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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조어론 2 - 제1부 중도(관)론 2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6월
평점 :
유리의 7조 촌장 촛불중의 기나긴 설법이 끝난 자리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유리가 알게 모르게 치러버린 ‘세대교체’의 제세한 과정과 그 의미를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대교체’란 육조에서 칠조로 바뀐 ‘촌장의 얼굴’과 장로와 장로의 아들로 대변된 ‘읍장의 얼굴’을 말하는데 -이 두 가지는 유리의 안과 밖을 이루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유리가 얼마나 커다란 변화 속에 놓이게 되었는가를 능히 짐작케 합니다.
일단 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칠조는 육조에게서 은유적으로는 침과 해골의 대물림을 통해서, 실질적으로는 법의 대물림을 통해서, 촌장이면서 조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법적인 대물림의 증거를 1권을 통해서 보았다면, 2권에서는 촌장 되기의 고행을 통해 그 자신이 물려받은 침과 해골에 대한 대가를 치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은유적이니 실질적이니 하고 갈라놓고 있는 말은 ‘침과 해골’의 체와 용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상징이 되는 기호와 기호에 담긴 의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의미가 1권에서 보여준 설법이었다면 그 기호로서, 기호의 운명을 살아내기(육신이라는 질료를 연금해 내는 지고至苦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2권이라는 말을, 길고 지루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호로서 기호에 맞는 운명을 치러내는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칠조의 이야기는 새로 얼굴을 바꿔해 단 판관겸직읍장에 대한 이야기와 맞물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절로 시작되는 밖의 이야기는,
예수가 그 자신의 죽음을 성취하기 위해서 유다를 필요로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과연 새로 얼굴을 바꿔해 단 판관겸직읍장의 (그 나름의) 지혜와 역할을 보건대 그는 그 자신의 역할을 퍽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꽤나 매력적이고 꽤나 그럴듯한 한 국면을 담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고 나면 왜 이야기의 초반에 세대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장면이 나타나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육조가 육조로서의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서 칠조를 끌어 당겼듯이 칠조 역시 그 자신의 역할(은 기호의 운명)을 잘 완수하기 위해서 판관겸직읍장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말이 나와서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물론 판관겸직읍장은 칠조가 불러낸 이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유리라는 집단이 꾸어낸 꿈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수렁과도 같은 유리가 아래 뿌리로는 판관겸직읍장을 꿈꾸어내고 위로 꽃으로는 칠조를 꿈꾸어내고 있다면 좀 이상한 말일까요. 갸우뚱.)
그러니 여기에서 알게 되는 것은, 얼굴을 바꾸어 입은 것이, 조사나 읍장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칠조는 육조의 얼굴을 해 갖고 있고, 판관겸직읍장은 칠조의 얼굴을 해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실로 그러고 보면 (미리 장래에 벌어질 일을 끌어다가 원활하게 해두기로 한 이야기를 빼놓고 나면)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인 칠조어론 2권은 죽음의 한 연구의 재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날의 대사가 이 날에 읊어지고, 그 날의 승부가 이 날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여 죽음의 한 연구를 아름답게 읽으셨던 분이라면 칠조어론 2권 또한 ‘앓음답게’ 읽어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