있기는 있다.
절판된 탓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후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구입했다.
브라이언 이니스는 이 책을 2000년에 발간했고, 앞서 말한 ‘살인의 현장’을 2004년에 발간했다.
두 권의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서 -물론 세부적인 구성이 다르고 사례들이 다르기는 하다- 일견 살인의 현장이 이 책의 개정증보판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자료도 충실하게 수집했고 또 그것을 저자가 잘 소화해 이해하기 쉽게 전해주고 있다는 장점은 ‘살인의 현장’과 공유한다.
과학수사가 물리적인 증거를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분석하는 것이었다면 프로파일링은 정황(범인이 남긴 흔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심리적인 소견들 -범인의 나이, 성별, 그가 처해 있는 상황, 정신병질의 유무 등등)을 심리학, 정신병리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FBI의 행동과학부에서 시작된 프로파일링부터 해서 정황 증거를 분석하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현장에 남겨진 종이 등에 남겨진 글씨체를 분석하거나 포식 동물의 사냥 행동 방식을 범인의 행동 방식에 적용한 매핑(mapping)법을 통해 범인이 거주하고 있거나 연고지로 두고 있는 지역을 추정하는 등 수사를 지원하기 위해 사용되는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인질과 협상 관련 부분은 다른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내용이라 더 흥미진진했다. 이 책 역시 절판됐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후에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싸게 구입했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로이 해이즐우드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가 누구인지 대체 누가 알겠는가.) 간결한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연분홍 표지’ 탓에 별 다른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굉장한 속도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연쇄강간(살인)범을 다루고 있던 탓에 내용이 무척이나 강렬했고 또 그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읽히기도 했다. 게다가 어떤 부분에 이르러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자극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해서 마음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 탓에 더욱 더 속도를 내 읽었을지도 몰랐다. - ‘길티 플레져’ : 다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은 이랬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사건을 묘사한 저자에 대한 불신도 어느 정도 섞여 있었을 것이었다.
이후로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나서야 나는 로이 해이즐우드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또 그의 책이 왜 연쇄강간(살인)범만을 다루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단지 책을 많이 팔아먹기 위해 유독 자극적인 연쇄강간(살인)범만을 다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FBI 행동과학부 초창기에 활동하던 프로파일러로 여성 범죄 전문가였다. 그의 전공분야가 바로 연쇄강간(살인)범이었던 것이다.
다소 자극적인 묘사 때문에 가볍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용(프로파일링)이 부실할 것이라고 의심할 일은 아니다. 사례별로 범인의 심리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게 잘 돼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본 후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구매했다.
이쪽 방면의 책을 조금 읽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로버트 레스러(봅 레슬러, 롭 레슬러)다.
레슬러는 FBI 행동과학부 초창기 세대로 연쇄 살인serial killer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프로파일링의 기틀을 잡은 사람이다. 프로파일링이 요청된 상황과 초기 프로파일링이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됐는지, (연쇄)살인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었고, 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었는지를 자세하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학자적인 태도로 거리를 갖고 대상을 바라보며 분석하는 태도가 돋보였다.
마인드헌터라는 제목으로도 나왔던 이 책 역시 절판된 지 오래다. 나는 마인드헌터보다 먼저, ‘마음의 사냥꾼’이라는 촌스러운 제목을 달고 나왔던 책을, 도서관에서 구해서 읽었다. 존 더글러스는 로버트 레슬러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그는 FBI 행동과학부에서 처음으로 프로파일링을 전담한 수사관으로 로버트 레슬러와 함께 연쇄 살인범들을 인터뷰하며 프로파일링의 기틀을 잡는 데 기여했다. 양들의 침묵에 스털링의 상사로 나왔던 잭 크로포드의 모델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어떤 저자들은 잭 크로포드의 모델로 로버트 레슬러를 꼽기도 한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를 읽고 이 책을 연이어서 읽은 탓인지 두 사람의 성향이 매우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대필한 작가들의 성향 탓일 수도 있다.) 로버트 레슬러가 학자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존 더글러스는 수완 좋고 능글능글한 수사관에 가깝다고나 할까. 책도 재미있게 잘 읽힌다. ‘프로파일’이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지기 전에 번역된 탓인지 ‘프로필링’이라고 번역하고 있다는 것이 소소하게 거슬릴 뿐.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브라이언 이니스의 ‘프로파일링’에서 ‘매핑’ 기법에 관해 간략하게 소개한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결과적으로 브라이언 이니스가 소개한 매핑 기법과는 별 관련이 없었다.
이 책이 매핑과 관련된 점이 있다면 그저 연쇄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른 지역을 지도에 점점이 표시한 후 간략한 내용을 적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나마도 장점으로 보기 어려운데 가독성을 떨어뜨리는데다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책에서 읽지 못했던 미국 이외 지역의 연쇄살인범들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은 두드러진 장점으로 보인다.
이 책은 앞에 읽었던 책들보다도 몇 달은 더 전에 읽었던 책이다.
바로 앞에 이야기 한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때문에 떠올랐는데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나열식 구성 때문이다.
간략하기는 하지만 이 책 한 권 읽어두면 다른 책에서 언급하는 연쇄살인범의 대부분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쪽으로 흥미 있다면 읽어둘 만 하다. 재미도 있다.
미국 드라마 CSI 라스베이거스 편의 팬이라면 법의곤충학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길 그리섬 반장의 전문 분야가 바로 법의곤충학이기 때문이다.
마크 베네케가 바로 길 그리섬 같은 법의곤충학자이다. 그는 사건 현장에서 법의곤충학이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다른 법의학 관련 서적보다도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곤충은 필연적으로 부패한 사체와 관련되고, 그렇기에 책 곳곳에 부패한 사체의 사진들이 실려 있다. 하지만 컬러본도 아니고 사진 크기도 작아서 때때로 ‘이 정도의 사진은 참고로 삼기에 너무 작고 화질도 나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지엽적인 불만이다. 법의곤충학을 소개한다는 재미없는 측면(법의학은 다양한 책들이 소개하고 있는 것과 달리 무척이나 전문적인 분야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과 모호하거나 오해할 수 있는 사건 현장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흥미로운 측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유전자에 관한 부분은 조금 어렵게 읽히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에 비한다면 무척 자세히 잘 설명해준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 앞에 적어놓은 책들은 모조리 미국의 법의학에 관한 것이다. 유럽에 대한 것은 거의 없었는데, 이 책에서 처음으로 유럽의 법의학에 관해 접하게 됐다. 두 지역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행간에서 읽히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이쪽 책을 좀 찾아 읽었다면 북미 쪽의 연쇄 살인범들에 대해서는 익숙할 것이다. 마크 베네케는 유럽의 연쇄 살인범들에 대해서 들려준다. 챕터가 많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제법 세밀하고 흥미롭다. 읽기 좋게 사건을 재구성해 놓았다. 이 정도면 믿고 보는 저자로 껴줘도 좋겠다.
사담으로. 이 책에서 다루어진 부분 중 ‘자살인지, 살인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된 케이스-자기보다 큰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의 비리를 알게 돼 그것을 빌미로 협박하려다가 도리어 당한 것으로 보이는 케이스-를 소개해주는 부분을 읽고 기분이 좀 이상해졌었다. 때마침 EDIF에서 ‘누가 에런 슈워츠를 죽였는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보면 물론 두 케이스 사이에 공통점은 별로 없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권력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인해 자살로 가장한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르)거나, 자살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사회적 타살)에 처하게 됐다는 까닭으로 인해 그랬다. - 어쨌거나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에 대한 믿음이 간다. 흥미위주로 독자를 자극하기에 바쁘지 않고 법의학자로서 갖게 되는 고민을 털어놓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고민하지 않는 사람보다 당연히, 더 믿을 만하다는 게 내 편견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아무 생각 없이 집어온 책.한번 잡고서는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고, 읽고 나서 조금 깜짝 놀라기도 했던 책이다.
사건을 통해 알려주는 법의학적 지식도 흥미로웠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라든지 법의학자로서의 태도에 관한 고민 같은 것은 무척 의미 깊게 느껴졌다.
내가 읽고 있는 것이 흥미로우라고 지어 놓은 드라마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실제로 일어난 끔찍한 일이며 그것의 진실을 파헤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행위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문국진 교수의 책 중 가장 재미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읽었다. 기대에 한치도 어긋남 없이 이 책은 재미가 없었다. 재밌으라고 써 놓은 책이 아니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한국과 일본의 법의학적 체계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 수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를 통해 더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알 수 있다.
어쨌든 그저 이런 대담을 시도했었다는 것이 흥미로웠을 뿐이고, 이 책을 통해서 우에노 마사히코 교수의 책도 찾아서 읽게 됐다는 데, 개인적인 의의가 있을 뿐이다.
상대방을 웃기고 싶다면 자기는 웃지 않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문국진 교수의 다른 책을 읽어두었기에 망정이지, 이 책부터 시작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강창래는 전문 저자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쨌거나 글쓰기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렇다.
그는 문국진 교수를 흠모하고 있던 차에 그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것이 무척이나 감개무량했던 모양이다. 그런 태도가 책을 관통하는데, 읽는 내내 오글거리고 속이 비틀려서, 읽어 내려가는 데 무척이나 인내심이 필요했다.
앞서 읽은 ‘도끼 어쩌구’ 다음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그저 우연이었지만 내게는 퍽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 책에서는 훨씬 진지하고 부풀려지지 않은 법의학자로서의 문국진 교수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법의학교실을 세웠고 또 법의학적 인프라를 확충해 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앞에 두고서 실무자들이나 정치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법의학자로서의 조언이 매우 훌륭하게 읽혔다. 한국에서 법의학을 한다는 것의 고충과 그것을 하기 위해서 극복해 내야 하는 환경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최대 단점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제목과 정말 재미없어 보이게 만드는 표지인 것 같다. 두 가지 난관만 넘고 나면 이 책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도입부에서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이 책은 말 그대로 흥미진진하다. 특히 생생하게 소개해주고 있는 혈액학교에 관한 내용은 지금껏 읽었던 어떤 책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내용이라 무척 인상 깊었다. 법-곤충학에 대한 소개로 닐 헤스켈의 벌레학교를 중개해 준 것도 탁월한 선택으로 보였다. 다른 책에서도 ‘전설적인 존재’로 그려줬던 헨리 C 리에 대해 소개해 주는 부분도 재미있었고 이어서 O.J 심슨 사건을 언급한 것도 적절해 보였다. 헨리 리의 책과 더불어 마이클 베이든의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관찰자적인 태도였다. 과학자적인 태도였다. 인간이 얼마나 극악무도할 수 있는지에 경악하기보다도 인간이 저질러 놓은 짓의 흔적을 그저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애를 쓰는 그들의 태도는 법의학자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마이클 베이든이 이 책에서 보여준 헨리 리에 대한 이야기는 헨리 리의 저서 <실제 상황>을 통해서 직접 볼 수 있다.) 법의학자가 보여주어야 한 것은 정의감이 아니라 증거에 대한 사심 없는 접근, 과학적이고 관찰자적인 무심함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장 부합하는 책 중 하나였다.
로버트 레슬러와 존 더글러스, 로이 해이즐우드 같은 프로파일러들의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이미 앞서 말한 저자들의 책에서 자세히 언급한 것들을 폴 롤랜드라는 저널리스트가 정리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거야말로 새로울 것도 없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알려주는 것도 없으니 괜히 읽었다 싶은 책이 될 수밖에.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묶어서 보여준다. 범죄와 관련된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는데 생각보다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어떤 에피소드는 다른 책에서 읽었고, 어떤 에피소드는 CSI에서 본 적이 있으며(사실 이런 경우는 무척이나 많다.) 어떤 에피소드는 다른 책에서와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어서,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읽으면서도 지루하지만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던 내용은 O.J 심슨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수사관이 아닌 저자들이 쓴 다른 책들에서는 심슨이 유죄라는 데에 이견이 없으나 경찰을 비롯한 수사관들이 증거를 엉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재판에서 실패한 사례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사건을 무죄라고 보는 측면의 주장을 담고 있어서 새롭게 느껴졌다. O.J 심슨 사건은 워낙 유명하고 논쟁의 여지가 많아서 다른 책의 어떤 저자(마이클 베이든)는 이 사건에서 검찰 쪽에 서기도 했고, 또 다른 책의 어떤 저자(헨리 C 리)는 변호인 쪽에 서기도 했다. 마이클 베이든은 이 사건에 대해 앞서 말한 대로 증거를 잘못 다룬 사례로 보아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도서관을 비롯해 관련 서적들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걸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여러 저자들이 ‘전설의 법의학자’라고 입이 닳도록 떠받든 헨리 리의 저서를 직접 볼 수 있어서 기대가 컸다. 그래서 읽기도 전에 알라딘에 달려가 이 책의 리뷰를 좀 들여다봤는데 실망스러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대략 두 가지의 불만이었는데 (기대했던 것에 비해) 책이 재미가 없다는 것과 번역이 안 좋다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정영문의 번역이 좀 에러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조금씩 읽어나가니 이 책의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이 정영문의 번역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책이 잘 안 읽히는 이유는, 내 생각에, 다른 법의학 서적들과는 조금 구성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 책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이래저래 해서 사건을 해결했지롱!’ 하고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짚어준 다음에 수사가 어떻게 착수됐고 진행됐는지 얘기해 준다. 그리고 헨리 리가 투입되고 나서야 사건이 점차 퍼즐처럼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이 구성은 처음에 가독성을 떨어뜨린다는 불만을 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구성만큼 실제 사건의 수사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처음 수사에 착수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에 있는 사람들, 요청에 의해서 외부에서 투입되는 사람들 등 관련자들의 눈에는 사건이 (나중에 저자들이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명료하게 보이지가 않는다. 안개와도 같은 상황 속에서 어떤 증거들을 선택해 그것을 아드리아네의 실처럼 붙들고 따라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사건은 해결될 수도 있고 미궁에 빠질 수도 있으며 영원히 진실을 알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사건을 잘 구성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법정에서 예상치 못한 반격을 받아 모든 것이 도루묵이 되기도 한다. 헨리 리의 책은 제목에 걸맞게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에 접근해 가는 수사관들의 실제 상황을, 마치 독자가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재미는 다른 책들로부터 얻기 어려운 것이라, 그가 들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낡았고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은 이러했다’라고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다른 어떤 책보다도 믿을 만해 보였다. (물론 이 말은 조금 과장됐다. 수사관인 저자들의 대부분은 신뢰하는데, 특히 마이클 베이든이나 헨리 리의 경우에는, 특히나 더 그렇다. 두 사람은 ‘사실 그 자체’ 외에 모든 것에 냉정한 법의학자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쥐똥나무> 우에노 마사히코, 이규원 옮김, 실천문학사, 1990 : (알라딘 상품에 이 책이 없다. 그래서 긁어다 놓은 의미없는 저자파일) 읽으면서도 무척이나 칼럼 투의 글 같다고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한다. ‘법의학이 이렇게 사건을 해결해요’라고 소개해주고 있는 글이라서 가볍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재미가 없진 않지만 군데군데 드러나는 우에노 교수의 편견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여성 연쇄 살인범이 살인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짚어보는 책이다. 독일에서 벌어진 사건 몇 가지를 골라 제법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서론과 결론으로 볼 수 있을 만하게 붙어 있는 내용에서 남성 범죄 연구에 치중하느라 여성 범죄 연구는 등한시 한다고 열을 올리는 것 빼고는 나쁘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코너로 몰려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여성 특유의 심리적, 사회적 상황과 맥락을 잘 짚어내고 있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났을 때, 저자의 주장과 달리, 여성 연쇄 살인범과 남성 연쇄 살인범의 심리가, 저자의 주장만큼이나 큰 간극을 보여준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연쇄 살인범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심리 요인들-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 어려서부터 ‘사물화/대상화’ 당했고 그 자신이 다른 인간을 사물화/대상화 하고 있는 것 등등-을 보여준 다음 여성 연쇄 살인범들이 갖고 있는 특징들을 차별적으로 드러내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어쨌거나 이런 생각은 그저 일개 독자의 망상일 뿐인 것이고. 남성 연쇄 살인범들을 다룬 다른 책들의 몇몇 저자는 ‘여성 연쇄 살인범의 경우는 남성과는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여성 연쇄 살인범은 다루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기도 한 것을 보면, 이 책의 저자의 접근은 실무자들에게 적절하고 적합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이름도 이상하게 낮이 익고 역자의 이름도 마찬가지로 낯이 익다. 저자는 까닭을 모르겠고 -주워 읽은 책 어딘가에 그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기 쉬울 것 같다. 마이클 베이든의 책일까?- 역자는 까닭을 알겠다.
황적준 박사는 1987년 숨진 박종철 열사의 사인이, 경찰이 말하듯이 ‘(책상을) 탁하고 치니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 억하고 죽었다’는 쇼크사가 아니라,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물고문에 의한 살해)라는 사실을 밝히고 국과수 (당시 법의과장이었음)에서 쫓겨난,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이 책의 번역을 계기로 법곤충학 쪽으로 연구 방향을 돌리겠다고 하니 관련 내용을 좀 찾아봐야겠다. (간략한 뉴스 검색으로는, 과연 그가 법곤충학 쪽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그의 뒤를 이어 제자들이 나오고 있다.)
서두가 쓸데없이 길었다. 어쨌거나 이 책은 법곤충학에 대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사례가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책에서 법곤충학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불친절하게 들려줬던 ‘제1령 구더기’, ‘제2령 구더기’, ‘제3령 구더기’ 등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그림으로 알려준다. (그래봤자 아주 대강 알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진다.) 법곤충학을 소개하는 책으로는 읽기도 어렵지 않고 상식적으로 얻어갈 수 있는 것도 적지 않다. CSI에서 봐왔던 사건이라든지 실험을 저자가 시작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책에서는 그저 이미 밝혀진 사실이라고 일러뒀던 히로뽕과 구더기 성장의 관계가 저자의 실험으로 밝혀진 것이라는 점 등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새 책을 사면 좋겠지만 절판됐으니 조만간 알라딘 중고서점을 뒤져 구매하려고 한다.
조선 시대의 법의학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무원록을 실제 사건 조사에서 어떻게 활용했는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전해지는 내용을 추려 이야기를 구성했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초반과 달리, 또 제목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후반에는 도적들을 다루고 있어서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지고 흥미를 잃기 딱 좋았다.
독살이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청산가리, 비소 등의 독약이라든가 진정제, 인슐린 같은 약물의 투약 같이 독극물 내지 약물을 이용해 살해하는 것을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독살 외에도 일산화탄소와 같은 가스로 인한 중독사에서부터 농약, 살충제 등에 의한 중독사까지도 다루고 있다. 독살보다는 중독에 의한 살해를 다룬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법의학의 후발주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문국진 교수와 더불어 우에노 교수 역시 ‘정의로운 법의학자’ 축에 속한다. 마이클 베이든이나 헨리 리 같은 차가운 과학자와는 달리 문 교수나 우에노 교수는 ‘이렇게 잔혹한 짓을 저지른 범인은 응징받아 마땅하다’는 정의감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어쩌면 이들의 사명감이라고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마이클 베이든이나 헨리 리 같은 사람들도 이런 것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저서에서는 문 교수나 우에노 교수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 정서적인 태도가 강렬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문화적인 차이일지도 모르고, 개인적인 차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특징적인 태도들을 보이고 있는 것은 현상적으로 맞는 것 같다. ‘정의로운 법의학자는 정의로운가’라는 물음을, 법의학과 하등 관계없는 사람으로서 갖고 있기는 한데, 문 교수와 우에노 교수의 책들을 읽으면서, 그 물음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기는 하다. 쥐똥나무가 칼럼이어서 너무 단편적이었다면 이 책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낫다. 사례에 대한 간략한 내용과 더불어서 일본 감찰의의 생활이라든지 감찰의 제도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책까지도 법의학 관련 서적에 끼워 넣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를 것 같다. 하지만 분명 흥미로운 주제인 것은 틀림없는데, 이런 주제를 가지고 책을 펴내는 사람에게도 또 그런 책을 번역해 출간해주는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심령 수사는 영매가 수사에 개입해 도움을 주는 것을 뜻한다. 이 때 영매는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에 따라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환상/꿈 등을 통해 보거나,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환상/꿈 등을 경험하거나 사건에 관계된 사물에 대해 사이코매트리를 동원하거나 한다. 이들은 경찰의 숨겨진 제보자로 활동하면서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방향을 잃거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수사하도록 도움을 준다.
경찰의 제보자로 활동한 영매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수사에 기여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들려주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영매의 수사관으로서의 능력이다. ‘(사건과 관련된) 이미지를 보는 것은 (영매로서의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영매들이 보는 이미지들은 대개 무척이나 상징적이고 때때로 단편적인 것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해석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 여기에서 영매들이 사건을 ‘보았다’거나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알았다’고 할 때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된다. 그들이 보거나 알게 되는 사건의 이미지는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시간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의 현장 사진 한 장을 들이미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보았다는 것, 알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것들의 갖는 맥락과 의미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고,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뛰어난 수사관처럼 뛰어난 심령 수사관 역시 본 것과 알게 된 것을 통해 보이지 않은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설득력 있게 추론해낼 수 있어야 한다. 추론에 해당하는 이 과정이 바로 ‘해석’하는 것일 테다.
흥미위주로 접근하기에는 영매들이 겪는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그들이 보고 겪는 것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사기꾼’ 내지 ‘미친 사람들’ 취급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책을 덮었을 때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다.
전문 저술가가 지은 책에 대해 저널리스트가 지은 책만큼이나 신뢰감을 갖고 있지 않았었는데, 이 책은 그 생각을 다시 점검하게 만들었다.
일단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그저 분류의 흥미로움 때문이었다. 법의학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발견으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그 카테고리에 해당될 만한 (법의학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짚어준 것이 흥미로웠던 것이다. 100개의 사건을 다룬다고 해도 거의 다 아는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 역시 그저 ‘우물 안 개구리’의 소견에 불과했다.
내가 이전 책들에서 읽지 못했던 다양한 사건들이 흥미롭게 다뤄졌다. 물론 많은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주제에 맞는 간략한 소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괜찮은 책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을 만하기는 하겠다.
국과수 연구원으로 있는 저자는 미세증거물이 무엇이고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소개하고 그것들을 증거로서 채취하는 방법들까지 소개한다. 이미 서두에서부터 저자는 이 책의 독자로서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 관심종자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수사에 참여하고 미세증거물을 채취해야 하는 수사관을 상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미세증거물(이 우리나라에 아직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소개하고 있으면서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신기하리만큼 자세하고 실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수사를 소개해주는 책들은 (그 목적을 고려할 때 무척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과학수사가 마치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곤충학에 관한 책이나 헨리 리의 책, 아니 당장 이 책만 보더라도, 과학수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유효한 증거란 (드라마까지 가지 않더라도, 과학수사에 관해 소개해주는) 책들에서 읽었던 것처럼, 뚝딱 하고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말이 좀 꼬이고 있는데 정리해서 말하자면 과학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증거를 감정하는 능력은 발전하고 있고, 발전해온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증거를 증거로 만드는 일은 여전히 인간에게 달려 있어서 과학적인 감정만큼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책이 그러한 목적 -수사관으로 하여금 미세증거물을 좀더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적이고 계몽적인 목적- 하에 저술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어떻게 경찰이라는 사람이 증거 보존과 채취에 대해서 저토록 개념이 없을 수 있지!’ 하고 들입다 욕을 했었는데,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누군가 ‘스토리를 갖고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정리해준 것이 아니라, 그저 현장으로서 벌어져 있는 사건을 목도한다면, 무엇이 증거가 될 것이고 무엇이 증거가 될 수 없을 것이며 그 많은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이 핵심적인 것일지를, (TV를 보면서 욕했던 것처럼) 자신있게 판단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다시금 느끼는 것은, 과학수사를 소개해주는 수많은 책들이 다루고 있는 것과는 조금 별개로, 이 영역은 무척이나 전문적이고 무척이나 섬세하며 무척이나 어려운 분야라는 사실이다. 이 분야를 소개하는 책들은 그저 말도 안 되는 환상을 키워주거나, 말도 안되는 환상을 아주 조금 깨뜨려줄 수 있을 뿐이다. (참! 이 책도 수록된 사진이 조금 무섭게 느껴질 수 있다.)
제목에 낚인 대표적인 예로 이 책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X파일은 그야말로 군더더기에서 이 책의 내용과 하등 관련이 없다. 과학수사에 대해서는 조금 갸웃거려도 될 것 같다. 일단 ‘최대의 과학수사’라고 본다면 ‘최대의’라는 수식어는 이 책과는 X파일만큼이나 관련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좋다. 그러면 ‘조선의 과학수사’라고 해보자. 가장 수긍할 만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조금은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분명 ‘조선의 과학수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보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이 책의 내용만으로 보자면 ‘형사법과 관련해 살펴보는 조선시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두에는 드라마로 유행했던 별순검과 다모에 대한 역사적인 맥락을 설명해주고 있고, 이어서 ‘무원록’과 관련된 기록을 짚어주고 있다. (형법을 외우는 왕 등등의 항목은 ‘조선은 과학수사국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런 저런 기록을 제시하는 부분인데 500년에 이르는 왕조에 있어서 그 주장에 해당되는, 그것도 잘 부합하는 왕은 한줌도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런 챕터에 대한 감상을 대신하려고 한다.) 기대했던 내용인 조선의 과학수사 항목은 이미 다른 저자들이 다른 저서에서 보여줬던 것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크게 의미 있어 보이지 않았다.
서두에 보여줬던 별순검, 다모와 관련된 내용과 조선 시대 형법 체계 등에 대해 설명한 후반부가 오히려 이 책에 어떤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 될 것 같다. 조선조에 대한 밑그림은 흥미로웠지만, ‘과학수사/법의학’ 관련 책 읽어치우기, 에서 이 책은 다소 곁가지에 놓여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패러독스 범죄학이라는 제목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어떤 계기랄까 아이디어의 원천 같은 것이었을 테고, 어쩌면 저자가 원래 쓰고 싶었던 제목은 Criminal Justice가 아니었을까 하는 ‘제멋대로의 상상’을 해봤다. 이것은 이 책에 대한 단편적인 감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초반에서부터 중반 이전까지는 대략적으로 패러독스라고 이를 만한 어떤 것, 그러니까 이 책에 대해 두루 소개되는 내용대로 ‘우리가 범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것’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통계와 관련된 내용은 특히 흥미로웠고 상당히 귀를 기울일 만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의
후반부로 흐르면 내용은 다소 달라진다. 본격적으로 형사 사법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역시 저자는 누가 뭐래도 경찰 행정에 관련된 사람이구나’ 싶어진다. 관심은 별로 없었지만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있었다는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때때로 이 책의 저자의 견해에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거나 저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에 부딪힌다. TV와 범죄의 상관관계라든지 게임, 영화가 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특히 그렇다. 저자는 범죄를 수사하고 억제하려는 ‘시스템’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지만 수사나 치안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전공 분야와 이 책의 주요 독자가 누구일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 어쨌거나 흥미롭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된 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기대보다 꽤 괜찮은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그 전에 서점에서 살까말까 하다 마지막에 내려놨던 책이다. 그 때 샀어도 좋았을 것 같다.
이 책의 도입부가 너무 극적(드라마틱하다는 의미보다도, 모종의 의도 하에 배치된, 다시 말해 철저하게 계산된 장면이라는 점에서 극적)이라고 느꼈다. ‘나’라는 일인칭 화자가 등장하는 프로파일러의 글이 때때로 얼마나 ‘소설(이라는 문학의 한 갈래로서가 아니라 비하적인 의미로서의 소설, 그러니까 소설 쓰고 있네의 그 소설)적’으로 읽힐 수 있는지를 이미 다른 글들을 통해서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특히나 도입부에서부터 무시무시할 만큼 극적이었다. 이어지는 글의 흐름 역시 첫인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각각의 챕터들은 정보를 어디까지 제공하고 어디에서 끊을 것인지를 충분히 계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읽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 나는 그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의 후반부까지도 조금은 반감을 갖고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는 이미 로버트 레슬러의 책을 읽었고 존 더글러스의 책을 읽었으며 로이 헤이즐우드의 책도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유럽 최초의 프로파일러답게 그 자신이 어떻게 프로파일러가 되었는지, 프로파일러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최초’의 사람이 겪었어야 할 (전형적이라고 할 만큼 당연한 일이지만 그 최초의 사람에게는 결코 당연하지 않았을) 현실적 장벽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어떻게 넘었는지 보여주었다. 나는 심드렁했다. 그의 글은 너무 노련했고 너무 계산되어 있었다. 극적인 효과를 다루는 솜씨가 너무 뛰어나서 도리어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 그래서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했었다.
“이 양반은 자기가 들여다 본 심연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면서, 정작으로는 심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가 본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눈으로 본 심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기는커녕 심연에 눈을 빠뜨린 사람의 등짝밖에 볼 수가 없다. 그의 실루엣 너머 심연을 좀 들여다볼라치면 어김없이 머리로, 어깨로, 그리고 커다란 덩치로, 시선을 가로막고 든다. 심연은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그의) 등짝이라는 말인가. ‘머리 치워 머리’라는 노래처럼, ‘등짝 치워 등짝’ 하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났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결정적으로 그의 글에 말려들게 된 것은 실러의 <군도> 때문이고,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 때문이다. 그 작품들에 대해서 그가 내려주고 있는 어떤 해석이랄까 하는 것은 사실 기대 이하로 너무 적었다. 나는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내가 사로잡힌 것은 그가 인용하고 있는 <군도>와 <리처드 3세>의 내용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 작품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의 매력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저자의 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런 면에서 뮐러의 글은 무척이나 영악하게 느껴진다), 글 속의 화자는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받아 마셨음에 반해 마주 앉은 루츠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지금껏 읽고 있는 이 책에서 말해온 대로, 살인자들에게 있어 권력은, 일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저자가 보여주고 있는 수많은 액자 중 가장 바깥에 있으면서, 뮐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화자는, 자신이 루츠의 권력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최악의 상황에 그는 죽을지도 모르고 차악의 상황에는 살인자의 벌레(끄나풀)이 됐다는, 혹은 잠시나마 그의 권력 수하에 들어가고 말았다는 치욕스러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화자는 둘 사이에 팽팽하게 당겨지는 권력의 신경전을 그려 보여준다. 군도와 리처드 3세로 인해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 ‘저자의 영악함’ 때문에, 이제는 나도 화자와 루츠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권력의 신경전에, 휘말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게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등장하는 한 남자, ‘궤도’에 괴로워하며 시대에 뒤쳐졌다는 괴로움으로 불안에 사로잡힌 중년의 남자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남자=화자’로 인지하게 만들어, 심리적인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너덜너덜하고 무기력한 마음이 돼 있을 때 등장하는 것은 또 다시 실러의 군도다. 마지막으로 죽어가는 모어경이다. 이제 더 이상 모어경은 타자가 아니다. 뮐러가 분석한 군도 속 인물이 아니다. 모어경은 앞서 분석했던 대로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경험의 세계 안에서 사는 사람’이며, (어떻게 휘말리다보니 ㅠㅠ) 그 남자이며, 화자이며, 그들 모두에게 감정이입하게 된, 읽고 있는 사람이다. 인간이라는 야수다. 야수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종이다. : “그대는 죽을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그러나, 화자는 영웅처럼 냉정을 되찾는다.
그것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분명하게도 일어난 일이다. 일어난 일이 ‘되어 버렸다.’
굉장한 도약이어서 깜짝 놀랄 만한 일이지만. 허무맹랑한 비약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실 이 모든 힘은 실러의 군도에서부터 빌려오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격정적인 감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순간, 화자는 루츠의 손에, 차가운 손을 올리며 ‘차를 마시라’고 말한다.
이 순간에 그는 왜 차를 마시지 않는가, 라고 묻지 않는다!
앞서 화자로 하여금 군도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공연 관련자가 ‘(의도하는 것이 담긴) 명령문’이 아니라 ‘(의도한 것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문’으로 원하던 것을 성취했던 것처럼, 이 빌어먹을 순간에, 이 빌어먹을 화자는, 의문문이 아니라 명령문으로, 원하던 것을 한 방에 성취해 버린다. 그러고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크게 한 방 먹었기 때문에) 얼떨떨해진 루츠를 뒤에 두고서 표표히 감옥을 나선다.
화자는 더 이상 그 건물에 들어서기 전의 그가 아니다. 그는 그가 들려준 모든 이야기-부분-들의 합이면서도 그 이상인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그는 새 퓨즈를 떼어내고 가야 할 길로 가면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꿈을 좇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하며 책을 끝마치는 것이다.
뜬금없는 멘트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화자는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았고’, 그러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심연’과 (군도의 장면을 빌려) 마주한 것이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마주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는 한 마리의 괴물로서 승리를 거둔 다음, 한 명의 인간으로서 건물에서 나선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죽음 앞에서 갖게 되는 의연함’이다. ‘두려움 없음’, ‘자기를 기망하지 않았음’은 곧 그가 하고 있는 자기 일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 극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중에 다시 읽으면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감도 잡을 수가 없다.
감옥에서 나오는 화자의 얼굴이 세 시간 동안 루츠와 사우나를 하고 온 것 같다는 숄츠의 말대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내 얼굴도 식은땀 같은 것으로 범벅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 뮐러, 이 사람, 소설을 써도 기가 막히게 잘 쓰겠다.
공교롭게도 오스트리아의 프로파일러(토마스 뮐러)에 이어 오스트리아의 법정신의학자의 책을 연달아 읽게 됐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우리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심지어는 직업적으로- 자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악이라는 주제는 흥미롭기 짝이 없는데 그 흥미로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저자의 전공 분야인 법정신의학보다는 조금 더 광범위한 통찰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한 마디로 저자의 통찰이 속 시원하게 와 닿지 못했다는 말이다. 광범위한 고찰은 고사하고 자기 분야에서의 통찰도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 사례는 이것저것 들어주지만 차라리 사례의 수를 줄이되 한 사례를 두고 조금 더 분석적이고 종합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없었을까. 글 자체만 두고 개인적인 느낌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법정신의학 전문가라기보다 그저 이런저런 잡문을 써서 밥벌이하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챕터 시작하는 부분에 달아두었던 발췌문들이 본문보다도 도리어 선명하게 와 닿았다.
예전에 읽었던 <한국의 연쇄살인>이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어떤 주제의 시발점으로 삼을 만한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비슷한 유형=하나의 챕터, 주제) 사건을 보여주면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형사 사건을 수사하는 주체(경찰과 검찰)에서부터 법원,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 그리고 법원과 국회가 반영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죽음을 최소화하는 일이나 그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가를 대략적으로 아주 대략적으로 짚어준다. 가끔씩은 그렇게 원론적인 이야기 몇 줄로 넘어가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몇 줄로 넘어가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이 책의 주제는 바뀌어야 할 것이 분명해 보였으므로, 참, 부질없는 투덜거림이었다.
<한국의 연쇄살인>이 주는 오싹함이 사건의 비정함과 잔혹함에 기인한 것이었다면, 비교적 최근 저서인 이 책이 주는 오싹함은 과거에 벌어진 사건들이 조금의 개선도 없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과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도 손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는 놀랄 만한 사실에 기인한 것일 테다. <한국의 연쇄살인>만큼 흥미진진하진 않겠지만 그것보다 묵직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에게는 이것이 더 흥미롭게 보인다.
이렇게 괜찮은 책이 절판이라니, 정말로 유감이다! 이 책은 ‘지문’이 어떻게 서구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윌리엄 허셜이나 핸리 폴즈 모두 중국인, 일본인 등에게서 받은 영감을 무시하고 있다.- 법정이라는 도마 위에 서기까지 어떤 수난들을 겪어 왔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연대기적인 구성 때문인지 지리적으로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하는데 이것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윌리엄 허셜 - 프랜시스 골턴 - 핸리 폴즈의 지지고 볶는 싸움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손 안대고 코 푼’ 에드워드 헨리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짜증날 만큼 얄밉고, 그런 의미에서 아지줄 하케야말로 (벵골인이라는 이유로) ‘싸움판에 끼지도 못한 채’ 공로를 고스란히 빼앗긴 최대의 피해자가 아닐까 한다. 핸리 폴즈의 ‘인정해 달라’는 통곡어린 호소보다도 내게는 아지줄 하케의 말도 섞어보지 못한 침묵이 더 절절하게 와 닿았다. 저자는 책 말미에 핸리 폴즈를 위로하고 있지만, 나는 이 끼적임 말미에 벵골인 아지줄 하케를 위로하고 싶다. - 그러나저러나 이렇게 재밌고 유익한 책이 왜 절판이라는 말이냐?!
내가 읽는 책과 다른 사람이 읽는 책이 같은 책이라고 하더라도 각자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은 경우도 있고, 무척이나 어려워서 흥분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후자였다.
첫 인상부터 좋지 않았는데 챕터를 시작하며 인용해 놓은 멘트 중 ‘법무차관’을 ‘관선변호사’로 적어 놓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지만 (판매되는 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치명적인 실수는 잊을 만 하면 잊지 않고 꼬박꼬박 나온다. 어떤 여성이 태어난 것이 XXXX년 12월 1월 4일이라는 식으로. 그렇지만 이런 것은 정말 사소한 에러다. 이 책의 커다란 에러는 번역기를 돌린 다음 약간 손을 본 것 같은 문장이다. 주어와 서술어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곳도 적지 않다. 서술의 일관성이 없어서 마치 한 권의 책을 대충 요약해 놓은 것을 읽는 기분이 든다.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원문이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인데 이런 졸문의 글을 어쩌자고 출판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문장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글쓴이는 한 챕터 안에서도 두서없이 이말 저말 섞어가며 해댈 뿐만 아니라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의심까지 산다. ‘어떤 인물이 이런저런 이유로 잭 더 리퍼로 오해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 까닭은 블라블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자는 또 다시 ’이 놈이 잭 더 리퍼와 얼마나 닮았는지 블라블라~. 하지만 얘는 잭 더 리퍼가 아니야. 블라블라.‘ 번역도 번역이지만 저자의 태도도 너무나 분열적이다. - 젠장. 좋았던 책은 짧게 쓰게 되고 안 좋았던 책은 이래 주절거리며 험담하게 되다니. 더 쓰고 싶지 않다. 판단은 읽는 사람의 기호에 달려 있다.
+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덧붙이자면, 흥미로운 사건이 많이 보이고 독극물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대표적인 사건 몇몇에 대해 더 얘기해주는 것은 좋았다. 그래도 그것들은 여전히 덜 완료된 작업 같은 인상을 풍겼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글쓰기, 완성도가 떨어지는 책 만듦새.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은 책이었는데, 기대하지 않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십년 전쯤 나온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도 그 즈음에 나온 책에 비해서 내용이 조금 부실한 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책은 우에노 마사히코 교수의 칼럼을 모아놓은 <독살>이었다. 서두의 느낌도 비슷하고 (이 글이 칼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칼럼처럼 짧고 대략적인 소개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루고 있는 사건에 대한 소개와 분석도 그렇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과학수사에 대한 언급도 모두 너무 대략적이다.
2011년에 발행됐다고 하기에는 내용이 조금 오래 된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하면서 뒤에 첨부된 참고 자료들을 들여다봤다. 저자 자신의 책을 제외하고 가장 최근의 자료는 2006년. 아마도 이렇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오래된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때때로 이것은 저자와 저서에 대한 신뢰감에 치명적인 효과를 낸다. 예를 들면 ‘도둑은 남자가 많을 것 같지만 여자도 5%나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하지만 이 5%의 여성 도둑에 대한 근거가 미국에서 1977년에 발표된 연구 내용이라면? 2011년에 발행된 책을, 2014년에 읽고 있는 독자의 머릿속에는, 어떤 단어가 떠오를까? 잘은 몰라도 결코 좋은 뉘앙스의 단어는 아닐 게 분명하다.
‘프로파일링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파일러가 하지 말아야 할 게 뭐더라’ 하는 의문을 혹여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성공적인 프로파일링을 위해 해야 할 것에 대한 언급보다도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언급이 더 많아 보이는 까닭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편견에 사로잡힌 까닭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불만을 느꼈다.
사소한 오타라고 하기에는 웃긴 ‘오류’도 있는데, 관련된 책 몇 권만 읽어도 알게 되는 ‘보스턴 교살자’를 ‘보스턴 문외한’이라고 적어놓은 것이다. (세상에!) 괄호 속에 적어 놓은 영어 strangler에서 l이 빠지며 stranger가 된 것까지야 오타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떡하니 ‘문외한’이라고 적어 놓은 것은 아무리 봐도 사소한 오타라고 하기가 어렵다.
챕터가 자세하게 나뉘어져 있어서 내용이 체계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챕터의 제목과 거기에 담겨 있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다. 편견에 차서 추측해보건대, 챕터 제목 아래 저자가 ‘주의했으면’ 하고 당부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챕터의 내용을 적다가보니 당부하고 싶은 내용을 전하려는 마음이 강해서 내용에 대해 자세히 적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제목으로도 충분히 챕터 내용을 알 만하다고 판단했을까?) 여튼 책이 크고 두꺼운데도 (건질 만한) 내용이 많지 않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이것 때문일 테다.
챕터로 구성된 카테고리도 논리를 갖는다. 그 사실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오류가 발생한다. : 저자는 6. 범죄자에 대한 서류 작성(p159)에서 "수사에서 찾은 증거가 정확하게 서류로 작성되어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Turvey, 2001)"로 ‘오해의 방지, 쉬운 참고 자료, 특수한 결론, 효과적인 결론과 피드백, 동료의 검색’을 들고 각각의 부분에 대해 첨언한다.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은 ‘오해의 방지’에 대해서 부연한 부분인데, 저자가 ‘서류 작성을 할 때 오해의 여지가 생기도록 작성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테고리의 논리로 보자면 ‘오해의 방지’에서 부연되어야 할 내용은 ‘오해의 여지가 생기도록 서류를 작성해서는 안 된다(서류 작성할 때 유의사항)’가 아니라, ‘오해의 여지가 생기지 않도록 해준다(서류로 작성해 놓았을 때의 유리한 점 = 서류로 작성해 두어야 하는 이유)’는 점이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 이런 식으로 논리적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읽는 내내 지독한 피로감을 느꼈다.
이 책의 반 이상을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 이건 도표, 이건 사진’ 이러고 봤다. 저널리스트나 외부 인사가 쓴 책이 아니라 현장 실무자인 전문가가 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는 그런 책을 읽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구구절절 깨달았다.
증거물을 분석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 그대로 과학적인 입장에서 설명해준다. 제목 그대로 ‘법과학’과 ‘수사’에 관한 책이다. 방점은 법과학에 맞춰져 있으며 법과학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증거를 어떤 식으로 분석해 내는지에 대해서 알려준다. 수사 사례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으며,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편적이고 한정적인 데 그친다. 법과학으로 수사에 도움을 준 사례를 흥미진진하게 읽고 싶다면 이 책은 피하는 게 좋다. 법과학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고 싶은 ‘과학도’라면 읽어볼 만할 수도 있지 않을까.
로버트 위트만이라는 전직 FBI 수사원이 겪은 사건을 다소 극적인 구성으로 써놓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존 더글러스의 <마음의 사냥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로버트 위트먼이라는 캐릭터도 (실제 그 사람이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각각의 책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로서의 인물이) 존 더글러스의 캐릭터처럼 수완이 뛰어난 수사관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캐릭터는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기도 서슴지 않는다. 대범하고 본능적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그런 점에서 두 캐릭터 모두 범죄자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지금만큼 성공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하게 해준다. 덕분에 그들의 뒤를 좇고 있는 독자는 흥미진진함을 느끼게 된다. 말 그대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글의 구성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트먼의 책은 사실 <인간이라는 야수>의 구성과 거의 흡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에서 과거로 들어갔다가 막바지에 다시 현재를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런데 이런 구조는 이런 쪽 책에서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 구조인 것 같다.) 사건을 두고서 자신이 어떻게 해서 FBI 요원이 되기로 했는지, 또 FBI 요원이 돼서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어떤 문제를 겪게 됐는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 그래서 그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게 됐는지 등등. - FBI 수사 이야기에 그림과 예술품, 골동품에 대한 애정까지 소스로 끼얹어져 있다. 흥미진진하다.
작년인가 읽었던 책이고 다시 읽으면서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전에는 조금 지루하게 읽혔던 ‘시대에 대한 개괄’ 부분이 이번에는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개인적인 욕망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 미국의 연쇄 살인과 달리 한국의 연쇄 살인은 사회적인 욕망과 관련이 깊다고 저자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추정에 가까워 보이는데다가 구체적인 자료가 제시돼 있지도 않았지만, 물론 그럴 만한 자리도 아니었지만) 심정적으로 끄덕거릴 수가 있었다. 전문가의 견해이지만 책 자체의 구성상 대략적인 추정에 가까운 -고작 몇 장에 불과한- 분량인 만큼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속칭 화성 연쇄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일련의 사건들을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으로 고쳐 부르며 사건을 재조명하는 것도 (예전에 읽었을 때나 지금 다시 읽었을 때나) 인상적이었다. 또 이 책이 나올 때만 해도 ‘서울 서남부 살인 사건’은 미제로 남아 있었고 연쇄 살인인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았고, 그래서 저자는 그것이 연쇄 살인일 가능성을 제기(프로파일링)하면서 수사력을 집중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그것은 연쇄 살인이었다.)
혼자 읽기에는 무서워서 사람들 틈에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어쩔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일들이라는 사실과 극적이고 구체적인 설명들 그리고 작지만 실제 현장을 찍은 사진들이 (그것보다도 훨씬 더 잔혹하고 무시무시했던) 미국의 연쇄 살인 사건보다도 더 무섭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더 괜찮았던 책이다.
<루미놀> 최상규, 청림출판, 1991 : 이 책이 출간된 것이 1991년이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미국 법정에서 DNA가 증거로 인정된 것이 1987년,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1992년 정도였던 것 같다. 이 책이 나왔을 당시에는 아직 법적 증거물로서 DNA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 식별은 주로 혈액형에 의해 이뤄진다. DNA의 개인 식별력에 대해 대중적인 지식이 뒷받침돼 있는 2014년 독자의 시각에서는 사건이 뜨악할 만한 방식으로 해결된다. 물론 증거물에 묻은 혈액이 A형이고 용의자가 A형이니까 용의자는 범인이다, 라는 식으로 가지는 않는다. ABO식 말고도 MN식, RH식, 루이스식 등 여러 단계로 감정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것이 법적 증거물로서의 능력을 가졌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여겨지기만 한다.
혈액 증거가 완전한 개인 식별이 되지 않으므로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어떤 저자가 모 책에서 ‘어째서 한국에서는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게 이토록 중요한지 모르겠다. 명명백백한 증거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식으로 투덜댄 것을 보면 과학수사가 보편화되기 전에 이뤄진 수사에서는 증거는 자백을 거들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위험한 추정이다. 아무튼 DNA를 통한 개인 식별이 가능해진 지금에 와서, (미국처럼) DNA 감정을 통해 의혹이 있는 사건을 재검토해 누명을 쓴 사람들을 풀어주는 절차가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모 방송 프로그램을 보니) 이전 사건에 대한 증거물이 다 파기되어서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또 위험한 추정을 해본다.
각설하고. DNA 감정이 도입되기 전 과학 수사(특히 혈액 감정을 통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됐었는지 살펴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되게 무미건조한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게 쭉쭉 읽히는 저자의 문장이 흥미롭다.
유명한 범죄 소설가이자 현직 기자인 저자가 LA 타임스에 게재했던 기사를 모은 책이다.
머리말에서부터 저자는 이 기사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보다도 자신이 이 사건들을 (기자로서 접하면서) 어떻게 소설적으로 영감을 받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데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매우 적확한 분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사들의 모음인 이 책은 기사를 ‘통해서’ 범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이클 코넬리라는 작가가 소설을 쓰는 데 어떤 영감을 받았는가에 대한 것, 다시 말해 마이클 코넬리 팬들을 위한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평범한 독자로서 불평을 늘어놓자면,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쓴 여러 개의 기사를 한 권의 책으로 묶기로 했다면, 그것을 다시 손봐주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최초 기사에서부터 설명한 사건의 내용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어 지루하기 짝이 없어진다.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한참 있다가 쓰는 후속 기사이기 때문에 기사 자체로야 문제가 없지만 한 자리에 앉아서 한 권의 책을 붙들고 한 사건에 대해서 읽고 있는 독자로서는 죽을 맛이다. 복습도 이런 복습이 없다.
역자는 아마도 신문 기사의 건조한 문체의 느낌을 반영하기 위해 번역을 그런 식으로 한 것 같다. 역자의 다른 책을 읽었을 때 이 책에서 느꼈던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내용에 더해 가독성이 떨어지는 번역투의 문장은 읽는 내내 책을 내려놓고 싶게 만들었다.
한창 이쪽 책들을 읽던 시기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뒀다가 시들해져 몇 달을 묵힌 뒤 지난달(2015.04)에야 꺼내 읽었다. 공부한다고 맨날 개론서나 전공서 들여다보고 있다가 말랑말랑한 책을 읽으니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 책이 무척 재밌게 기억된다는 점에는 그런 배경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다중인격에 대해서, 다중인격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다중인격으로 고통받는 인간을 도와주기 위한 여러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다. 빌리의 속에는 24개의 인격이 존재하며 그중에는 불법적인 일에도 거침없이 손대는 인격들이 포함돼 있었다. 일부 인격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다른 인격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격으로 봐야 하는 빌리라는 인격에게 형사적인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입장에서 저술된 책이다. (범죄심리에 관한 다른 책에서는 빌리 밀리건이 정말로 다중인격이었는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덧붙이는 말이다. 여전히 그것은 현재진행형의 논란인 모양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빌리라는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런 인격들을 정말로 존재하는 한 사람인 것처럼 존중하며 치료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이 저지른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에도 불구하고, 또 자기는 물론이거니와 가족에게까지 가해지는 정치적인 압력과 재정적인 핍박을 견디며 '그런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치료를 받아 왔다'는 원칙에 의거해 빌리를 치료해 나간 사람들이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사실 그들은 이미 자기 분야에서 충분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으며 오히려 빌리를 치료하면서 오명과 악명을 뒤집어쓰고 경력에도 손해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그런 고통을 감내하고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세상은 다중인격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었다. 빌리 밀리건이라는 한 사람 속에 기거하고 있었던 수많은 인격의 존재를 글로 상세하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들의 치료가 효과를 봤기 때문인 것이다. 치료가 성공했기 때문에 빌리는 자기 안에 여러 인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더욱 극렬한 범죄자가 됐거나, 혼란스러움 속에 자살했을 것이다. (둘 다였을 수도 있다.)
난삽한 감상의 마무리는 미국 범죄심리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제이슨 기디언이 한 말로 하련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법의곤충학자 마크 베네케가 심리학자인 아내 리디아와 함께 쓴 책이다. 법의학적 이야기와 범죄심리학적 이야기가 그래서 흥미롭게 교차된다. 법의학적 관점에서 검토한 후 범죄심리학적 관점에서 이해를 거드는 식이다.
히틀러에 관한 내용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여서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 사람들이 투사하는 절대적인 악의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도 새로울 것이 없었다. 콜롬비아의 소년 연쇄살인범은 이런 쪽 책에서 별로 빠진 적이 없다. 그는 매우 과시적인 사이코패스인 것 같다. 그래서 유명한 심리학자들과 인터뷰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긴 것 같고 그 흔적이 여러 권의 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다. <인간이라는 야수>에서부터 베네케의 <연쇄살인범의 고백>에서도 본 것 같고 - 두 책에서 인물을 묘사하는 것이 매우 비슷하다. '이 양반은 마치 교도소장 같다. 커피잔, 필기구, 노트 등을 마음대로 갖다 쓴다' 등등, <매핑>에서 처음으로 그를 인상적으로 만났던 것 같다. 그 밖의 다른 책에서도 조금씩 언급됐을 것이다. 이 사람의 이야기도 많이 새롭지는 않았지만 심리학을 도구로 삼아 체계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읽혔다. 이런 이야기가 새롭게 읽히기에는 관련된 책을 너무 읽어댄 것 같다. 반면 '소아성애'와 '키워서 아내로 삼다'는 기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흥미로웠고 이번에는 거기에 대한 자세한 심리 분석이 더해져서 전에 보다 기억에 더 남을 것 같다. '강간범과 섹스살인범의 내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에서 다룬 캐슬 호텔의 주인 헨리 하워드 홈스는 읽을 때마다 서늘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잔인한 것도 아니고 더 많이 죽인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그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 수 있는 호텔을 지어서 거기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나 투숙하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다. 거대하고 복잡하며 철저하게 사적인 공간을 공공의 장소에 세워놓고 은밀하게 살인 충동을 충족시켜왔다는 사실이, 무식하게 살인 공장을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서까래에서 벌어진 살인'이나 '이웃 사이에 벌어진 살인'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예단'해버리는 경찰 앞에서 당할 장사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선입견은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거기에 씌이는 순간 중요한 것들은 있어도 없는 것이 된다. 나중에 그게 벗겨지고 난 후에는 중요한 것들이 이미 사라져 버렸을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다. 판단의 오류가 해결 가능성을 막아 버렸다는 데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 '시간증'에 관해서는 이미 베네케의 저서 어디에선가 다룬 적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시간증이 목적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고 유의미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초감각적 수사'는 영매에 관한 과학자의 (사심없는 태도를 고수하는 척하며) 조롱을 엿볼 수 있고(참으로 전형적이다), 여기에서 비틀린 감정은 이어지는 마지막장 '살인, 유희, 살인유희'를 재미없게 읽도록 만들었다.
마크 베네케, 이제까지는 믿고 읽는 저자 중 한 명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은 아니다. 서문에서 저자가 소재 고갈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게 빈말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