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박상륭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1. 차라투스트라의 두 번째 몰락은 그의 두 번째(이전에 했던 첫 번째 하산의 이야기가 <산해기>이고, 이 이야기는 그 훨씬 후에 차라투스트라가 다시 감행하게 된 늙은) 하산을 일러 하는 말 같은데, 그리고 그것은 차라투스트라의 원전(이란 니체의 글?)을 두고서도 하는 말 같은데, 후자에 대해서 까막눈이라, 어떤 맥락의 몰락인지가 얼른 잡히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모종의 배신 같은 걸로도 보이는데, 차라투스트라가 젊어서 설파했던 초인적인 삶, 권력에의 의지로 영겁회귀하는 그 삶을 기반하고 있던 대지 쪽에서, 세월이라는 샛서방을 맞아, 그 얼굴을 달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차라투스트라는 늙은 것이다. 그를 먹여 살리던 도반(이라고 해야 수독수리와 암뱀)도 죽어버린 것이다.

패관이라고 해야 할 (얼굴 드러내지 않고 자꾸 개입해쌌는, 어떤 노인네의) 목소리는, 그가 신을 죽임으로 해서, 인간을 죽이게 됐다고, 인간인 것들을 축생에로까지 끄잡아 내렸다고 말하며, 신의 부음을 전하던 초인은, 그래서 이제 인간의 부음을 전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어쨌거나 차라투스트라는, 자기의 도반들을 불살라, 제단에 바친 뒤, 두 번째 몰락으로서의 하산을 감항핸다.


2. 차라투스트라에 답한다,는 그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차라투스트라 자신의 말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하산하려는 길에, 자신이 숭배했던 그 빛나는 별(이란 태양으)로부터, (첫 번째 하산과 그 하산을 마치고 들어오던 두 번째 입산에서 만난 바 있었던 예의 그) 늙은네가, 그를 새빠지게 기다리고 있노라고, 그를 좀 만나고 가라고 일러주었기에, 그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하산과 두 번째 입산에서 고스랑거리던 그 늙은네는, 한쪽으로는 아랫녘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한쪽으로는 산정에 잠긴 차라투스트라에게도 눈을 두어, 둘 사이의 이야기를 버무려 놓은 채, 오랜 세월, 그를 기다려온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실로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대답이다. 그리고 그가 거기까지 이르도록 꾸려낸 사유의 정수이기도 하다. 이 내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작가의 이전 전작들을, 모두 압축하게나 되는 것이 아닌가, 모르기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 일은 좀, 제법 덩치가 있는 일로도 보여, '시간의 악테온'에 쫓기는 자로서, 시도해 볼 일은, (지금은) 아닌 듯 하다.

하여, 염두에 뒀으면 했던 구절 두엇, 기약으로, 씨앗으로 남겨두고, 늙은네의 귀중한 대답은, 일단 넘어가련다.


마음의 우주의 '마음'이라는 마직보를, 몸이나 말씀의 우주에 덮어씌우려기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이외다. 몸이 법종法種인 것을! 그것이 싹틔워 꽃 피우면, 그것이 '말씀'인 것을! 그것이 '마음'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임을! 그리하여 마음은, 익은 민들레 대가리에서, 무장애의 바람에 불리어가는 것임을! 알맹이가 없는 것은 '마음'이기 때문인 것! 그러므로 그것은 구속되지 않으며, 장애에 부딪히지 않고, 그러므로 그것은 우주 자체일 수도, 그것까지도 벗어나버릴 수도 있는 것인 것을! 그것에 의해서만 유정은, 진화의 자리에 확고히 심겨드는 것을! 바로 이 '실다움'을 통해서만, 유정은 역설적이게도 알맹이 없는 '마음'에 닿는 것을! '몸'이야말로, 신들과 악마들이 맞서 싸우는 성스러운 전장戰場 쿠룩쉐트라 Kuruksetra, Skt인 것을! p132


한 인신은, 이 우주를 주관하는 대신이,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좋은 모태를 빌려, 자기를 가현케 한 이라면, 다른 인신은, 흔한 가시떨기나무와 같이, 비천한 모태에서 먼저 출산한 뒤, 다음 '집단적, 우주적 원망'이라는 모태에 들었다가, 재출산한 '사람의 자식'이라는 것이외다. 후자의 이 이중 출산은, 처음엔 하나의 개아로서 태어났다가, 두 번째 출산을 통해 그것을 잃고, 중아衆我, 또는 공면성共面性 내지는 대아성大我性을 획득했다고 여겨지는 것이외다. p158


3.초인의 죽음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젊은 날에 대한 회한과 늙은 성자가 뿌리고 간 말의 씨앗을 가지고 명상에 든다. 그는 그 가운데 자기를 향해 독두를 들고 오는 양두사의 영상을 본다. 이 때 패관이 등장, 붉은 물고기라고 하며 비슈누-멧돼지의 이야기와 검은 물고기라고 하며 곤과 붕의 이야기와 쾅!하며, 비슈누의 배꼽에서 피어오른 연이, 그 연잎을 벌릴 때의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면, 영겁회귀라고 하며 차라투스트라의 명상 속에서 떠오른, 한 몸뚱이에 검은 대가리와 흰 대가리를 단 뱀이, (차라투스트라의 편견에 따라, 흰 것을 삼킨 검은 것을) 밟아 죽임당하는 이야기(인즉, 실패한 연금술 이야기)와 권력에의 의지라고 하며, 다시 차라투스트라의 명상에 나타난, 한 몸뚱이에 두 대가리를 달고 있는 새가, (뱀과 마찬가지로, 불화하기로, 하나가 하나를 죽일 지경에 이르러, 차라투스트라의 뒤꿈치에) 장렬히 희생당하는 이야기(인즉, 마찬가지의 실패한 연금술 이야기)가 이어진다. 초인과 대지에 이르러서야 차라투스트라는,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르겠지만, 송장을 딛고 선 열여섯 살 처자의 상을 보게 된다. 출산, 혹은 몰락에 다다르면 무명씨로서의 한 촌로의 탄생 혹은 차라투스트라의 (스스로에 대한 배신으로 안한) 몰락의 소식이 전해진다. (이쯤되면 차라투스트라는 2장에서 나왔던 늙은 성인네 한 사미가 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4. 문요어 얘기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하산하기로 했던 차라투스트라의 원래 목적(?, 그런 게 있었다면?)을 기억해 내도 좋을 것 같다. 다시 맗 그는 마침내 사람들이 사는 인가로 내려왔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이미 한 이름을 잃었고, 특히 그 자신, 차라투스트라다움을 잃은 한 산로인데,) 그곳에서 과거 자신이 했던 말의 정죄로서, 그러나 사실로는 마을에 가득 찬 음기에 대한 정화로서, 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죽음은 그러나 아무것도 남김이 없는 죽음이다. 신에 대한 반역자로서, 그의 부음을 전하던 자는, 신과 인간이 반역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어느 정도, 인간 이상인 죽음(이란 어쩌면 신으로서의 죽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신의 죽음은 아니지만, 한 개아로서의 죽음 이상인, 그런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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